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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신앙 유산: 현세의 삶과 내세의 삶 - 사말일언(四末一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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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9-07-03 ㅣ No.355

[신앙 유산] 현세의 삶과 내세의 삶 : 사말일언(四末一言)

 

 

머리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어제를 기억하며, 내일을 생각하게 된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각기 다른 시간대는 서로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이 세 가지의 시간대를 통찰해 보고자 하여 역사학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철학과 신학에서도 이 시간의 의미를 궁구해 나가며 개인의 종말 내지는 인간의 종말이 가지는 의미를 밝혀보려 한다.

 

신학의 한 영역인 종말론은 인간의 현재적 삶과 미래에서의 삶을 연결지어 설명하고자 한다. 종말론에서는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깊이 성찰하여 사람이 죽은 이후 내세에서의 삶에 관해 논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사람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아니함을 말한다. 그리하여 현세에서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오 내세로 이어지는 계기일 뿐인 것으로 설명해 왔다. 내세에서의 삶은 현세에서의 행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착한 이는 천당에 오르고 악한 이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믿음을 굳히게 되었다.

 

가톨릭 신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지기 이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상선벌악(賞善罰惡),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이치를 샤머니즘이나 불교신앙을 통해서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교를 통해서 천당 지옥의 존재에 관해서도 벌써 설명을 들어왔다. 물론 불교의 이러한 가르침이 천주교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존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여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당시 천주교 교리에서 논하던 종말론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시대 천주교의 종말론과 관련하여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사말론(四末論)을 들 수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사말일언”(四末一言)은 “사말에 관한 한마디의 말”이라는 뜻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 신도들의 내세관이나 종말론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말이란 무엇인가

 

사말(四末)이란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네 가지의 마지막 문제를 말한다. 중세 이래로 교회에서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란 결국 죽어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죽음과 심판, 그리고 천당과 지옥을 사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사말론(四末論)은 원래 서(西) 유럽의 중세 때 성행하던 민간의 종교심에서 나온 개념이었다. 이 개념들을 수렴하여 롬바르도(Petrus Lombardus, 1095-1160년)는 그의 저서 “심판론”(Libri de Sententiis)에서 이를 처음으로 다루었다. 그는 부활과 심판 그리고 천당과 지옥을 사말로 규정했다. 이러한 그의 견해와는 달리 토마스 아퀴나스(1224-1274년)는 그의 “신학대전”에서 부활 대신에 죽음을 넣어 사말론을 완성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종교개혁 이후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는 사말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이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에 대항하여 가톨릭의 입장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개최되었고, 이 과정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정통 가톨릭 신앙의 시금석으로 삼았다. 여기에서 사말론은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교리문답서에도 수용되기에 이르렀다.

 

사말론이 동양에 전래된 것은 16세기 말 내지는 17세기경이었다. 즉 당시 중국에서 선교하던 예수회원 중 한 사람이었던 바뇨니(Vagnoni, 高一志, 1566-1640년)는 “사말론”(四末論) 4책을 간행한 바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계통 예수회 선교사였던 쿠플레(Couplet, 1624-1692년)도 1675년 북경에서 “사말진론”(四末眞論)을 간행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당시 유럽의 가톨릭 신학계에서 막 확립되기 시작했던 사말론이 중국교회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와 병행하여 당시 중국의 각종 한문교리서에서도 사말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이 신학적 견해는 중국의 신도들에게 널리 전해졌다. 그리고 이 견해는 중국 북경과 왕래했던 조선인 사신들이 가지고 온 한문서학서를 통해 조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중엽 조선에 입국한 프랑스 선교사들도 이 사말론을 정통적 교리로 조선인 신도들에게 강조했다.

 

 

이 책의 저자와 내용

 

“사말일언”(15.7cm x 21.5cm)은 모두 5천여 자 내외에 불과한 10쪽으로 된 등사본 책자이다. 이 책자의 맨 마지막 쪽에는 “천주강생 1925년 7월 16일 안드레아 이 신부”라고 명기되어 있다. 이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글의 지은이가 누구이며, 이 책이 언제 발간되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1925년 당시 그 성이 이씨이고 안드레아라는 본명을 가진 성직자는 이순성(李順成, 1895-1950?년) 신부밖에 없었다. 그는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던 19세기 말엽 강원도 이천(伊川)에서 태어났다. 그는 예수성심신학교를 마치고서 1923년 5월 20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리고 1925년에는 경기도 행주본당에서 신도들을 사목하고 있었다. 그는 신도들을 사목하면서 이 책을 저술하여 등사본으로 만들어 신도들에게 보급했다.

 

그는 이 책의 도처에서 “사랑하올 신자들이여”라고 말하면서 사말에 대한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신도들에게 사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해주고자 노력했다. 우선 여기에서 그는 순교자의 공덕으로 신앙의 자유와 교회의 발전을 이루게 되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 조선 성교회의 현상을 살펴보건대, 열위 치명자들이 자기 피로 거름을 하고 자기 뼈로 밭을 간 결과로 신자수가 십만 명에 달했다.”고 말하면서 순교자의 공로를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는 당시가 박해시대와는 달리 신앙을 자유롭게 고백하고 실천할 수 있는 때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박해시대 신도들이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천주를 불같이 사랑하여 모든 본분을 결하지 아니하고 살았거니와 하물며 우리들은 이 같은 평화시대에 무슨 핑계로써 우리의 본분을 결하리오.”라고 말하며 신도들에게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는 신앙의 자유 이후 해이해질 수 있는 신도들의 생활을 경계하며, 신도들이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말에 대한 교리를 새롭게 강조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그는 이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신자전’(信者前)이라는 부분에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함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세상에서의 덧없는 삶과 죽음을 설명하면서 “만 가지 선으로써 이 귀한 세월을 보낼지어다.”라고 호소한다.

 

그는 심판을 이야기하면서 “일평생 행실을 착히 닦아 모든 악의 위태한 길을 끊어버려라.”고 권고한다. 그리고 지옥과 천당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세상에서의 선행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맺음말

 

사말론 계통의 서적들이 가지고 있던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평가하자면 이와 같이 현세에서의 실천적인 신앙으로서 선행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말론에서는 흔히 그 선행을 행해야 하는 근거로서 내세에 있어서 지옥불의 고통과 천당의 영복을 말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천국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강조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전통적인 사말론이 경우에 따라서는 현세와 현실의 중요성을 몰각(沒覺)하게 하는 역기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신학에서는 지난날의 사말론을 그리스도교의 본질에서 벗어난 왜곡된 종말론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사실 성서에 나타나는 그리스도교의 종말론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부활에 관한 희망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로마 8,25)라고 말한 바 있다. 하느님의 백성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해방될 날을 기대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을 불태우게 마련이다. 아마도 이 점이 그리스도교 종말론의 핵심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의 사말론은 희망의 가르침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두려움에 관한 설교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 사말론은 긍정적 평가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말론을 통해 박해시대부터 당시 신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새로운 세계관의 실체와, 현세의 선행과 올바른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점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선조들이 가지고 있던 신앙의 한 특성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당시 교회의 인간관이나 사회관의 특성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경향잡지, 1995년 2월호, 조광(고려대학교 한국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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