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강론자료

2013-0329...주님수난 성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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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3-30 ㅣ No.1348

주님의 수난 성금요일 이사 52,13-53,12 히브리 4,14-16; 5,7-9 요한 18,1-19,42

 

2013. 3. 29. 등촌3

주제 : 예수님의 삶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따라서.......

세상 모든 일에는 끝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끝을 생각하는 것은 슬픈 일이라고 여겨서, 끝보다는 시작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새로운 시작이 있으려면 그에 앞선 일의 끝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세상의 삶을 마치신 날이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는 방법으로 당신이 선택하신 일의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신 날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뜻이나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라면, 하느님은 왜 그렇게 일을 하시느냐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높이 만큼 클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전례를 통하여 기념하도록 하신 일은 인간의 시선으로 볼 때, 분명히 끝이 맞기는 합니다만, 이 끝은 새로운 시작을 잉태하고 있음을 알아야, 오늘 함께 하는 전례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오늘 읽은 수난기도 아주 길었습니다. 오늘 금요일에 읽는 수난기는 지난 주일에 읽었던, ‘수난성지주일에 읽는 말씀과는 다릅니다. 주일에는 전례력 가--다해의 순서에 따라서 돌아가면서 읽습니다만, 오늘 금요일 전례에는 늘 요한복음사가가 기록한 말씀을 읽습니다.

 

마태오-마르코-루카의 공관복음서와 요한의 복음서가 전하는 수난기의 내용에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을 말하라면, 공관복음서의 내용보다는 요한복음사가가 전하는 수난기 내용이 알아듣기가 쉽고, 우리를 덜 부담스럽게 해준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일이 벌어진 사실을 전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고 말할 수 있다면, 요한복음서는 예수님의 삶, 사명에 대해서 우리에게 논리와 신학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죽도록 명령했던 빌라도가 오늘 수난기에는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던 인물로 나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요구에 따라 무조건 사형을 언도하기를 미루었던 사람이고, 예수님께서 말하신 내용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하느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세상일에 골똘했던 사람이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딱한 사람이었다는 사정을 받아들여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던 인물이라는 평가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질 문제는 빌라도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수난기의 내용만 읽어서는 신앙에 관련된 요소를 전부 다 알아들을 수 없을 일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기는 합니다만, 세상에 사는 우리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한 순간에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신앙이 형성되어 우리에게 전해오고, 예수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깨닫게 되기까지 인류가 사용했던 시간은 아주 깁니다. 어쩌면 우리가 세상에서 머무는 짧은 기간만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것을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논리분석적인 것이 아니고, 받아들이고 하느님께 나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라는 말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고 들은 요한복음사가가 전하는 수난기의 내용은 우리가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살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 질문에는 정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을 알아들은 사람이 하는 대답이 다를 것이고, 이러한 질문을 듣지 않으려고 일부러 거부하는 사람이 하는 대답이 다를 것입니다. 또한 지금 신앙인으로 잘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하는 대답이 다를 것이고, 남들은 나를 신앙인이라고 봐주지만, 내가 그 소리에 걸맞게 살고 있지 않다면 그때 내가 하는 대답이 또한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삶의 끝에, ‘다 이루어졌다(!)’고 하시는 선언을 통하여, 인간의 몸을 취하신 분으로 태어난 사명을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사명을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알아들으십니까? 우리가 알아듣고 드러내려고 하는 내용에 따라, 우리는 참-그리스도인이 될 것인지,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거짓-그리스도인이 될 것인지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전례의 다음부분인, ‘십자가를 보여주는 예식을 통해서 보여줄 십자가’, 예수님께서 달리셨던 십자가, 세상의 기준에는 죽음과 형벌 그리고 치욕의 도구였던 십자가가 인류구원의 도구가 되었다고 믿는 종교요 신앙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의미를 갖는 그리스도교를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런 의미의 신앙인들인지 잠시 질문해봐야 할 일입니다.

 

오늘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날, 예수님이 무덤에 묻히신 것을 기억하는 날, 예수님의 사명을 함께 생각하는 날, 오늘 전례에 참여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좀 더 잘 알아듣고, 실천하게 해주시기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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