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 플라즈마와 순교 영성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1-09-23 ㅣ No.964

[화학에게 길을 묻다] 플라즈마와 순교 영성

 

 

퀴즈 하나

 

“지옥의 악마들에게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소멸시키며 남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제가 어느 모임에서 이 질문을 던져보았더니 1순위로 나온 대답이 ‘바보’였습니다. 만일 악마 가운데 저처럼 화학을 전공한 이가 있었다면 남들보다 튀려고 “플라즈마”라고 대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플라즈마란 무엇인가

 

물질은 가열함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상태로 변하는데 기체 상태의 분자에 수천 도의 열을 가하면 원자로 갈라집니다. 계속해서 4만 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원자의 가장 바깥쪽에 있는 전자가 궤도를 벗어나 원자의 양(+)이온과 이탈한 자유전자의 음(-)이온이 생성됩니다. 이 자유전자가 충분한 에너지를 얻게 되면 다른 원자와 충돌할 정도의 속도를 내게 되어 또 다른 양이온과 전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형성된 양이온과 전자들, 그리고 충돌하지 않은 중성원자들을 합하여 플라즈마라 부릅니다. 양이온과 전자의 수는 같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중성이지만 전기를 통하는 성질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중성 기체와는 달라서 “제4의 물질상태”라 합니다.

 

플라즈마들은 서로 작용을 하면서 독특한 빛을 방출하고, 빠른 움직임 때문에 높은 반응성을 가집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서 플라즈마는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데, 그리고 문화재나 예술작품의 보호를 위해 자외선이나 적외선을 포함하지 않는 빛을 가진 조명을 제작하는 일에도 쓰입니다.

 

요즈음 땀을 빨리 흡수하고 또 건조시킨다고 각광받는 기능성 내의나 의복, 등산복 등도 고분자 재료에 소수성, 친수성, 접착성 등을 개선시킬 수 있는 플라즈마의 성질을 이용하여 만든 것입니다.

 

플라즈마가 생성되는 온도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스 불의 온도가 1,900도인 것을 감안할 때 얼마나 뜨거울지는 상상을 불허합니다. 저온 플라즈마도 있기는 하나 이는 극히 낮은 압력인 진공상태를 요하므로 이도 극한의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물질을 가스 불에 태우면 검은 찌꺼기가 남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수백 배 뜨거운 온도에서는 산산조각 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온 상태의 기체가 되어 빛을 발하기도 하고 산업적으로 인류에게 크나큰 도움을 주고 있으니 놀랍지 않습니까? 물질의 환골탈태한 모습입니다.

 

 

순교, 최고의 사랑

 

다시 처음의 퀴즈로 돌아가 봅시다. 이번에는 천사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 것 같으신지요? 아마도 ‘순교자’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으로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의 고문을 당하는 극한 상황에서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은”(필리 1,23) 마음 때문에, 또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필리 3,8) 죽음의 길을 선택한 순교자들 말입니다.

 

어머니의 눈앞에서 자녀를 볼모로 배교를 강요하는가 하면, 극심한 고문으로 육신을 망가뜨려도 그분들은 주님이 주신 굳센 정신으로 마음의 평온을 잃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순교했습니다.

 

순교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부께 자기를 봉헌하는 행위이며 최상의 은혜요 사랑의 최고의 증명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묻히며 함께 부활하기 때문입니다(로마 6,3-11).

 

한국교회는 4대 박해로 불리는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를 비롯하여 비교적 규모가 작았던 박해를 통하여, 교회가 창설된 뒤 100여 년 동안에 무려 1만 명에 이르는 순교자를 냈습니다. 이분들의 순교 덕분에 한국교회는 불사조와 같은 신앙의 생명력을 지니게 되어 심산유곡에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믿음의 불씨를 지켜나가 마침내 자유로운 신앙의 날을 맞게 되었습니다.

 

1984년에는 순교한 선조들 가운데서 103분이 거룩한 성덕으로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살아계신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훌륭하신 분을 배출할 수 있었지요.

 

 

플라즈마 같은 삶을 사신 순교자

 

이번에 새로이 단장한 당고개 순교성지는 하느님의 종 이성례 마리아(최양업 신부님의 어머니)와 아홉 분 성인의 플라즈마 같은 삶을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황토와 목재를 많이 사용한 당고개성지의 외관은, 성지 조성을 총괄하고 기획하신 권철호 신부님의 의도대로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품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품에 안겨 성지를 돌아보면, 새싹을 안고 있는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 결혼반지를 손에 쥔 최영이 바르바라 성녀, 반딧불을 들고 있는 이경이 아가타 성녀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신부님의 설명에 따르면 심순화 작가가 각 성화 속에 성인과 함께 그 성인의 삶을 상징하는 사물을 그려 넣었는데 이를 통해 이분들이 각 신심단체들의 주보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손소벽 막달레나 성녀를 그린 성화에서 우리는 생명을 상징하는 새싹을 보게 됩니다.

 

성녀는 11남매를 낳았으나 그 가운데 9남매가 죽고 맙니다. 그나마 장녀였던 최영이 바르바라 성녀마저 순교했으니 혈육이라고는 막내딸 하나만을 남기고 순교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잃어본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을 알고, 아파본 사람이 다른 이의 아픔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성녀에게 하느님은 모든 생명을 관장하는 분으로 각인됩니다.

 

내 자식이라고 쉽게 말하는 우리 부모들에게 성녀는, 아이는 당신에게 잠시 맡겨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 이분이시기에 우리는 자식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영혼의 탯줄을 이으신’ 손소벽 막달레나께 청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따님인 최영이 바르바라 성녀는 양반 출신이었음에도 문벌과 나이의 차이는 많이 나지만 신앙심이 깊고 도리에 밝은 조신철 가롤로 성인을 택하여 결혼함으로써 독실하게 수계(守誡)할 수 있었습니다. 자식의 행복한 결혼을 바라는 부모는 ‘원앙을 타고 하늘에 오른’ 이 성녀께 기도를 청할 수 있습니다.

 

한편, 속아서 결혼했기에 교회법상 무효판결을 받았음에도 이혼 때문에 사회의 멸시와 박해를 받았던 이영희 아가타 성녀는 그 모든 것을 딛고 하느님을 충실히 증언하였습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이 ‘꺼지지 않는 영혼의 반딧불’ 성녀께 기도를 청하며 위로받고 또 당당히 설 수 있습니다.

 

오늘날 결국 우리는 이분들의 순교의 빛으로 현재 우리의 삶을 비출 수 있게 됩니다. 곧, 순교 성인들과 통공하는 삶의 길이 열린 것이지요.

 

이 순교자성월에 가까운 성지에 한번 다녀오시면 어떨지요? 플라즈마와도 같은 한 분 한 분의 삶을 묵상하면서 그분들과 통공하여 신앙의 공덕을 쌓을 수 있다면, 이 가을에 맺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열매가 아닐는지요?

 

* 황영애 에스텔 - 이학박사(미국 오하이오주립대 화학과). 상명대학교 교수이며 저서로 “화학에서 인생을 배우다”(2010, 더숲)가 있다.

 

[경향잡지, 2011년 9월호, 황영애 에스텔]



1,239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