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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25위의 삶과 신앙6: 신유박해 순교자(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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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5-18 ㅣ No.1100

한국교회사연구소 2013년 상반기 공개대학 ‘하느님의 종 125위의 삶과 신앙’

(6) 신유박해 순교자(전라도) - 이순위 등 9위


1784년 겨울, 전라도에 첫 신앙공동체가 형성된다. 전주 초남, 곧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마을에 살던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4-1801)과 진산 장구동, 곧 충남 논산군 벌곡면 도산리에 살던 그의 이종사촌 윤지충(바오로, 1759-1791)이 최초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였다. 한국천주교회 설립 직후 호남교회가 설립된 셈이다.

전라도 지방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인물은 유항검이다. 모범적 신앙생활과 전교로 ‘호남의 사도’로 꼽히게 된 유항검이 입교한 것은 권철신(암브로시오)과 그의 제자들이 1784년 경기도 양근 감호(현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 대석리)에서 ‘신학문’ 격인 서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에 권철신을 찾아가 천주교 서적과 성상을 처음으로 접한 그는 권철신의 동생인 권일신에게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는다. 그러고 나서 고향으로 돌아가 복음을 전함으로써 그의 고향 초남은 호남 지역 신앙 공동체의 요람이 됐다. 유항검은 자신의 가족과 친척, 친지들을 입교시켰다. 이어 자신의 노비들은 물론 여러 고을에 산재한 토지를 관리하는 마름과 소작인들, 이웃 주민을 입교시켰으며, 전주와 김제, 금구, 영광 등지에 천주교를 전했다. 유항검이 소유한 토지가 전주 인근 10여 개 고을에 걸쳐 자그마치 1만 5000마지기나 됐을 정도로 대부호였던 데다 그만큼 인심을 얻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윤지충의 입교는 그의 고종사촌인 정약전의 영향이 컸다. 1784년 막 세례를 받은 정약전에게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등 책을 구한 뒤 3년간 공부한 그는 1787년 정약전을 대부로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권상연(야고보)에게 자신이 읽은 두 권의 책을 공부하도록 하고 세례를 줬으며, 자신의 어머니와 형제들, 그의 명성을 듣고 고산과 무장, 무안, 홍주(홍성) 등지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1791년 5월 어머니가 선종하자 유교 제사의례를 거부, 그해 12월 8일 전주 풍남문 밖(현 전동성당)에서 참수됨으로써 한국천주교회 최초 순교자가 된다.

유항검은 윤지충과 권상연이 순교하자 피신했다가 7개월 뒤 자수해 ‘형식적으로 배교한 뒤’ 석방된다. 그러나 1794년 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주 신부에게 전라도 순방을 요청하고 주 신부가 전주를 방문하자 그가 추진하던 대박청원 계획, 서양 군함이 조선에 들어오도록 해 신앙의 자유를 얻도록 하려던 시도를 앞장 서 돕는다. 이같은 이유로 1801년 신유박해가 발발하면서 유항검은 전라도 교회의 우두머리로 지목돼 맨 먼저 체포돼 1801년 9월 17일 전주 풍남문 밖에서 치명한다.

호남교회의 두 번째 신유박해 순교자는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1764-1801)이다. 1789년 윤지충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한 그는 형 윤지충이 순교하자 가족과 함께 고산 운동면(현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으로 이주, 저구리 신앙 공동체를 형성한다. 1795년에는 저구리를 찾은 주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고, 주 신부의 대박청원 추진 계획에도 동참했으나 1801년에 체포돼 그해 10월 24일 순교한다.

이어 유항검은 장남 유중철(요한, 1779-1801) ? 이순이(루갈다, 1782-1802) 동정부부, 유항검의 차남 유문석(요한, 1784-1801), 유항검의 조카 유중성(마태오, ?-1802)도 잇따라 피를 흘린다. 이 가운데 유중철과 이순이의 혼인은 한국교회사, 아니 세계교회사를 아름답게 장식한다. 1797년 주 신부의 주선으로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는 1798년 전주 초남마을에 온 뒤 동정 서원을 하고 주님께 승리의 은총을 주시길 기도한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아버지 유항검이 체포되던 3월에 가족 중 유중철만이 체포돼 전주옥에 갇혔고, 1801년 9월 15일 이순이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과 친척들도 체포됐다. 유중철 ? 문석 형제는 1801년 10월 9일 전주옥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했으며, 남은 가족들 가운데 유중성과 이순이, 신희, 이육희 등은 1802년 1월 31일 숲정이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이와 함께 유항검의 먼 친척인 한정흠(스타니슬라오, 1756-1801)은 1801년 7월 18일 김제에서, 유항검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김천애(안드레아, 1760-1801)는 그해 7월 19일 전주에서, 유항검에게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양반 집안 칠순의 최여겸(마티아, 1763-1801)은 그해 7월 19일 무장 개갑장터에서 각각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다. 그러고 보면 신유박해 당시 전주지역 순교자들은 유항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평화신문, 2013년 5월 12일, 백병근 연구원(미카엘, 한국교회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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