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신앙 유산: 성인 성녀의 모범을 따라서 - 성년광익(聖年廣益), 주년첨례광익(周年瞻禮廣益)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6-30 ㅣ No.331

[신앙 유산] 성인 성녀의 모범을 따라서 : 성년광익 · 주년첨례광익

 

 

머리글

 

사람들은 지나간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 오늘을 사는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특별한 위인이나 영웅들을 모범으로 삼아 앞서간 그들의 삶을 본받으며 자신도 그들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한다. 사람들은 어떤 역사적 인물의 구체적 행로를 통해서 역사에 친근하게 접근한다. 그러므로 인물사 연구는 지나간 시대의 역사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초적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근대 역사학이 성립되기 이전에는 위인들의 전기[偉人傳]가 역사의 주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 초등 학교의 역사 교육에 있어서도 맨 처음 시도되는 방법이 ‘인물 중심의 역사’이다. 이는 모두 인물에 대한 이해가 역사 인식에 있어서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넌지시 말해 주는 것이다.

 

교회 내지 교회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인물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으로 요청되어 왔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이해는 교회의 신앙을 깨닫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나 그 밖의 성인들에 대한 이해도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파악하는 데에 필수적 요소이다. 신도들은 그리스도나 성인 성녀들에 대한 이해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가치를 더욱 구체적으로 깨닫고 실천해 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초대 교회에서부터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인들의 전기를 지어서 신도들에게 제공했고, 그 성덕을 본받도록 촉구했다. 이 노력은 오늘의 교회에서도 계속하여 재현되고 있다.

 

 

우리 역사 속의 성인공경

 

우리 나라의 지적(知的) 풍토에 있어서도 특정 인물에 대한 존경은 매우 강조되어 왔다. 우리 조상들이 편찬한 정통 역사서에는 열전(列傳)을 따로 두어 역사적 위인들을 본받도록 권장했다. ‘열전’ 이외에도 여러 충신 · 효자들의 전기가 지어져 널리 읽히고 있었고, 특이한 일을 한 사람들에 관한 기록들도 지난 시대의 우리 문헌에서 상당수가 발견된다. 우리 조상들과 우리 자신들은 훌륭한 일을 한 선조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 왔다. 이렇듯 우리 문화 안에는 인물들에 관한 이해를 미덕으로 여기는 전통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나라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오롯이 실천한 성인 성녀들을 본받고자 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한문으로 된 성인 전기에서 몇몇 성인 성녀들을 가려 뽑아 일찍부터 읽고 있었다. 1801년 신유 교난 때에 정부 당국에 압수된 천주교 서적 가운데는 “성년광익”(聖年廣益)과 같은 중국에서 간행되었던 성인전이 들어 있다. 또한 “성부(聖婦) 마리아” “성녀 칸디나” “성녀 데레사” “성녀 아가다” “성녀 빅토리아” 등의 전기가 ‘언문’(한글)으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 선조들은 일반인들이 충신전 효자전을 읽듯이 성인전을 읽으며 그들을 사표(師表)로 삼고자했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 선조들의 생활은 달레(Dallet)가 지은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달레는 박해 시대 신도들의 신앙 생활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회장들은 주일과 축일에 신자들을 모아 공동으로 기도를 드리고 교리 문답과 복음 성서와 성인 전기 등을 몇 대목 읽고, 그런 다음 대개는 마을에서 가장 능력 있고 학식 있는 교우인 회장이 낭독한 대목을 해석하였다.”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나라 초기 교회사에 있어서 성인전은 교리 문답 및 복음 성경과 함께 신도들의 신앙을 이끌어 주는 세 가지 책 가운데 하나였다.

 

 

“성년광익”은 어떤 책인가

 

한자 문명권에서 널리 읽혀지고 있던 가장 대표적 성인전은 “성년광익”이다. 이 책은 프랑스계 예수회 선교사였던 마이야(Joshep Francois-Marie Anne de Moyriac de Mailla, 馮秉正, 買刺, 1669~1748년) 신부가 1738년에 북경에서 간행한 책자이다. 저자인 마이야 신부는 1703년 중국에 도착한 후 선교에 종사하며 레지스(Regis, 雷孝思, 1663~1738년) 신부 등과 함께 중국 지도를 제작하였다. 이 공로로 그는 선교에 있어서도 중국 정부로부터 상당한 편의를 제공받기도 했다. 그는 “성세추요”(盛世芻?)를 비롯한 많은 교회 서적을 지었다. 또 중국 구어체인 백화문(白話文)을 아름답게 구사하여 중국에서 어문 일치(語文一致)를 지향하며 전개된 “백화 운동”(白話運動)의 선구자로 주목받았다. 또한 그는 프랑스에서의 중국학 연구에 기초를 놓은 인물로 높이 평가된다.

