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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74: 김희성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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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28 ㅣ No.889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 (74) 김희성 프란치스코


모친에게 효행하라(제134도)

 

 

김희성이 포졸을 따라 안동 관아로 가기에 앞서 모친에게 효행하라고 자식에게 당부하고 있다. 그림=탁희성 화백.

 

 

교우들 사이에서는 '경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김희성(프란치스코, 1765~1816)은 예산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부유한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801년 예산에서 순교한 김광옥(안드레아)이 부친이다.

 

김희성은 아버지 영향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교리를 열심히 배우고 실천했다. 1801년 아버지가 순교하자, 그의 열성은 더욱 깊어졌고 아버지를 따르겠다는 의지도 더욱 굳어졌다.

 

이후 그는 모든 재물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경상도 영양 곧은장으로 들어가 고신극기를 실천하며 지냈다. 1815년 3월, 을해박해가 일어나자 밀고자를 앞세우고 포졸들이 곧은장으로 밀어닥쳤다. 산에서 이를 본 김희성은 바로 하산해 포졸들은 물론 밀고자까지 후하게 대접한 후 어머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포졸들을 따라 나섰다.

 

안동 관아를 거쳐 대구로 이송된 김희성이 보여준 굳은 신앙심은 관원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대구 감사는 그를 결코 배교시킬 수 없음을 알고는 조정에 사형선고문을 올렸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옥중 생활을 하던 중 형집행에 대한 임금의 윤허가 내려 김희성은 1816년 12월 19일(음력 11월 1일) 대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그의 나이 51살이었다.

 

[평화신문, 2010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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