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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하느님의 종 125위의 삶과 신앙3: 정사년(1797년)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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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4-20 ㅣ No.1092

한국교회사연구소 2013년 상반기 공개대학 '하느님의 종 125위의 삶과 신앙'

(3) 정사년(1797년) 순교자 - 이도기 등 8위


1797년에 박해가 벌어졌다. '정사(丁巳)'박해다. 그것도 충청도 남부, 이른바 내포 하부지역에서만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천주교를 증오하던 한용화가 1797년 음력 윤6월에 충청감사로 부임하면서 사사로이 시작한 박해로, 1798년(무오년)과 1799년(기미년)까지 계속됐다. 이 박해로 충청도에서만 교우 100여 명이 체포되거나 피를 흘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록을 통해 이름과 순교 행적이 남아 있는 순교자는 8명뿐이다.

정사박해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조화진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초기 교회 밀고자로 유명한 인물로, 정사박해 때 체포된 교우들은 상당수 그가 밀고했다. 배교자라는 얘기도 있지만 밀고자에 가깝다. 이만채의 「벽위편(闢衛篇)」에 보면, 정조가 사학을 염탐하고자 밀유(密諭)를 내렸던 인물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조선시대 관보인 「조지(朝紙)」에 나오지 않기에 아는 자가 적었지만, 충청병사 정충달 등은 그를 알았고, 조화진은 자신도 함께 잡혀가는 체하며 천주교 신자들을 밀고하곤 했다. 처음엔 조화진이 하는 짓을 몰랐으나 교우들은 이내 조화진이 고발한 것을 알아차렸다. 정조가 죽은 뒤 신유년(1801년) 옥사 때 조화진은 여러 달 갇혀 있었으나 당시 조정에선 그가 정조의 밀명을 받고 천주교를 염탐했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거의 없었다. 결국은 천주교 신자로 몰려 옥에서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

정사박해 순교자들 가운데 첫 손에 꼽히는 인물은 역시 「정산일기(定山日記)」의 저자 이도기(바오로, 1734?~1798)다. 관변 기록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으나, 교우들 사이에 입에서 입으로 행적이 전해지는 인물이다. '무릎 밑 뼈가 드러나고 골수가 땅에 흘러내릴 때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성모께 하례하며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였다.

'해미의 첫 순교자' 박취득(라우렌시오, ?~1799)도 그에 못지않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순교사 비망기」에 따르면, 8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곤장과 몽둥이로 '1400대'나 맞는 신앙의 순교자가 박취득이었다. 원래 조선 형률엔 하루에 곤장은 100대, 태형은 50대로 제한했지만 박취득은 그 제한을 뛰어넘는 고문을 당해야 했다.

원시보(야고보, 1730~1799)는 '청주의 첫 순교자'다. 충청도 홍주(현 홍성)에서 태어나 사촌동생 원시장(베드로)과 함께 입교한 그는 축첩으로 조당에 걸려 성사를 받지 못하게 되자 첩을 내보내고 더 열심히 신앙과 덕행 실천에 힘썼다. 그렇지만 일흔 살이 다 된 그는 형벌로 몸을 가누지 못해 한 겨울 거적에 덮여 청주병영으로 실려가 순교했는데, 사후 그의 시신을 본 이들은 '사람의 형상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충청도 당진 출신으로 청주병영에서 순교한 배관겸(프란치스코, ?~1800)은 배교를 통회하고 순교한 경우다. '온 몸의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팔다리가 부러져 뼈가 드러날 정도로' 형벌을 받으면서도 영웅적 인내로 고난을 견뎌냈다.

'내포 회장' 정산필(베드로, ?~1799)은 사형수에게 주는 음식을 받으면서도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해 창조하신 음식은 감사 기도를 드리며 먹어야 한다"고 동료 교우들에게 권면하며 의연히 순교했다. 정 회장의 동료 방 프란치스코(?~1799)도 열성이 뛰어난 교우로 유명했다. '덕산 순교자' 이보현(프란치스코, 1773~1800)은 프랑스 선교사 매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가 선종한 황모실(충남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 출신으로, 거적을 앞치마처럼 두른 망나니들이 오랫동안 매질을 해도 죽지 않아 결국은 몽둥이에 불두덩을 맞아 죽는다. 같은 덕산 출신 순교자인 인언민(?~1800)은 63세 고령에도 가슴에 큰 돌을 맞아 가슴뼈가 부러지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그렇다면 이같은 순교 행적이 담긴 기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가 편찬한 성인 전기집 「황금전설(Legenda Aurea)」은 중세 라틴문학을 집대성한 중요한 문헌이지만 어찌보면 허무맹랑한 순교 전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교회 시각으로 보자면, 이 책은 신앙의 참고서적(Subsidium Fidei)과 같다. 그 자체가 신앙의 대상은 아니지만 우리의 신앙적 삶을 돕는 방편이자 방법, 조력자인 셈이다. 순교자 행적 기록도 마찬가지다. 우리 신앙의 묵상 소재를 찾는 참고서적으로는 충분하다.

[평화신문, 2013년 4월 21일, 조현범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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