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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구한말 토착종교와 가톨릭의 만남: 수신영약(1900)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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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02 ㅣ No.82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6) 구한말 토착종교와 가톨릭의 만남


’수신영약’(1900)을 중심으로 - 미신적 무교 민간신앙과 충돌은 불가피한 귀결

 

 

이 연구는 구한말 전통문화와 가톨릭의 갈등을 보여주는 구체적 자료로 평가되는 ’수신영약’(修身靈藥, 1900)에 중점을 둔다. 이 필사본은 제주교구가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1997년경 찾아내 그 존재가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제주도에 부임한 초창기 성직자들 중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김원영(金元永 아우구스티노, 1869-1936) 신부가 저술한 ’수신영약’은 제주도 토착종교 및 민간신앙의 현상들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룬 후 이에 대하여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가톨릭 교리가 올바름을 내세우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글에서는 ’수신영약’의 사상과 내용이 당시 제주지역 민간신앙 및 토착종교와 어떻게 대립하였으며, 전통문화와는 어떤 갈등을 빚었고, 또 지역사회와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충돌을 빚었는지를 알아본다. 결론에서는 대전환기였던 구한말 한국사회에서 벌어졌던 가톨릭과 토착종교간의 만남과 갈등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 찾아보고자 한다.

 

김원영 신부는 1882년부터 1899년까지 18년간 선교사들로부터 신학교 교육을 철저히 받은 ’시대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첫 임지로 부임한 제주도의 어려운 환경에서 활동하면서 ’수신영약’ 원고를 마련하였다. 김원영 신부가 제주도 부임 초기에 이미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여겨지는 ’수신영약’의 직접적 저술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도의 강한 무교, 민간신앙 전통에 대한 비판

둘째, 제주도의 문란한 풍습에 대한 비판의식

셋째, 천주교에 대한 오해의 시정(호교론)

넷째, 선교효과(전도용 교리서)

다섯째, 제주도 거주 유일한 한국인 천주교 성직자로서의 현지체험과 사명감.

 

이러한 배경에서 다음과 같은 순서와 내용으로 총 26항, 46쪽에 이르는 ’수신영약’ 원고가 집필되었다.

 

1) 서론에서는 진리를 모르는 자들에 대한 탄식으로 글을 시작한다. 어서 바삐 모든 미신[이단사망 異端邪忘]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원문: 하날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한다.

 

2) 천주교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오해에 대한 해명: 보유론(補儒論) 입장에 서있던 당시 교회 태도에 따라 원시유교사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하여 천주교 교리를 설파하는 데 있어서 유교논리를 끌어다 인용하는 인유론적(引儒論的) 방식을 택하고 있다.

 

(2) 적극적 교리설명: 전형적 스콜라 신학을 동원하여 논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상 만물의 제1원인으로 하느님을 설명하는 식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보충적으로 유교적 설명을 덧붙인다. 사서오경의 내용이 곳곳에서 종횡으로 인용된다.

 

3) 제주도의 풍습에 대한 비판이다. ’수신영약’ 후반부는 제주도 고유풍습과 토착신앙에 대하여 비판하는 내용이 주종을 이룬다. 먼저 제주도 선교의 가장 큰 현실적 장애로 인식되던 혼인풍습에 대하여 비판하고 그 대책을 찾고 있다.

 

4) 제주도 무교, 민간신앙에 대한 비판이다. 그 다음은 제주도 고유 토착신앙들을 일일이 열거해 가면서 비판하는 내용이다. 뱀신앙, 풍수, 택일, 관상, 무당과 굿에 대한 비판이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제주도에서 행해지던 23종류의 각종 민간신앙 및 제사들을 비판한다.

 

5) 결론에서는 몸의 명약[金鷄蠟]과 마음의 영약[修身靈藥]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천주교 신앙을 다시 한번 강력히 권고한다. 선교사에게서 회충약이나 키니네[金鷄蠟, 말라리아약] 등 몸의 명약만 구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영약[修身靈藥]도 어서 빨리 구해서 진리를 깨닫도록 하라고 권하면서 글을 맺는다.

 

이제 구체적으로 제주도 선교현장에서 어떤 갈등과 충돌을 빚었는지 세부분으로 나눠 살펴본다.  

