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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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 순교자 현양 특강1: 하느님의 종 시복 추진과 순교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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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9-16 ㅣ No.1157

순교자 현양 특강 (1) 하느님의 종 시복 추진과 순교 영성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최창화 몬시뇰)와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최홍준)는 순교자 성월을 맞아 지난 9월 5일과 12일, 26일 세 차례에 걸쳐 명동 주교좌성당에서 순교자 현양 특강을 마련했다.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2013년 중점 사업으로 전개하고 있는 ‘한국 순교자 123위와 증거자의 시복 시성’이 올 가을 풍성한 결실을 볼 것을 기원하며, 안명옥 · 손삼석 · 옥현진 주교의 순교자 현양 특강을 지상 중계한다.


1. 시복시성의 현황

1784년 이 땅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래 거의 100년 이상 한국 교회는 크고 작은 박해에 시달렸습니다. 그 순교자들 가운데 103위 순교자들이 1984년 시성됐고, 현재 윤지충과 동료 123위, 증거자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한 절차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벽과 동료 132위를 비롯해 근 · 현대 순교자들 81위의 시복시성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자체적으로 38위 시복시성 절차를 밟고 있어 이를 다 합치면 시복을 추진 중인 하느님의 종만 377명에 이릅니다.

지난날 역사를 되돌아보면 시복시성을 위해서는 언제나 ‘기도’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시복시성을 위한 기도의 절정은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순교자의 피가 묻어 있는 이 땅에서 103위 순교자 시성 미사를 거행하시는 결실로 이어졌습니다. 우리 교회 ‘시복시성의 역사’는 ‘기도 운동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2. 순교의 힘(영성) - 믿음, 희망, 사랑

왜 우리의 순교자들은 목숨까지 바쳐가며 하느님을 주님으로 신앙고백하였는가? 모진 박해 가운데 인간적인 모멸감과 수치심을 견디어내며 마지막 순간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끝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는 순교의 삶을 선택하고 결단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교는 신앙의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피를 흘려 목숨을 바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순교(殉敎)라는 한자 가운데 순(殉)자는 죽을 사자와 열흘 순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열흘 안에 따라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순교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 사랑, 그리고 희망 때문에 자유롭게 선택하고 수락한 자신의 죽음으로 진리를 증거하고 하느님을 증거합니다.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순교해야 한다면, 순교자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였습니다. 사랑은 죽음까지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으로 순교의 길을 걸어가도록 이끄는 힘, 영성으로 작용했으며 순교자들은 하느님을 배반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순교자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키워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버렸으나 오늘 우리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남아있습니다.


3. 순교 영성의 재해석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예전 순교자들처럼 물리적으로 피를 흘리며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하느님을 사랑하고 믿고 증거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순교의 삶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순교의 삶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순교 영성을 새롭게 해석해내야 할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1) 사랑하며 살자

누구나 자신의 목숨과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아낍니다. 그런데 순교는 생명과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집착과 탐욕 그리고 명분을 훌훌 털어버리고 집착과 탐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되는 행위입니다. 나의 목숨을 기꺼이 내던질 수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랑은 목숨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순교는 또한 사랑의 극치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질지라도 영원히 남는 것이 또한 사랑이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다 목숨을 바친 우리의 순교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사랑이야말로 믿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며 우리는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도록 그렇게 지음 받은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까닭도 하느님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존재의 유일한 이유가 되었고, 나의 단 한 가지 직업이 되었습니다.

2) 하느님 중심으로 살자 - 소유와 집착에서의 해방

순교영성은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영성입니다. 순교의 영성은 죽어서 영원히 사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믿음과 삶 사이의 괴리감이 너무 커서 믿음은 그냥 한갓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중심 가치가 아닌 경우도 많으며 우리는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그러고도 남는 자투리 시간이 있다면 비로소 하느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맨 나중에 하느님을 찾고 있으며 그 결과 하느님께서는 내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며 배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심지어 무시하면서 살아갑니다. 무시한다는 것은 보이는 것이 없다는 뜻이며 이중에 시(視)자는 하느님과 볼 견자의 합성어입니다. 무시는 결국 하느님을 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보지 않으면 하느님이라는 가치는 우리가 선택해야 할 우선적인 가치는 아니며, 그 이유로 하느님의 가치는 늘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3) 하느님을 믿는 사람다운 삶 - 말과 행동

극도로 세속화된 세상 안에서 신앙의 진리를 수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소명과 책임은 막중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취미’가 아니며 ‘사상’도 아니며 ‘이념’도 아닙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고백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다운 행동과 말은 하느님 눈으로 이 세상과 사물, 인간을 바라보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느님 눈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고 인간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를 거슬러 역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과 세상의 시류에 맞는 흐름을 거슬러 하느님 법에 따라 사는 것을 의미하며, 하느님 법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일상에서 증거하고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지나친 소유와 집착, 탐욕에서 벗어나면 삶의 무게와 고달픔도 가벼워질 것입니다. 삶의 무게를 줄이는 다이어트도 바로 순교의 삶에 해당합니다.

오늘도 저희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희들에게 자기 목숨 살리려고 발버둥치지 말아라, 오히려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려라, 그러면 산다. 살되 영원히 산다고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기를 다짐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증명이 아니라 희망이며 신뢰이며 사랑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우리의 삶이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사는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시는 하느님 말씀이 가져다주는 힘과 능력을 믿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답게 살고 그렇게 살기 때문에 당하는 온갖 불이익을 참고 견뎌내는 것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순교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회의하고 불안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서는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나 내가 안고 간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낸다.”(이사 46,4)는 처방을 내리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가슴에 꼭 간직하고, 말씀 그대로 한 번 살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씀을 가슴에 안고 잠이 들어 보았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이 역시 순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순교자들이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부단하게 애쓰고 기도하는 후배들의 행복을 위해 하느님께 간구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평신도, 제41호(2013년 가을), 안명옥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마산교구장,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 정리 이가연 파우스티나(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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