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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 교회사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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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0-31 ㅣ No.21

[시사진단] 한국교회사에 대한 반성

 

 

1994년에 반포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제삼천년기'는 교회가 새 천년을 맞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준비를 제시한 교서다. 교황은 이 교서에서 "교회가 새로운 천년기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과오와 불충한 사례들, 항구치 못한 자세와 구태의연한 행동에서부터 자신을 정화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신앙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정직하고 용기있는 행동"이라고 강조하였다(제33항).

 

이 교서의 반포 이후, 교황청에서는 갈릴레오 재판, 진화론 단죄, 루터의 종교개혁안 수용 거부,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 대한 침묵 등 지난 1000년 동안 교회가 인류 앞에 행한 과오들을 고백하였다. 또 이와 같은 가르침과 모범에 따라 세계 수십개 국가의 주교회의에서도 과거사를 반성하는 문서들을 발표하였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다소 늦기는 하였지만, 한국주교회의에서도 과거사를 반성하기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주교회의에서는 역사신학위원회를 구성하여 교회사에 대한 반성문제를 검토케 하였는데, 이 위원회에서는 여러 차례의 회의를 통해 곧 결과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발표될 한국교회의 과거사 반성에 기초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 움직임은 최근 한국교회 일각에서도 비교적 활발하게 진행되어 왔다. 지난 수년간 여러 교회 단체들은 선교사들의 정치 불간섭주의와 안중근 의사 의거에 대한 교회의 입장, 조상제사를 비롯한 전통문화와의 관계, 황사영백서에 포함된 대박청래(大舶請來), 병인양요와 교회와의 관계, 제주 교안(敎案) 등을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심포지엄들을 개최해왔으며, 이러한 움직임에 맞추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도 지난 가을 '한국 천주교회사의 성찰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대희년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었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들은 교회의 과거사 반성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한국교회에는 호교론적인 태도가 팽배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1980년대 개최되었던 '조선교구설정 150주년기념행사(1981년)', '한국천주교회창립 200주년기념행사'(1984년),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1989년) 등을 치르면서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극심한 박해를 겪은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하였음을 자축하면서 그동안 쌓아온 업적들을 기리는 풍조들이 크게 확산되고 있었다.

 

물론,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호교론은 필요하다. 그러나 호교론은 무조건적인 자기 찬양이나 자기 미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와 사명 수행에 대한 확고한 의지 표현이 되어야 한다. 자기 미화나 변명을 포함하는 소박한 호교론은 오히려 자신의 쇄신과 성장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교회의 쇄신과 발전,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서는 오히려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반성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교회의 과거사 반성은 즉 민족의 수난과 고통으로 점철되어온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과연 교회가 복음의 정신으로 민족이 당하는 수난과 고통에 동참코자 하였으며 그것을 해방과 구원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투신하였는가, 아니면 자신의 안전과 외형적 성장에만 관심을 가졌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따라서 교회사 반성은 한국교회가 민족사 속에서 수행해온 공과를 따지거나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하느님과 민족 앞에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는 일종의 고해성사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고해성사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대한 성찰과 통회, 정개(定改), 고백 그리고 보속이 따라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과거사 반성 또한 이와 같은 내용과 절차를 따라야 할 것이다.

 

교회사 반성은 반성문을 발표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진정한 반성을 위해서는 고백과 함께 교회구조와 사목정책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쇄신이 따라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과거사 반성은 교회사와 민족사가 화해하는 참다운 한국교회의 고해성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신문, 2000년 9월 3일, 노길명(세례자 요한, 고려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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