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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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맛들이기] 가르멜 영성과 기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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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빈 [ssk5762] 쪽지 캡슐

2017-08-13 ㅣ No.1000


"주님, 당신은 누구시고 나는 누구입니까"

**기도를 잘하기 위한 바른 자세(중)

 # 영혼 안에 성삼위의 현존

 인간의 성소가 하느님과의 통교라 한다면 이 신적인 분과 사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의 다른 어떤 신비보다 '영혼 안에 하느님이 내주'하신다는 신비가 가장 영적인 완전함에로 이끌어 준다고 본다.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이 자신의 영혼 안에 계심을 깨닫고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때 내가 지금의 나처럼 내 영혼의 작은 궁전 안에 하늘 나라의 임금님이 계시다는것을 알았던들, 그토록 당신을 혼자 버려두지 않고 다만 몇 번이라도 당신과 같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자신의 궁전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했을 것입니다…."
 일순간 하느님께 눈을 돌리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다. 기도는 일순간, 일순간 수없이 주님께 사랑을 가지고 마음의 눈을 들어올리는 작업이라 할 수있다.
 "임금님이 계신 곳이 궁궐이라면 하느님이 계신 곳은 하늘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데레사 성녀는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여러 군데에서 하느님을 찾다가 마지막에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늦게야 임을 찾았습니다. 임은 내 안에 계셨건만 나는 밖에서 임을 찾았습니다."
 이 진리-하느님이 영혼 안에 계심-를 깨닫는 것은 정신을 집중시켜주고 영혼을 거두어 주기에 매우 중요하다. 영원하신 아버지와 이야기 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 필요도, 큰소리로 외칠 필요도 없이 다만 고요 속에 '나'를 두고 '나 안에서' 당신을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기도는 고요 속에서
 하느님은 고요와 침묵의 하느님이다. 고요 속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하느님과 동시에 자기 욕심이나 세상의 것을 동시에 생각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하느님과 이야기하면서 딴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묵상기도가 무엇인지 못 알아들은 소치입니다. 혹시 누가 입으로는 '주님의 기도'를 외우고 마음은 세속에 가 있으면서 그래도 하느님과 이야기 한다고 말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완덕의 길」 22,1).
 이것은 곧 기도를 드리면서 남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거나 닥치는 대로 딴것을 생각하면서 그걸 걷잡으려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완덕의 길」 24,4).
 마음을 보다 쉽게 거둬들이기 위해서는 자아인식이 필요하다. '나는 누구이고 하느님은 누구신지' 아는 것이다. 내가 어느 분과 이야기 하고 있으며 말하는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러 번 경험한 바에 의하면, 기도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빌고 있는 말들을 어느 분에게 드리고 있느냐는 생각을 힘써 가지는 것입니다"(「완덕의 길」 24,6).
 이렇듯 나는 누구이고 하느님은 누구신지에 마음을 집중하다보면 큰 분심없이 오랫동안 깊이 잠길 수 있다. 프린치스코 성인 역시 "주님, 당신은 누구시고 저는 누구입니까?"라는 말로 온통 밤을 지새워 기도했다고 한다.
 하느님이 누구이시고 나는 누구인지를 아는 자아인식은 영혼이 관상의 절정에 오르기까지 필요한 빵으로(겸손과 식별의 근원) 가르멜에서는 초심자부터 관상자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게 다룬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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