 

마이야 신부가 백화문으로 저술한 “성년광익”은 원래 프랑스인 크루아세(Croiset)가 지은 “전기”(傳記, Vies)를 기초로 하여 쓰여진 것이다. “성년광익”은 신자들의 신앙을 굳게 하기 위해 저술되었다. 이 책에서는 1년 365일 매일마다 한 편의 성인전을 제시해 준다. 매편은 먼저 모범이 될 만한 말들을 ‘경언’(警言)이란 항목에서 제시해 주고, 이어서 성인 행적을 ‘성전’(聖傳)이라는 난을 통해 전해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성인전을 읽고 ‘마땅히 행해야 할 덕’(宜行之德)과 ‘당연히 힘써야 할 기구’(當務之求)를 밝혀 준다. 이 책은 원래 24권 12책본을 비롯해서 13책본, 4책본 등 여러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성년광익”은 이미 교회 창설 당시 우리 나라에 전래되어 읽히고 있었다. l801년 황사영의 심문 기록을 보면 이가환(李家煥)이 이벽의 권유에 따라 “천학초함”(天學初函)과 “성년광익”을 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리고 앞서 살펴보았듯이 1801년에 압수된 교회 서적 목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 신도들이 읽었던 단편 성인전들도 이 “성년광익”을 부분적으로 번역하여 편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주년첨례광익”은 어떤 책인가

 

“성년광익”은 일년 동안 매일 한 편씩의 성인전을 읽도록 편찬된 책이다. 따라서 책의 부피도 컸으며, 신도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이에 교회에서는 간추린 성인전의 간행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다블뤼(Daveluy, 1818~1866년) 신부는 “성년광익”을 기초로 하여 4권 4책으로 축약시킨 성인전인 “주년첨례광익”(周年瞻禮廣益)의 간행을 시도했다. 이 책의 첫째 권이 베르뇌(Berneux) 주교의 감준 아래 목판본으로 간행된 때는 1865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음해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병인 교난의 와중에서 더 이상 출간될 수 없었다. 그 후 1884년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이 책은 활판본 4권 4책으로 완간되어 당시 신도들의 신앙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고 있었다.

 

“주년첨례광익”에서는 모두 93명의 성인 전기와 축일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축일들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성모께 관한 축일이 8회에 걸쳐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책에서는 성모 신심을 크게 장려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으뜸으로 오 주 예수 모든 성인의 머리 되심을 공경함이오, 버금으로 성모 모든 성인의 모황(母皇)이 되심을 공경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로마 시대의 박해 과정에서 순교한 성인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다. 박해 시대의 선도들은 바로 이 전기를 읽고 그들의 용덕(勇德)을 키워 나갔다. 신앙의 자유를 획득한 이후의 신도들도 순교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려는 자신의 자세를 이 책의 독서를 통해 강화시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성녀 수산나를 비롯한 동정 순교자들을 특별히 강조했고, 프란치스꼬 성인, 성녀 데레사, 성 베네딕도, 성 프란치스꼬 사베리오 등 교회의 내적 쇄신과 발전에 힘쓴 여러 성인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맺음말

 

“주년첨례광익”은 지난 시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성모 신심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에 반드시 검토해야 될 책이다. 그들은 성모 신심을 매개로 해서 신 · 구약의 줄거리와 가톨릭 신앙의 주요 부분을 이해해 가고 있었다. 또한 “주년첨례광익”은 우리 나라 교회의 중요한 정신적 유산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순교자 신심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그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다. 박해 시대의 신도들은 로마 시대 순교자의 전기를 읽으며 순교자에 대한 각별한 신심을 갖게 되었고 자신들의 순교를 준비해 왔다. 또한 그들은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하느님을 사랑하고자 했으며, 프란치스꼬 사베리오와 같이 선교 일선에 뛰어들고자 했다.

 

“주년첨례광익”에 수록되었던 여러 성인 성녀들은 뭇교우들의 삶을 이끌어 주고 그 방향을 잡게 해주던 태산북두(泰山北斗)와 같은 존재였다. 여기에서 지난 세기 우리 교회가 갖고 있던 정신적 특성의 이해를 위해서는 “주년첨례광익”을 조심스럽게 주목하고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그 책의 생명력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고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조들의 믿음과 삶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그 책을 주목해야 한다.

 

[경향잡지, 1993년 1월호, 조광 이냐시오(고려대학교 교수)]



680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