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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가사의 의미와 토착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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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1 ㅣ No.28

천주가사의 의미와 토착화 가능성

 

 

천주가사(天主歌辭).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신앙 선조들 사이에서 불려지던 대중가사다. 전교와 신자들의 교화를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 평이한 한글로 지어진 천주가사는 선조들의 신앙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한국 교회의 값진 유산이다. 다행히 한동안 잊혀져 왔던 천주가사를 새롭게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들어 일고 있다. 평화신문은 창간 13주년을 맞아 천주가사를 음미하면서 그 의미를 조명하고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천주가사들을 찾아보는 기획 시리즈 '천주가사-잊혀진 신앙의 숨결을 되찾아서'를 마련한다.

 

 

지난 3월 양업교회사연구소가 주최한 '최양업 신부와 천주가사' 심포지엄. 지방에서 열린데다 학술발표회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발표회는 참가자들이 200석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간이의자를 준비해야 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신자들의 호응은 주최측도 미처 예견하지 못했을 정도.

 

그렇다면 최근 들어 이처럼 '천주가사'에 대한 신자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천주가사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민족 고유의 운율에 기초를 둔 '생활 속의 노래'라는 점 때문. 게다가 교회창립기 때부터 겨레의 숨결 속에 파고들었던 천주가사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강조된 토착화의 전형적인 사례로 새롭게 부각되는 탓도 있다.

 

천주가사는 가톨릭 교리와 신앙적 가르침을 전달할 목적으로 운문 형식으로 곡조없이 부르던 가사(歌辭)다. 천주교 성가, 천주찬가, 천당노래, 천당강론, 사주구령가(事主救靈歌) 등으로도 불려왔으나, 학계에서는 하성래(66, 아우구스티노)안양대 강사가 1969년 한국어문학회지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면서 '천주가사'라는 이름이 정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천주가사는 작가의 단순한 창작의욕에서 비롯된 문학작품이 아니라 선교와 대중 교화를 위해 실용적인 목적에서 작사된 가사라는 점에서 다른 가사문학작품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천주가사는 교리교육과 신자재교육을 위해 지어졌으며, 천주교 금압정책에 대항해 호교론적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혹독한 박해 속에서 만들어진 천주가사는 죽음을 영광에로, 고통을 찬양으로 승화하는 영신적 노래일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영적 양식이 돼왔다. 또 대부분의 가사 전승자가 부녀층인데 이는 천주가사가 평범한 대중의 교육을 해결하려는 방책의 하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가사의 구성은 훈계와 호소, 권면, 설명조에 형식은 민요풍으로 지어졌다.

 

현재 남아있는 천주가사는 대략 300여편. 1779년 작사됐다는 이벽의 '천주공경가'를 비롯해 정약종의 '십계명가', 성 민극가의 '삼세대의', 성 이문우의 '옥중제성'과 '삼덕가', 최양업 신부의 저작으로 알려진 '사향가'와 '공사심판가', '선종가' 등 다양하다.

 

천주가사의 의미는 다른 무엇보다 한국교회에서의 새로운 토착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미 서울대교구의 가톨릭성가집(1932년판)에서 사향가의 일부가 작곡돼 불려졌다는 것은 현대에도 천주가사가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실 연도가락이나 민요가락이 천주가사의 가락과 일치한다는 것이 천주가사 연구자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장인산(대전가톨릭대 교수)신부는 "현대의 사목자, 수도자, 평신도들도 앞장서서 천주가사에 곡을 붙여 전파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또 하성래 안양대 강사도 "천주가사 중 '베틀가' 같은 노래는 단조로우면서도 민요가락과 흡사해 이 같은 장점을 살려 현대에 천주가사를 되살린다면 전교에도 상당히 좋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천주가사의 형태가 현대화되어 현대인의 가슴 속에 파고들 수 있도록 교회의 전구성원들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천주가사 연구자들은 따라서 △ 천주가사의 내용을 현대어로 바꾸고 △ 잊혀져가는 천주가사 전승자를 찾아 음반에 채록 채보함과 동시에 이를 음반과 CD-ROM에 담아 현대인들에게 전하고 △ 천주가사를 새롭게 작곡해 현대의 성가집에 반영하는 등의 천주가사 현대화 작업이 교회 내에서 하루 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평화신문, 2001년 5월 13일, 오세택 기자]

 

 

천주공경가 - 세상에 외치는 전교의 메시지

 

 

어화 세상 벗님내야, 이 내 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 있고, 나라에는 임금 있네.

