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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박해시대 교우들이 생각한 천사와 마귀 - 천사를 만나고 마귀와 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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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8 ㅣ No.172

한국 교회사 열두 장면 - 박해시대 교우들이 생각한 천사와 마귀

 

천사를 만나고 마귀와 대적하는 삶

 

 

우리 교회의 전통에서는 하느님께서 인간과 우주만물을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도 창조하셨다 가르쳤다. 순수한 영적 존재로 설명되는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꾼이며 전령으로 인간을 보호한다고 믿어왔다. 반면에 마귀들은 인간을 죄악의 길로 유혹하거나 절망에 빠지게 한다고 했다.

 

천사와 마귀에 관한 교회의 전통은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앙이 들어오면서 소개되었다. 그리하여 박해시대 신자들은 오늘날의 신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천사를 만나고 마귀와 대적하면서 세상을 살아갔다.

 

 

천사와 마귀에 대한 인식

 

우리나라 전통 사상 안에서도 사람의 몸과는 다른 영적인 존재로서 ‘넋’을 인정하였다. 사람이 죽어 넋이 되는데 우리 조상은 넋을 선령인 조상과 악령인 원귀로 나누어 생각했으니, 죽어서도 후손들의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주는 착한 영이 있는가 하면, 원한을 풀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영인 원귀도 있다. 원귀는 저승으로 들어가짐 못하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질병이나 재앙 따위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파악했다. 이 원귀를 물리치려면 진오귀굿 등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주교 신앙에서는 하느님께서 천사와 같은 영적존재도 창조하셨다고 보았다. 그리고 악령은 하느님께서 창조한 천사들이 타락하여 생긴 존재였다. 이렇게 천주교의 선령인 천사와 악령인 마귀는 우리나라 전통사상과는 다른 특이한 존재였다. 선령이나 악령이 사람의 넋이 변하여 생긴 존재라면, 천주교의 경우에는 하느님께서 별도로 창조한 존재였다.

 

오늘의 교회도 하느님의 창조사업에서 영적존재의 창조를 인정한다. 그렇지만 오늘의 교회는 천사나 마귀가 인간생활에 개입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을 더 이상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박해시대 신자들은 이웃은 물론 천사와 마귀도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갔다. 박해시대 천주교에서 천사를 지칭하던 전통적 단어는 천신(天神)이었다. 그리고 이 낱말 외에도 천사자(天使者)라는 용어도 사용했다. 오늘날까지 봉송하는 연옥도문 가운데 “모든 천사자와 대천사자들이여, 망자를 위하여 빌으소서.”라는 말은 바로 천사와 대천사들에게 망자를 위해 빌어주기를 염원하는 기도문의 한 구절이었다.

 

천사와 마귀에 대한 교회의 전통 가르침은 중국에서 간행되던 한문 서학서를 통해서 조선에도 전래되었다. 그 대표적 책자로는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은 “천주실의”가 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천상의 복락과 함께 천사의 존재를 설명했는데, “천당에는 착한 사람들이 올라가 그곳에 살면서 이미 덕성을 닦는 데에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면서 천사들과 착한 사람들과 더불어 동무들이 된다.”고 했다.

 

마테오 리치는 또한 지옥의 고통을 설명하면서 마귀의 존재를 제시했다. 천신의 두목 가운데 하나인 루시페르(駱齊拂兒, Luciper)는 자신의 영특하고 밝음[靈明]을 내세워 하느님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에 빠졌다. 이에 하느님이 노하여 그 추종자인 수만의 신을 함께 마귀로 변하게 하여 그들을 지옥에 떨어뜨려 두었다고 설명했다. 이 마귀들이 인간을 해롭게 하는 악행을 저지르며 다녔다.

