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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개화기 우리 나라 교회의 핵심적 가르침 - 진교절요(進敎切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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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6 ㅣ No.361

[신앙 유산] 개화기 우리 나라 교회의 핵심적 가르침 : 진교절요(進敎切要)

 

 

머리말

 

개항은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강요된 개항으로 인해서 우리 나라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말단으로 편입을 강요당하며 식민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개항은 우리 나라에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개항 이후 우리 나라가 직면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신앙의 자유가 신장된 점이다. 물론 개항이 신앙의 자유를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조선 후기 이래 인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한 투쟁이 지속되었던 결과이다. 이 투쟁에는 우리의 순교자를 비롯하여 적지 않은 선조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이들의 투쟁이 밑거름이 되어 개항기 1882년경에 이르러서는 신앙의 자유가 묵인될 수 있었고, 1895년에는 신앙의 자유가 공인되었다.

 

시대가 이같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조선천주교회는 제6대 교구장이었던 리델(Ridel, 李福明, 1869-1884) 주교가 사임하고, 1883년 블랑(B1anc, 白圭三, 1844-1890) 이 제7대 교구장으로 취임했다. 블랑은 조선에 신앙의 자유가 묵인되기 시작했던 상황을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는 천주교 신앙이 머지않아 공인될 것을 전망하면서 이에 대한 대비를 해왔다. 이 준비작업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영세 예비자를 위해 교리서를 다양하게 발간하는 일이었다.

 

 

지난날의 교리서 편찬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천주교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도문을 외우고, 천주교의 기본적인 교리를 알아야 했다. 그러므로 초창기부터 “천주실의”(天主實義)나 “칠극”(七克)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한문 교리서들이 읽혀졌다. 그러나 한문교리서를 읽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소수의 한문 해독층에 불과했으므로 이에 대한 번역작업이나 새로운 교리서를 저술하기 위한 노력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주교요지”(主敎要旨)와 같은 한글 교리서가 저술되었고, 몇몇 기도문이 한글로 번역되었다. 이를 위해서 정약종(丁若鍾)이나 주문모(周文謨) 신부 등은 자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기도문이나 교리서에 교회사의 초창기 모든 신도들이 달통했던 것만은 아니다. 19세기 초엽의 박해과정에서 체포되어 신문을 받은 신도들 가운데는 뜻밖에도 기도문의 암송이나 교리의 이해에 어두운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당시 교회에서 신도들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베풀지 못했거나 적절한 교리서나 기도서를 마련해 주지 않았던 데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1836년 파리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한 이후에는 교리서와 기도서의 개혁과 체계화를 위해서 노력하게 되었다. 그들은 1838년경에 주요기도문을 엮어서 “십이단”(十二端)을 편찬했다. 그리고 1864년에는 “성교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을 목판으로 간행해서 보급해 나갔다. “성교요리문답”은 사본요리(四本要理)로 불리기도 하는 바와 같이 세례, 고해, 성체와 견진에 관한 네 가지 기본요리를 포괄하고 있었다. 개항을 전후한 시기에 우리 나라 교회에서는 이 밖에도 몇 종의 교리서와 기도서들이 있지만 당시 가장 중요시되던 것은 “십이단”과 “성교요리문답”이었다.

 

그리하여 1887년에 간행된 일종의 교회 지도서인 “조선선교 관례집”(Coutumier de la mission de Coree)에서는 세례를 받기 위해서 최소한 “십이단”을 외우고 “성교요리문답” 가운데 세례, 고해, 성체문답을 암송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교요리문답”이 당시 교회에서는 가장 중요한 교리서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1926년 “천주교요리”가 조선교회의 공식문답으로 반포되고, 이어서 1934년 “천주교요리문답”이 간행될 때까지 이 “성교요리문답”은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철이 든 어른 예비자를 위한 교리서였다. 그 까닭에 어린이나 노인네들이 입교하고자 할 때에는 어른들과 마찬가지의 교리지식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당시 교회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교리서의 편찬이 요청되고 있었다.

 

 

“진교절요”의 내용

 

블랑 주교는 주교에 취임하기 이전부터 부주교로서 조선교회의 일들을 실질적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부주교 시절부터 조선에서 선교의 자유가 보장될 것으로 전망하고 새로운 교리서 편찬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부주교 시절에 이미 감수를 마쳤던 “진교절요”(進敎切要, 12.2×18.9cm, 1책, 활판)는 1883년 그의 주교 서품 직전에 간행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1884년 “천주성교백문답”을 간행해서 “성교요리문답”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고자 했다.

