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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프랑스 순례: 성 오메트르의 지상에서의 집 에제크를 찾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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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향하여 시간을 걷다 - 프랑스 순례] 성 오메트르의 지상에서의 집 에제크를 찾아
성당을 나오기 전 벽에 걸린 작은 그림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자그마한 향유병을 들고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있는 여인,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였다.
베르퇴이를 떠나 에제크(Aizecq)에 있는 성인의 생가로 향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 같은 작은 마을. 생가로 들어서는 어귀에 ‘maison Natale St. Pierre AUMAITRE’라는 표지가 반가웠다. 거의 150년 전에 고향을 떠난 그가 이제 성인(聖人)이 되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고향 마을에 찾아오고 있다. 이역만리 떠났던 그의 흔적을 좇아 멀고 먼 대한민국에서 순례자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아오다니 그는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었다.
그의 집은 정말 작고 누추했다. 몇 평 남짓 축사 같은 곳이 그가 태어나 다섯 형제자매와 자란 곳이었다. 같은 지붕 아래 칸막이 너머로 가축을 키우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다.
- 문짝도 달리지 않은 생가터 출입구. 외벽에 ‘성 피에르 오메트르가 태어난 집’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그 나지막한 공간에서 잠시 성인을 기억하며 ‘순교자 찬가’를 불렀다. 성가가 다 끝났을 때 함께하신 앙굴렘 주교좌성당 주임 멍귀 신부님이 거의 독백처럼 “감사합니다.”라고 되뇌었다. 신부님의 살짝 내리깐 눈빛에 언뜻 애수의 빛이 스치는 듯도 했다.
- 성인이 살았을 당시에는 마을의 유력 가문 성당이었다가 현재는 에제크 본당이 된 오메트르 성당. 성당 옆에 서있는 성인의 상에는 ‘성 오 베드로’라는 한글이 쓰여있다. 갓을 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왼손을 들어 하늘을 또는 조선을 가리키고 있었다.
집이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에 오메트르는 학비부터 기숙사비, 의복비까지 모두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운명처럼 예감했던 일이라고 그의 성직을 받아들인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 역시 멀고 먼 전교지로의 파견은 원하지 않았다.
파리외방전교회에서 오메트르는 아버지에게 “만일 하느님의 뜻이 제가 먼 나라로 가는 것이라면, 아버지 곁을 떠나는 것이 무척 괴로운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그렇게 할 각오가 되어있다.”고 편지를 썼다. 그리고 1862년 사제품을 받은 뒤 다시 소식을 전했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사랑하고 찬미하게 하라고 저를 보내시는 나라는 코레, 조선입니다.”
성당 안에 오메트르 성인과 관련된 자료들이 소박하게 보관되고 있었다. 제대 옆 벽에 성인의 초상이 걸려있고, 제단 앞에는 103위 성인 액자가 놓여있는 성당에서 에제크의 신자 몇 분과 미사를 드렸다.
비 몇 방울 뿌리더니 완전히 화창해진 날,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었다. 넓은 마당을 가진 기사식당 같은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다. 오후 햇빛은 뜨겁고 하늘은 멀고도 높았다. 흙먼지 이는 마당에 발을 내미니 마치 광야의 한순간 같았다.
* 이선미 로사 - 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 신자. 가톨릭교리신학원 성서영성학과를 수료했다. 여러 차례 해외 성지를 순례하다 보니 가까운 성지와 우리 전통에도 눈이 뜨여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는 중이다. [경향잡지, 2013년 6월호, 글 · 사진 이선미] 0 2,93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