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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조숙과 권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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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2-10 ㅣ No.882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조숙과 권 데레사

 

 

박해시대 순교자들 가운데 동정을 지키며 살았던 두 부부가 있습니다. 전주 치명자산에 모셔진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그리고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조숙 베드로와 권 데레사입니다.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난 조숙 베드로(1786-1819년)는 선하고 친절한 성격에다 근엄하고 침착하였습니다. 그의 조부와 숙부가 1801년 신유박해에 희생되었습니다. 그는 강원도에 있는 외가로 피신하여 여러 해를 지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과 친척들이 신앙 때문에 당한 어려움으로 교리를 실천하는 데 그다지 열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권 데레사(1783-1819년)와 결혼한 뒤부터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최근 한국교회사연구소 방상근 박사는 “일성록”에 기록된 기록과 결안을 통해 조숙의 한자명이 기존에 알려진 숙(淑)이 아니라 숙(塾)으로, 또 권 데레사의 이름이 천례(千禮)였음을 새롭게 밝혀냈다(“교회와 역사” 2010년 3월호 - 필자 주).}

 

권 데레사는 7세에 어머니를, 9세에 부친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를 여의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집안이 몰락하고 오빠들은 귀양을 갔으며, 모든 재산을 잃는 어려움을 당하였습니다. 부모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네 아이들 가운데 데레사는 막내였습니다. 정신과 마음의 모든 자질을 갖추고, 온유하고 호의적인 성격을 가진 그녀는 모든 이와 절대적인 화합 속에서 지냈습니다.

 

권 데레사는 주문모 신부에게 성사를 받을 때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현실적인 처지를 걱정한 친척들의 권유로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21세에 조숙 베드로와 결혼하였습니다. 이때 권 데레사는 동정부부로 지낼 것을 제의하는 글을 전했고, 조 베드로는 곧바로 동의하였습니다.

 

서울 북부 사재감계(司宰監契, 종로구 창성동)에 살면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였고, 때때로 동정부부 서원에 거슬리는 유혹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물리치는 각별한 은총을 얻었습니다.

 

조 베드로는 신심이 깊은 아내의 탁월한 덕성과 마음을 파고드는 말들로 뜨거워져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살림에도 성직자 영입을 추진하는 정하상 바오로의 모든 것을 준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기도와 묵상에 열심인 그는 종종 통회로 많은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일들을 멀리하면서 교회 일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즐겨 그에게 배우러 오곤 했습니다. 그는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부부는 각자가 자신을 온전히 성화시키며 이웃을 돕는 데 전념하였고, 그들의 생활은 교우 부부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가르침과 위로와 감화를 찾는 모든 이에게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1817년 3월 22일 이전 한성부에 체포되었습니다. 포도청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으며 배교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확고하였습니다. 감옥에서 쓴 서한에 “내가 들어선 이 길은 나로 하여금 예수와 마리아의 계획하심을 누리게 할 목적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고 하였습니다. 조 베드로와 권 데레사는 함께 감옥에 갇혀서도 서로 위로하였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렸습니다.

 

권 데레사는 “나 같은 죄 많은 여자에게 하느님께서는 이미 동정을 지킬 수 있는 너무나 크나큰 은총을 허락하여 주셨는데, 또 이렇게 나를 순교의 은총에 불러주십니다. 내겐 너무나 과분할 뿐입니다. 내가 어떻게 합당하게 감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조 베드로에게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유혹과 좌절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때 권 데레사가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권 데레사는 같은 날 함께 순교자가 되고자 하는 확고함을 지키도록 그를 얼마나 잘 이끌었는지 모릅니다.

 

수감되고 2년 동안 크나큰 형벌과 궁핍함을 견디어낸 그들은 1819년 6월 20일 이후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순교 직후 그녀에게서 세 번의 칼자국을 발견한 한 신자는 “온몸은 빛나고 한 송이 꽃과 같은 신선함을 지니고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시신은 한 달 뒤에야 거두어졌는데, 뼈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권 데레사의 머리카락은 1839년에 순교한 남이관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집에 있는 대바구니 속에 흐트러진 채 넣어져 보관되어 있었는데, 바구니를 열면 거기서 향기가 나와 온 방안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조숙과 권 데레사가 이룬 동정부부의 삶은 한국 교회 안에서 신앙과 순교의 꽃이 가정생활 안에서 어떻게 피어나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요셉과 마리아처럼 성가정을 이루는 본보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들처럼 우리의 가정도 성가정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경향잡지, 2010년 11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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