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강론자료

2013-0630...연중13주일...교황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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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6-29 ㅣ No.1368

연중 제 13 주일 (다해)

1열왕기 19,16.19-21      갈라티아 5,1.13-18     루카 9,51-62
2013. 6. 30. (주일). 교황주일.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
세상살이에는 쉬운 일도 있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쉬운 일만 골라서 해도, 내가 세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그 어떤 사람이 그렇게 효과적인 일을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이 좋아지는 것은 바람과 의도만 잘 갖고 있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고진감래(苦盡甘來,=고생 끝에 즐거움이 옴)’라는 표현이 그 사정을 설명하는 좋은 말일 것입니다.
 
세상살이에 이런 표현이 있는 것처럼, 신앙의 일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세상과 분리되어 따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세상살이를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신앙인의 일에도 성실한 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일은 열심히 하는데, 신앙의 일에 함께 하자는 초대를 받았을 경우, 나는 내 코앞에 떨어진 세상의 일들을 먼저 하고 난 다음에, 시간이 남거나 시간이 생기면 그때 가서 신앙에 관련된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하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얘깁니다. 혹시라도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사는지 살펴볼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의 삶과 신앙인의 삶은 연결돼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우리가 하는 일과 그 자세를 보시고,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일에 함께 할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어떤 일이 하느님의 일인지 구별하기가 어려워서 그렇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세상의 일에 우선권을 두고 살다가, 우리가 해야 할 때를 놓쳐서 하느님의 일이란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은 때와 장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루카복음에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대해야 올바른 자세인지를 말하는 몇 가지 부르심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내용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행동을 전하는 이야기와, 예수님의 제자로 살겠다고 나선 2사람의 이야기, 또 부르심을 받아 제자로 살자는 초대를 받은 1사람의 얘기, 합계 3사람의 얘기가 나왔습니다.
 
세상 삶에 적용될 하느님의 뜻을 말하는 이 시간에, 사람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저는 말씀드리지만, 인간적인 우리의 삶에 다급한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런 자세를 초지일관(初志一貫)한 마음으로 갖는 사람에 나는 포함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다는 자신감 있는 소리에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머리를 대고 누울 자리마저 걱정해야 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신앙인의 삶을 바르게 볼 것을 요청하십니다. 또한 아버지의 장례를 먼저 치루겠다는 인간적인 일을 앞세우는 것보다 하느님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하신 것이 두 번째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하는 작별인사보다도 더 시급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라는 것이 세 번째 가르침이었습니다. 이런 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그 뜻을 실천하는 일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에 얼마나 큰 중요성을 두고 사는 사람들이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산다는 것은 구약시대와 오늘날의 상황과 많이 다릅니다. 열왕기역사서에 나오는, 엘리야예언자가 엘리사를 부르는 얘기에는 오늘 복음에 나온 것과 같은 긴박한 느낌은 없습니다. 어쩌면 요즘 세상처럼, 사람도 많지 않았고 전해야 할 하느님의 뜻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엘리야예언자는 겨릿소를 이용하여 쟁기질을 하고 있던 엘리사에게 자기 겉옷을 걸쳐주었고, 그 일이 자신을 제자로 부르는 것으로 알아들은 엘리사는 부모님께 작별인사를 하겠다고 말했으면서도 소를 잡아 잔치를 베풀고 나서 예언자의 제자가 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 세례를 받고 우리의 삶을 하느님나라로 연결시킬 줄 아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그 내용은 오늘 두 번째 독서인, 바오로사도의 말씀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속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이 되라는 뜻으로 부르셨다고 바오로사도는 편지에 씁니다. 얼마나 믿을 만한 말씀이겠습니까?
 
자유인으로 사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법률과 법칙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앞세워 실천하면서 살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황님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교회를 위해 많은 것을 걱정하고 실행하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우리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기를 권고하는 것처럼, 우리가 여러 사람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일에 함께 일치할 때,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더 잘 실천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내가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함께하는 기도가 더 큰 효력을 맺을 것이고, 신앙인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한꺼번에 아우를 수 있는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 한 마음으로 뜻을 모아 당신의 뜻을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저희에게 당신의 축복과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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