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강론자료

2013-0421...부활4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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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4-21 ㅣ No.1351

부활 제 4 주일 (다해) - 성소주일

사도행전 13,14.43-52       묵시록 7,9.14-17      요한 10,27-30

2013. 4. 21.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일을 한다는 것

오늘은 부활시기 네 번째 주일입니다. ‘처음에 깨트리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시작하기만 하면 붙잡을 여유도 없이 숨()가쁘게(=관용구어떤 일이 몹시 힘에 겹거나 사태가 급박하다) 우리 곁을 흘러가는 것이 시간과 돈이라고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우리 곁을 도망치는 시간 안에서 우리는 뭔가를 이루어냅니다. 바쁜 마음에 다툼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다툼을 해결하기도 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 내 삶과 다른 이의 삶에도 도움이 되는 일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의 여유와 평화로 20134월을 지내고 있는 이 땅의 남쪽과 북쪽에 사는 사람들이 평화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렇게 일을 만들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겠습니까?

 

성소(聖召)라는 말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낱말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소리를 사람이 자기 귀를 통해서 들었다고 말할 사람은 없거나 많지 않을 수 있습니다. 생리학의 입장에서 얘기하면 유기물의 융합체인 인간은 하느님이라는 영적인 존재를 알아챌 능력이 없다는 것이고, 과학의 입장에서 얘기하면 하느님의 소리가 어떤 파장이나 주파수를 갖고 있는지 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거나 구별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며, 신앙의 입장에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직접 들을 만큼 하느님의 뜻에 온전하게 일치해서 사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의 지식으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세상에는 하느님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고, 그 하느님의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으며, 그 하느님의 소리에 따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주도권을 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도권을 쥐신다는 표현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부르심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온다고 신앙에서는 구별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자연의 소리, 양심의 소리, 다른 사람이 드러내는 행동과 연결된 소리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온다고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소리를 알아채고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사도행전독서에서도 들었습니다만, 하느님의 소리는 아예 듣기를 거부하겠다고 결심하면, 내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려오더라도 그것은 하느님의 소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하느님의 소리를 거부하는 세상의 반응이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겠다는 사람이라면, 그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으로 해석하는 성소는 세 가지로 구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결혼성소가 그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수도성소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소주일에 특별히 기억하는 사제성소가 세 번째입니다. 자녀를 낳고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결혼성소이고, 그 자녀들 가운데서 수도자나 사제로 갈 사람이 태어나도록 내가 협조하는 것이 결혼성소입니다. 이 성소는 높거나 낮은 등급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의 성소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드느냐 하는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다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쫓겨난 바오로와 바르나바였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삶에서 성공을 허락하지 않으신 하느님을 탓하고 자기들이 하던 일에서 그냥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새로운 사람들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사도들의 이 모습에서 우리는 선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한 눈 팔지 말고 그 길을 올바로 가야 하는 것이 성소에 올바로 응답하는 자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응답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크거나 작음의 차이, 무겁거나 가벼운 것의 차이는 없는 법입니다.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의 모습은 요한묵시록 7장의 말씀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부럽게 여긴다면 조금 더 낫게 행동하겠다고 하는 것이 우리가 갖는 자세일 겁니다.

 

결혼성소와 수도성소를 사제성소와 함께 기억하는 날, 우리 신앙인들은 각자의 삶의 위치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지 살필 일입니다.

 

우리본당의 첫 번째 신학생이 되어, 지금은 논산훈련소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신학생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짧게나마 하는 기도가 모여서, 하느님의 뜻을 굳건하게 따르겠다는 마음을 유지시켜 줄 것이고, 또 그의 행동은 우리 신앙인들을 위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성소의 길을 준비하는 남학생이나 여학생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더, 수도자도 포함한 얘기이겠습니다만,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자기 삶의 시간을 사용하는 사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그들도 인간들이라서 단점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에 대해서 여러분이 욕을 하고 비난해서 얻을 좋은 결실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행동들 대신에, 여러분이 정성으로 기도하신다면, 그들도 더 나은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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