 

 

조선 땅에 나타난 천사와 마귀

 

우리나라에 천주교 신앙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한 인물은 이벽(李檗)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의 북경에 가게 된 이승훈에게 천주교 선교사를 만나서 교리를 배워오기를 간청하면서 천주교의 가르침이 아니면 “천사와 악마의 구별이며 이 세상의 시작과 종말, 영혼과 육신의 결합 등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벽이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대할 때에 천사와 악마의 존재에 대한 교회의 설명을 매우 특이하게 보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말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1791년에 순교한 윤지충의 경우에도 “천주실의”와 “칠극”과 같은 한문 서학서를 통해서 하느님이 하늘과 땅, 천사와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1801년의 순교자 홍낙민도 ‘하느님은 천사와 사람과 만물의 주재자’라고 신앙고백을 했다. 1827년에 전주에서 옥사한 이경언은 평소에도 “거룩한 교회의 진리와 하느님과 천사, 영혼과 죄, 천국의 즐거움과 지옥의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지냈다. 그는 죽음이 다가오자 자신의 아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순교가 하느님의 큰 은혜임을 말하면서, “천국의 천사, 성인들과 전 세계의 모든 신자들이여, 나를 위해 하느님께 감사하여 주시오.”라고 말했다.

 

또한 박해시대의 신자들은 인간 개개인을 책임지고 보호해 주는 수호천사(호수천신)의 존재에 대해서 친밀감을 가졌다. 이 수호천사는 자신의 세례명 수호성인과 함께 자신을 착한 길로 이끌어주는 존재였다.

 

박해시대의 선교사들도 신자들에게 “여러분을 하느님의 보호에 맡기고 성모님과 천사와 성인들의 도움을 구하십시오.”라고 권고한다. 그들은 조상신 대신에 수호천사를 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수호천사는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나 지방을 위해서도 특별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함께 박해시대 신자들은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도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마귀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극복해야 할 ‘삼구’(三仇) 곧 세상과 육신과 마귀라는 세 종류의 원수 가운데 하나였다. 1801년의 순교자 정약종의 경우에도 사람들은 이 삼구에 대항하여 그침 없이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에 교회가 창설된 이후, 신실한 신자들은 거의무두가 삼구에 대항하는 전쟁에 뛰어들었다.

 

박해시대 신자들이 부르던 천주가사에 보면 천사와 마귀에 관한 더욱 많은 언급이 나온다. 그들은 예전 중국의 진나라 이전 단계에서 천주를 섬길 줄은 알았지만 천신과 마귀에 관해서는 몰랐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리고 천주교를 통해서 천신과 마귀의 존재를 뚜렷이 알게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노래했다. ‘마귀귀신’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마귀라는 교회의 용어와 귀신이라는 영적존재를 결합시켜 이해하려 했던 까닭이다.

 

또한 신자들이나 선교사의 보고서에도 마귀 들린 사람들에 관한 기록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리고 마귀 두목인 대마귀 ‘누찌뿌리’(Luciper)의 그침 없는 도전을 이겨내야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주가사 ‘피악수선가’는 “칠극으로 담을 쳐서 삼구를 막아내고, 십자가로 대문 달아 사마잡귀 물리치고”라고 노래하면서 마귀를 물리치는 데에 극기정신과 기도 그리고 십자고상이 상징하는 그리스도 신앙의 중요함을 말했다.

 

 

남은 말

 

박해시대 교회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던 기도서로는 “천주성교공과”가 있다. 이 공과에 보면 천사에 관한 여러 기도문을 확인할 수 있다. 곧 ‘호수천신송’ ‘호수천신을 향하여 하는 경’ ‘천신과 성인 모든 첨례의 찬미경’ ‘천신도문’ ‘천신찬미경’ 등의 기도문은 천신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간절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당시 교회에서는 ‘호수천신과 가별(Gabriel), 나파엘, 미가엘 천시의 첨례’를 각각 지냈다. 이처럼 박해시대의 신자들은 하느님이 창조한 또 다른 존재인 천사와 함께 살았다. 이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전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인정하는 방법이었다. 또한 마귀에 관해서는 샤머니즘의 원귀나 불교의 마귀와는 달리 “칠극”의 가르침에서처럼 자신의 생활을 바로잡는 데에 의식해야 할 존재가 되었다. 박해시대의 천사와 마귀는 이렇게 신자들을 이끌어주며 단련시켜 나갔다.

 

*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7년 2월호, 조광 이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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