 

블랑 주교는 “진교절요”를 감준했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를 그로 볼 수는 없다. 현재로서는 이 책의 원저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어렵다. 그러나 1897년 홍콩의 나자렛 출판사에서 간행한 같은 이름의 한문본 교리서가 있고 여기에는 “나이가 많아서 정신이 흐린 사람들이 교회에 입교하고자 할 때의 교리”라는 설명이 있다. 이를 보면 한글본 “진교요리”도 한문 교리서에서 번역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마도 이 책은 프랑스 선교사가 한문으로 저술했거나 번역 간행한 교리서를 다시 번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이 1883년 처음으로 간행된 이 후 1901년 뮈텔(Mutel) 주교의 감준으로 다시 간행되었다. 그리고 1914년에도 재간되었다. 현존하는 이 책자의 간행연대들을 조사해 보면 이 책은 저술된 이후 노인들을 위한 교리서로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이 책은 1934년 “노인문답”이 간행될 때까지 자신의 고유한 구실을 다하고 있었다.

 

“친교절요”는 책머리에 서문의 형식에 해당하는 말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천주교에 입교하기 위해서 우선 다섯 가지의 기본적인 조건을 요구하고 있는데 앞의 세 가지는 신도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으로서, 첫째로 갖가지 이단과 사망한 일들을 끊어버리고, 둘째로 원수와 화목하고 공번되지 아니한 재물을 기워갚고, 셋째로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이어서 예비자들이 반드시 외워야 할 기도문과 교리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하여 예비자들은 넷째로 요긴한 경문 일곱 조목을 배워 익히고, 다섯 번째로는 중요한 문답 도리 12조목을 외워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1883년에 간행된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요긴한 경문’으로는 성호경과 천주경, 성모경, 종도신경, 천주십계와 성교사규, 소회죄경과 삼덕송을 들 수 있다. 그러나 1914년에 간행된 “진교절요”에서는 여기에 고죄경과 삼종경이 추가되어 있다. 이와 같은 기도문들은 “십이단”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편 1934년에 간행된 “노인문답”에서는 여기에 영광송을 더하고 있다. 노인들이 외워야 할 기도문의 분량도 이와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간씩 늘어가고 있었다.

 

이 기도문에 이어서 “진교절요”에서는 천주교의 여섯 가지의 기본교리를 매우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기본교리로는 천주의 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과 부활승천, 영혼의 존재와 상선벌악, 사도로부터의 전통과 천주교의 특성에 관한 내용이다.

 

여섯 가지 기본교리를 설명한 다음 이 책에서는 영세와 고해, 성체, 견진에 관한 열두 조목의 문답을 계속해서 수록하고 있다. 이 문답편에서는 먼저 영세의 개념을 밝혀준다. 그리고 두 조목에 걸쳐서 고해의 개념과 고해성사를 합당히 받기에 필요한 다섯 가지의 요건을 설명해 주고 있다. 한편 모두 네 조목에 걸쳐서 성체성사에 관한 문답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성체의 개념과 영성체에 대한 준비 그리고 성체의 효험 등이 제시되어 있다. 성체에 이어서 마지막 다섯 조목은 견진에 대한 설명이다.

 

 

맺음말

 

“진교절요”는 노인 예비자에게 요구되는 최소한도의 자세와 교리지식 그리고 기도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이 책은 신앙을 갖기에 요청되는 최소한도의 교리지식과, 이 신앙을 유지시켜 주는 매일의 기도생활에 요청될 최소한의 기도문을 제시해 준 노인용 교리서인 것이다.

 

한편, 이 교리서의 간행은 우리 나라 교리교육이 연령 계층에 따라 체계화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었음을 뜻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 교리교육사에서 이 책의 간행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의미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1934년에 간행된 “노인문답”보다는 간략한 내용으로 되어있다. “노인문답”에서는 모두 11개의 기도문과 76개 조목의 교리문답을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들 특수연령층을 위한 교리서들이 가지고 있는 나름대로의 특성과 그 발전과정 등에 관해서 계속해서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게 된다.

 

[경향잡지, 1995년 8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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