 

1) 토착 무교와의 대립: 제주도의 강한 ’미신’이 전교에 일차적 장애가 된다는 판단이 당시 교회 지도층의 일관된 인식이었다. 그러한 교회 당국의 태도에 직접적 영향을 받은 제주 천주교회는 토착종교에 대하여 매우 공격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태도가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신당(神堂) 방화나 성황당 파괴, 신목(神木) 벌채, 무당[심방]에 대한 비난과 상해 그리고 굿판을 방해하는 행위들이었다.

 

2) 전통 문화와의 갈등: 서구 중심적 의식을 나타냄으로써 외래 가톨릭사상과 전통 종교문화의 충돌은 불가피한 귀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제주도의 고유한 결혼 풍습이나 생활방식이 전교에 지장을 주는 중대한 장애라고 여기고, 그러한 풍습을 타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고유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무시는 사회 통합적 의미를 갖는 국가 행사인 여러 종류의 제사들에 대하여서도 역시 일괄적으로 비난하는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지역 사회와의 충돌: 배타적 우월감을 갖게 된 천주교 신자들은 결국 교회 요구에 따르지 않는 일반인들에 대하여 자의적으로 사형(私刑)을 실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거기다가 지역사회와의 충돌에 근본적 배경으로 작용한 사안은 천주교 신자들에 의한 세금징수 문제였다. 이렇게 하여 천주교회는 첨예한 경제적 갈등에, 특히 세폐(稅弊)에 직접 연루된다. 다른 한편, 당시 관리들의 부패상에 대하여 김원영 신부는 강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관리들의 부정과 불의를 시정하겠다는 그의 강경한 자세가 관리들과의 마찰을 자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이렇게 제주도 선교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지는 ’수신영약’에 대하여 당시 교회 당국은 적어도 공개적 사용을 거부하였다고 보인다. 교회 당국은 ’수신영약’의 공격적 내용이나 그 속에 담긴 김원영 신부의 강직한 기질이 부작용을 낳을 것으로 우려하였던 듯하다. 결국 제주도와 그 주변 선교현장에서 교회와 사회간의 크고 작은 충돌 사태가 발생하자 교회 당국의 그러한 판단이 더 굳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마침내 ’수신영약’의 저자인 김원영 신부에 대한 문책과 좌천으로 판단할 만한 인사조치가 뒤따른다. 즉 신축교안 이후 김 신부가 제주도로 귀환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에 그는 제주도 한논본당 주임신부에서 해임되어 경기도 갓등이본당(현 수원교구 왕림) 보좌신부로 이동되고 만다.

 

구한말 천주교와 토착종교의 관계를 알아보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하는 ’수신영약’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수신영약’은 구한말 제주도 전통종교, 그 중에서도 무교 및 민간신앙의 실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둘째, 당시 가톨릭 교회 당국 및 성직자가 한국 토착종교 및 전통문화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이해 정도 및 태도를 규명하는 실증적 자료이다.

 

셋째, 한국에서 이뤄지는 종교간 만남과 교류의 역사를 서술하는 데에 있어서, 가톨릭과 토착종교간 만남의 첫 장을 여는 의미있는 기록자료이다.

 

넷째, 그러나 이 저술은 시대적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문헌이다. 그런 점에서 ’수신영약’은 당시 한국교회의 타종교 및 고유문화 그리고 전통사회에 대한 태도를 구체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문헌이다.

 

다섯째, 그리하여 ’수신영약’은 한국사회에서 이뤄지는 이웃종교간 만남과 교류에 있어서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앞으로 진정한 대화와 협력의 길을 찾는데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

 

’수신영약’의 내용으로부터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천주교회와 전통사회의 대립,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불행했던 과거사는 종교문화간 만남의 과제로서 ’화해’의 의미를 다시 한번 부각시킨다. 이 같은 전향적 자세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종교문제로 말미암아 벌어지고 있는 문화간 대립과 문명간 충돌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바람직한  길을 제시해 준다고 볼 수 있겠다.

 

인류 공동체의 삶 속에서 문화보존과 전승이라는 역할을 여전히 기대하게 되는 종교들간의 관계를 정립하게 되면, 한국 사상과 전통 속에서 유지되어온 희망의 뿌리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러한 근거의 재발견은 사람과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사회에서 문화전통을 재확인하고 영성을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종교신학’의 바른 틀을 제시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평화신문, 2003년 8월 24일, 박일영(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장, 연구책임자, 종교학), 김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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