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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17: 수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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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09-19 ㅣ No.3516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7) 수탉


생명의 빛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풍향계

 

 

- 수탉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빛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는 풍향계를 상징한다. 사진은 독일 보쿰 성 요한 성당 종탑의 수탉. 출처: 구글.

 

 

유럽 성당을 순례하다 보면 종탑 위에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장식돼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왜 하필 성당 꼭대기에 수탉 장식을 올려놓았을까? 수탉이 교회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베드로 사도가 새벽이 밝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베드로가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닫고 후회하도록 한 것이 대사제 카야파의 저택 뜰에서 들여온 닭 울음소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 26,69-75)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이후 평생을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카야파의 저택 뜰에서 일어난 이 일화를 떠올리며, 예수님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속죄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처럼 성당 종탑 꼭대기의 수탉은 모든 이에게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배반하고 슬피 울었던 그 사건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매 순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만하지 말 것을, 그리고 항상 속죄하고 회개할 것을 일깨워준다.

 

수탉은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 욥기에는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내렸느냐? 또 누가 수탉에게 슬기를 주었느냐?”(38,36)라는 물음이 나오고, 그리스 신화에선 아테나 여신 곁에는 수탉이 서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보다 수탉은 교회 안에서 훨씬 더 큰 표징을 드러낸다. 바로 수탉은 ‘주님 부활’의 거룩한 표징이다. 수탉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일찍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는 수탉을 ‘새벽의 사자’라고 표현한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어슴푸레 동이 틀라치면 맨 먼저 홰를 치며 우렁찬 목소리로 밝아오는 새날을 찬미하는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직도 캄캄한 것 같지만, 첫닭이 울고 나면 어김없이 동이 트므로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아침 일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 했는데, 시계가 없던 옛 시절에는 햇살과 함께 청아하게 아침을 깨우는 닭울음 소리가 있어야 가능했다.

 

복음서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한다. 수탉은 주님의 부활을 알린 첫 전령이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벽은 특별히 하느님께 속하는 시간이었다.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고귀한 때이다. 그래서 새벽을 깨운 수탉의 울음을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인들은 맨 먼저 “주님을 찬미합시다”라고 기도했고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수탉은 사람을 잠에서 깨우고, 그리스도는 인간을 죽음에서 일으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신다. 따라서 종탑 위의 수탉은 주님의 부활을 표징할 뿐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고 일과를 주님께 봉헌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종탑의 수탉은 또한 언제 오실 줄 모르는 그리스도 왕을 향해 항상 깨워 있을 것을 일깨워주는 ‘삶의 풍향계’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2-37 참조)

 

이처럼 종탑 위의 수탉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드러내는 교회의 거룩한 표징이며 생명의 빛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풍향계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깨어 있도록’ 일깨워주고 자만하지 말고, 회개하고, 매일 하루를 하느님의 거룩한 시간으로 봉헌할 것을 재촉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종탑 위의 수탉 장식을 교회에서는 ‘성 베드로의 수탉’이라고 부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9월 18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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