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강론자료

2013-0707...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순교자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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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7-06 ㅣ No.1373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0705]

역대기하권 24,18-22       로마 5,1-5      마태 10,17-22

2013. 7. 7. (주일). 등촌3. (75일은 192579위 시복일)

주제 :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기를.....

오늘은 지난 금요일, 75일에 기억하는 것이 제 날짜인,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안드레아 사제의 순교자 대축일을 옮겨서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축일을 주일로 옮겨서 기억은 합니다만, 본 날짜로 알고 있는 75일은 김대건성인이 남겼을 삶의 흔적과 특별하게 관련이 있는 날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오늘, 저는 미사를 봉헌하면서, 여러분에게 이 땅에서 사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라고 청합니다. 물론 사제이든지, 그 누구이든지 올바른 길로 가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실천이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개인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은 개인에게 맡겨두고, 미사에 오신 여러분에게는 신앙인으로서 한 가지 마음과 생각으로 중요한 일에 함께 해주시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사제란 세상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세상에 하는 사람!!!)

흔히 듣는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이런 질문을 들으면, 사람들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혼자 사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먼저 나오곤 합니다. 이 대답은 질문의 방향이나 의도와는 관련이 없는 대답이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먼저 말하곤 합니다.

 

사제들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이런 대답을 들을 때, 사제라고 불리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결혼에 관한 문제(!)’뿐이구나!‘ 하는 생각을 말할 수 있습니다. 좀 더 반복하면, 결혼하지 않고 살기만 하면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제로 살아가는데, ‘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는 얘기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의 하나 일 뿐이지, 그 대답이 사제라는 사람의 삶에 대한 절대적인 평가나 가치를 주는 대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사람들의 삶에 관련되는 공통점은 없기 때문에, 그저 사제는 혼자 사는 사람이라거나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밖에 없구나 하는 대답이 아쉽다는 것입니다.

 

오늘 첫 번째 독서에는 사제 한 사람의 비참한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가만히 살펴보면, 구약시대는 사제에 대해서 바라볼 때, 혼인에 관한 것이 중요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집 뜰에서 돌에 맞아 죽은 즈카르야 사제는 아버지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이 사제라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할 때, ‘혼인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하는 판단은 아쉬운 대답이라는 입니다.

 

오늘이 김대건안드레아사제를 기억하면서, 이 땅에 사는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라고 청하는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나라 초창기 교회전례의 역사에서, 신앙의 본보기를 보였던 분들, 79명을 복자품에 올리던. 1925년에 이 땅의 순교자들 가운데 이름을 가장 앞세운 분으로 김대건안드레아를 기억한 것 뿐이니, 그 기억을 살려서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날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저는 여러분에게 그렇게 해주시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모아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힘이 그들 안에 실현되게 해달라고 청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모아 본당의 사제들이나 또 다른 방법으로 알고 있는 사제들을 위해서 기도하면, 사제도 또한 신앙인들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모든 이가 한 마음으로 나와 똑같이 기도한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으니, 이론적인 얘기이겠지, 사람은 받는 것이 있으면 뭔가를 주거나 요구하는 것이 세상살이에서 통용되는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성을 모아,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일에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야 할 일 일입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겠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생각을 하도록 강조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곤경에 빠질 때에)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듣는 우리기는 하지만 세상의 걱정을 조금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런 말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방법을 돌이키고, 마음과 생각을 새롭게 하여, 하느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 뜻의 실현은 내가 세상일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일들을 실천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과 어려움들을 우리가 자랑으로 여길 수는 없겠지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힘을 입어, 그것들을 두렵지 않게 대하는 것이 새로운 삶을 이루기 위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오늘 사제들의 수호성인, 김대건안드레아 사제를 기억하는 날, “하느님, 이 세상에서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당신의 사제들이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내려주시고, 당신의 뜻을 따르려는 신앙인들을 바르게 이끌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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