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3-1110...연중32주일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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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11-09 ㅣ No.1417

연중 32 주일 (다해)

2마카베오 7,1-2.9-14         2테살로니카 2,16-3,5       루카 20,27.34-38

2013. 11. 10. 등촌3.   

주제 : 영원한 생명을 대하는 자세(?)

세상에서 80년이나 100년쯤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 목숨의 길이보다 훨씬 더 긴 시간에 대하여 묻고 손을 뻗어서 닿지 못할 먼 곳에 있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그에 대한 대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세상 삶도 바쁘다고 말할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멀리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 할까요? 눈에 보이는 현실만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자세는 어리석고도 또 어리석고 아주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우리들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많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판단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손에 잡히지 않는세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에 등장한 사두가이파사람들은 죽음너머의 삶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부활이나 사후세계는 경험도 하지 않았으면서 모든 것을 아예 부정하던 사람들의 무리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겠다는 의도로 다가와서 아주 색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지도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던 일, 신앙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관심이 있었을 일들에 대해서 왜 관심을 가졌을까요?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왜곡된 자세로 다가오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어떤 말로 대답하면, 그들의 태도나 자세가 올바른 것으로 달라지겠습니까? 예수님시대의 오래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신앙의 것들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두가이파사람들이 질문하는 태도가 잘못된 믿음을 가진 것 때문이라고 판단하시고, 올바른 믿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하느님을 만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길 죽음이후의 삶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내가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니 모른다고 하거나 그런 세계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하면 충분한 대답이 될까요?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질문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하여 그들을 올바른 믿음으로 이끌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을 수도 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고, 내가 대답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2100년이 넘는 시간 전에 일어났던 일로 마케베오서가 기록하는 일곱 형제의 순교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읽은 독서에는 일곱 명의 아들들 중, 둘째, 셋째, 넷째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습니다만, 이 형제들이 하느님에게 성실하려고 했던 자세가 내 안에도 있는지 돌아볼 때,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아들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머니가 보게 해서, 아들들로 하여금 딱한 어머니를 생각하여 배교하기를 바랐던 박해자를 향하여 일곱 형제들은 세상 삶에는 미련이 없는 사람들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말합니다.

 

세상의 임금인 박해자, 너는 우리를 이 세상에서 몰아내지만, 너의 그러한 시도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돕는 행동이라는 선언은 둘째 아들의 말이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신체의 어느 부분도 기꺼이 바칠 수 있다(!)는 것이 셋째 아들의 대답이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다시 부활시켜 거라는 희망으로 세상의 임금인 네가 나에게 주는 세상의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놀랍게 얘기하는 넷째 아들의 모습은, 세상의 다양한 환경에 시달린다면서, 신앙의 중요성을 달리 대하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겠습니까?

 

세상에 통용되는 어떤 원칙이든지 우리가 받아들이고 실천할 때라야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기는 법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마카베오서를 통해서 듣는 이러한 내용을 이론으로만 대하고 실천의 입장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태도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사도는 테살로니카에 살던 교회공동체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라고 청합니다. 신앙인들이 서로 주고받는 기도는 세상을 대하고 이기는 올바른 힘을 키워줄 것이며, 세상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며 신앙에 해가 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세상의 악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11월 위령성월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한 특별한 때는 아닙니다만, 신앙인으로 살면서 이 시간을 지내는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는 어떤 것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대답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그 질문을 듣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사람으로 나는 살고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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