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이경언 바오로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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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03 ㅣ No.1116

[순교자의 숨결] 이경언 바오로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우리가 혼인한 후 13년 동안 우리는 둘이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을 지내지 못하고 가지가지 곤경을 겪었소. 그러다가 갑자기 이별을 하여 이 세상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으니 천주의 성의(聖意)가 이루어지이다. 내 일평생의 행동과 수많은 죄를 생각해 볼 때에 당신에게 대하여 잘못한 모든 것을 특히 뉘우치오. 용서하여 주시오. 내가 죽은들 당신을 잊을 수가 있겠소. 이 세상에서 당신의 의지가 될 것으로는 정의와 그 누이동생이 남아 있으니 그 애들을 잘 기르고 가르쳐서 내 뒤를 따르게 하시오. 당신으로 말하면 만약에 모든 일에 천주 성의(聖意)에 복종하고 주님의 벗이 된다면 그것이 참된 행복이 아니겠소. 우리가 서로 이별한 뒤로 얼마나 많은 곤란을 당했겠소. 이런 생각이 들 적에는 가슴이 찍어 눌리오. 그러나 다음에는 천주와 성모 마리아를 생각하고 불안을 가라앉히오. 무엇보다도 모두 선종하도록 힘쓰기 바라오. 연풍(延豊)에서는 무슨 소식이 있었소. 아아, 어머님이 내 처지를 아시게 되면 어떻게 되실까. 나도 순교자가 된다면 어머님에게도 큰 영광이 될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억제할 수가 있겠소. 이제는 당신을 아주 하직해야겠소. 이제는 종이도 없고 간수의 눈이 번쩍이니 당신에게 이 몇 줄 글을 써 보내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을 몰래 이용해야 되오. 이 편지를 집안에 두루 읽히기 바라오. 형님은 어떻게 지내시며 다시는 뵙지 못하게 된 형수님은 어떻게 계시는지. 내 희망은 우리가 천국에서 다시 만나 함께 즐기는 것이오.

내가 여기서 죽을는지 혹은 서울에 가서 죽게 될는지는 알지 못하오. 만일 여기서 죽게 된다면 누님과 같은 장소에서 순교의 영광을 받게 될 터이니 얼마나 큰 은혜겠소! 천국의 천사(天使) 성인(聖人)들과 전 세계의 모든 교우들이여, 나를 위하여 천주께 감사하여 주십시오. 환경 하나 하나가 모두 내 사랑하는 누님 순교자의 편지 사연을 회상케 해 주는데 내 일생에 누님만큼 천주를 사랑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오. 이제는 천주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싶지마는 이미 늦었으니 어쩌겠소.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이는 느낌이오. 그러나 한편으로 내 죄가 무수하다면 또 한편으로는 천주의 자비도 끝이 없으니 이것이 내 오직 하나의 희망이오. 내 힘만 가지고는 한 순간이라도 꿋꿋이 견디지 못했을 거요. 참말이지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힘은 아무것도 아니고 천주의 보호하심이 모든 것을 이룬다는 것을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인정하오.

박해의 그악한 바람이 좀 자거든, 와서 내 물건들을 찾아다가 아들에게 갖다 주시오. 두 아이들에게 세례를 다시 주게 하오. 그 애들이 받은 세례가 확실치 않소. 내가 빚이 좀 있고, 주문 받은 것을 다 마치지 못한 것도 있는데 거기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을 말로는 다할 수가 없소. 다만 천주께서 그것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랄 뿐이오. 그러나 당신은 이 모든 것을 힘을 다하여 갚도록 하시오.

어머님께는 따로 상서(上書)할 수가 없으니 이 편지를 베껴서 보내드리도록 하오. 당신도 이 세상에서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고, 영원한 복락이 가까웠소. 그러나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그리고 주님 대전에서 영원히 다시 만납시다. 나를 출두시키라고 명령하는 소리가 들리오. 그러면 여기서 붓을 놓겠소.

1827년 5월 15일
남편 李

* 이경언 바오로는 이순이 루갈다의 남동생으로 정해박해(1827년) 후 전주관아에 고발돼 전주 옥에 갇힌 후 35세에 혹독한 형벌로 옥사함.

[쌍백합, 제22호, 200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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