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자료

2011-0324.....사순 2 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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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1-03-23 ㅣ No.1023

사순 2 주간 목요일
예레미야 17,5-10                  루카 16,19-31
2011. 3. 24. 등촌 3
주제 : 사람이 자신을 믿는다는 것(?)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필요한 것들은 많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입고, 먹고, 자는 데에 필요한 것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생각을 거기에서 끝냅니다. 그 이상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은 사치라고 느끼는 탓일까요? 아니면 정말로 필요하지 않은 것인데, 누군가는 필요하다고 말하기에 우리가 억지로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럴까요? 참 묘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말 몇 마디에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예언서는, 예언자가 전하는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언자가 전하는 주제는,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받아들이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 경제상황이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사람들은 그 말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도 배부르고 등이 따뜻한 다음에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시라도 이 자리에 신앙생활은 세상에서 할 일 없을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말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구석이 있다면, 사제와 수도자로 살아가는 사람은 아주 불쌍하고도 딱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세상의 것이 첫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신념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주 중요한 것은 세상의 목숨입니다. 저는 이 목숨이라는 표현과는 비슷하지만, 아주 다른 뜻으로 생명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하지만 세상에서는 목숨이 됐든지 생명이 됐든지 이것저것 혼동하여 씁니다.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말이 저 말 같고, 저 말도 이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그 차이점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부자로 살았고, 행복하게 먹을 것 다 먹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 두지도 않고 살았던 사람이 있지도 않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하느님의 나라(?) 그 너머에서는 고통을 겪고 불 속에서 단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도대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쉽습니다. 정말 그렇겠지요? 그 말이 옳다면, 세상에서 사람은 늘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과 비슷해질 것이니,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는 우리에게 만들어진 모습, 완성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에 충실한 사람들은 미래의 세계가 어떤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현실 세상의 행복만 노래하겠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나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나 우리가 모를 미래는 다가오는 법입니다. 형제들의 회개를 위해서, 그들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해달라고 부르짖었던 부자의 간절한 외침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어야 하겠습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부자일 수도 있고, 동시에 라자로의 모습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자기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그 자세에 따라 세상은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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