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이경도 가롤로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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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03 ㅣ No.1117

[순교자의 숨결] 이경도 가롤로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오늘 저의 사형판결문에 서명을 마치고 어머니께 편지를 올립니다.

주님께서 이 몹쓸 큰 죄인을 특별한 은혜로 천만 뜻밖에 불러 주시니, 지은 죄를 마땅히 뉘우치고 주님을 향한 열정을 다하여 죽는 것으로나 은혜를 갚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렇지만 평생에 지은 죄가 하늘에 닿을 만큼 엄청나서 이렇게 특별한 은총을 받고도 마음은 목석 같아 감격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니, 아무리 주님께서 무한히 인자하시다는 것을 생각하더라도 제 자신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며, 받을 엄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오직 생각하는 것은, 저의 죄악도 무한하오나 주님의 인자하심 또한 무한하다는 것이옵니다. 주님께서 자비로우신 손으로 저를 이끌어주시면, 만 번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며 무엇에 애착할 것이 있겠습니까?

저는 마음이 몹시 약해서 죽을 결심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아 죽게 된다면 정말 다행일 텐데.”라는 생각을 항상 해왔습니다. 마침내 주님께서 제 소원을 이루어 주시니 이야말로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만, 이 세상에서 어머니께 자식 노릇을 못하고 조금치도 뜻을 받들어 모시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애닯고, 뉘우쳐도 돌이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일이면 이 세상을 영영 떠나게 되니, 어머니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사옵니다. 이 세상에서 나눈 부모자식간의 정이야 어찌 억누를 수 있겠습니까마는, 부싯돌에서 튀어나오는 불똥같이 빠른 세월이니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이 죽음은 어머니께 영원한 복을 누리실 천당 문을 열고,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실 값을 드릴 것입니다. 이 고통의 맛이 비록 쓰고 견디기 어려워도, 변하면 달고 맛있는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실 리 없겠지요.

곧 죽을 자식이 한 말씀 올리자면, 어머니 스스로 영혼과 육신을 잘 보존하시고 참되게 닦으셔서 우리 영혼이 우리 주님 계신 천당에서 영원히 뵙겠다는 것밖에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정중(이경중)과 희아(이경언)야, 어머니께 주님 분부처럼 효도하고 순명하거라.

더 할 말 없으니, 곧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만나자.

매형과 누님, 잘 계십시오.

사소한 정에 매여 긴 말 짧은 말을 해 보았자 마음만 아프게 할 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두 자만 말씀드리면, ‘뜨거운 사랑’(熱愛)말고는 주님의 마음과 통할 것이 없으니, 소원을 이루기는 이것이 제격입니다.

종들아, 다 잘 있거라.

한 사람도 떠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만나기 바란다.

제 아들 귀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귀비야, 부디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가족들과 흩어지지 말고 함께 있다가 하늘나라에 올 때는 다 같이 오너라.

드릴 말씀은 많아도 다 하지 못합니다.

부디 저의 죽음을 슬퍼하여 마음 상하시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평안히 잘 보존하셨다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삽시다.

<호남교회사 연구소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편지’ 중에서>

* 이순이 루갈다의 오빠로 1802년 1월 29일 서울 서소문 밖 형장에서 순교함.
* 이 편지는 1801년 12월 25일(양력 1802년 1월 28일) 씌어진 것이다.

[쌍백합, 제23호,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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