네 몸에는 영혼 있고, 하늘에는 천주 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는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 내 몸은 죽게 되도, 영혼 남아 무궁하다.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면은,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 있다 알고서도, 불사 공경 하지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 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 자, 천주 없다 시비마소.

아비 없는 자식 봤나, 양지 없는 음지 있나.

임금 용안 못 뵈었다, 나라백성 아닐런가.

천당지옥 가보았나, 세상사람 시비마소.

있는 천당 모른 선비, 천당 없다 어찌 아노.

시비마소 천주 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해설>

 

이벽(1754-86년, 세례자 요한)의 '천주공경가'는 학계 일각에서 최초의 천주가사로 보는 작품이다. 물론 '천주공경가'가 천주가사의 효시인지 또 이벽의 작품인지에 관한 확증은 없다. 그러나 이승훈(1756∼1801, 베드로)의 "만천유고"(蔓川遺稿)에는 이벽이 1799년(기해년, 정조 3년) 주어사 강학회가 끝난 뒤에 지은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천주공경가'는 '을사추조적발사건'(1785년 봄)으로 인해 부친으로부터 배교하지 않으면 목을 매어죽이겠다는 위협에 고민하다가 열병을 얻어 33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한국가톨릭교회의 개척자 이벽의 신앙과 사상을 직접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천주공경가'는 4/4조 4음보격으로 17구로 이루어진 짧은 가사로,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지어졌으며, 크게 3단락으로 나뉜다. 첫 단락은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말하는 천주교 교리를 들어보라고 호소하면서 천주 공경이 으뜸임을 노래하며, 둘째 단락은 영혼 불멸과 부처를 섬기는 행위의 금지, 천주의 존재론, 천당과 지옥설을 노래한다. 마지막 셋째 단락은 천주를 믿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 권유한다.

 

짧은 노래지만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육화시켜 우리 고유 양식의 노래로 세상에 외치는 전교의 메시지이자 신앙의 노래다.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천주교를 배척하는 이들에게 이치에 근거해 대답한 이벽의 목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하다. [평화신문, 2001년 5월 13일, 현대어역=김영수 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 오세택 기자]

 

 

천주가사 연재물 집필자 김영수씨

 

 

"천주가사는 지극히 한국적인 양식입니다. 4/4조라는 겨레 고유의 가락에 천주교를 담아내고 있는데 여기에 바로 토착화의 대표적 양상으로서 천주가사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천주교를 우리 그릇에 담아내는 '서도동기(西道東器)'의 사례가 된 셈이죠."

 

창간 13주년을 기념해 평화신문이 기획한 천주가사 시리즈 현대어 번역을 맡은 천주가사 연구자 김영수(44, 스테파노, 서울 일산본당) 호남교회사연구소 연구위원은 "천주가사는 우리 민족 나름의 신앙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한 노래로 신앙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60년대부터 성당에서 할머니들이 흥얼거리던 천주가사에 관심을 가져온 김 연구위원은 "수많은 천주가사 이본(異本)을 정리하며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부인이 죽고 아이들은 흩어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어찌할 수 없이 포졸에 쫓겨 하느님께만 의지한 채 산길을 넘어가는 신자들의 모습을 수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따라서 "이번 천주가사 시리즈 현대어 번역의 방향도 시대 현대의 신자들이 신앙 선조들의 신앙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서 벗어나 생활 속의 신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더불어 신앙적 정체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쪽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

 

김 연구위원은 또 "천주가사 시리즈는 국문학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는 천주가사는 물론 교회내 다른 무형의 자산에 대한 교회와 일반의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와 함께 "최근 들어 일부 필사본 자료가 정리돼 자료집으로 출간되긴 했지만 현재까지 전해오는 구전 천주가사의 전승 현황을 파악하는 데도 하나의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중인 김 연구위원은 지난해 9월 '천주가사 자료집 상'(가톨릭대 출판부)을 출간해 교회와 국문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으며, 올해 안에 자료집 하권을 선보이고 장차 보유편까지 펴낼 계획이다. [평화신문, 2001년 5월 13일,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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