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3-0929...연중26주일...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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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09-28 ㅣ No.1410

연중 제 26 주일 (다해)

아모스 6,1. 4-7            1티모테오 6,11-16         루카 16,19-31

2013. 9. 29. 등촌3

주제 : 삶에 대한 해석

세상의 삶에는 여러 가지 소리가 있습니다. 크게 구별하면, 나를 칭찬하는 좋은 소리와 나를 힘겹게 하는 좋지 않은 소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둘 중에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칭찬하는 소리와 즐겁게 해주는 소리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후회하는 일은 없을까요? 다시 말해서, 나를 힘겹게 하는 소리를 선택해야 하는 것인데......하고 뒤늦은 판단을 하지는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 역설(逆說,겉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하여 진리에 반대하고 있는 듯하나, 실질적인 내용은 진리인 말)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이 아닌 남을 향해서 하는 소리이겠지만, 드러내는 표현과는 다르게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그 순간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역설을 적용하여, 오늘 시작에 한 말을 반복한다면,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는 소리와 나를 즐겁게 해준다고 하는 소리는 정말로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나를 칭찬한다면, 이제는 내가 차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야 할 걱정을 해야 한다는 소리일 수도 있고, 나를 힘겹게 하는 좋지 않은 소리는 내 앞에 놓여있는 문제들만 해결한다면 이제부터는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로 알아들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알아들으려면 공덕(功德)을 안으로 쌓아야만 나올 수 있는 소리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귀에 들려오는 부담스러운 소리좋은 뜻을 담은 소리로 해석하려면, 대충대충 살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세상에서 듣는 소리는 나를 칭찬하는 소리보다는 그에 반대되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한 순간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행동하는 사람이냐 하는 것도 안으로 공덕(功德)을 갖춘 특별한 사람인지, 아니면 남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이요, 필부(匹夫=남자,匹婦=여자)인지 구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삶의 모양을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려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편하지는 않을 법한 재산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돈이라는 것이 내 삶에 때로는 좋은 것으로 오기도 하고, 나쁜 것으로 오는 때도 있습니다만, 이 녀석을 떼놓고는 사람의 행복한 삶을 생각할 없는 자본주의 세상이 된 지금, 우리가 재산에 관하여 어떤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루카복음에 나온 것처럼, 부자는 이 세상에서만 행복한 사람이고, 이 세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하느님나라와 함께 생각한다면 세상에서 부자였던 그 사람의 삶은 힘겹고 불행한 것이어야 할까요? 오늘 복음말씀은, 부자로 등장한 이름이 없는 사람과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었던 라자로의 삶을 비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라자로가 남긴 삶의 본보기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현실의 삶과 연결된 새롭게 시작된 세상에서 힘들고 고생을 하는 사람으로 나오고, 아무런 본보기도 남기지 않은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를 받는다는 소리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도대체, 세상에 사는 신앙인들이 어떤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느님은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겠습니까?

 

오늘 복음을 대하면서 하느님은 세상의 부자를 멸시하거나 미워하는 신()’이며, ‘가난한 사람이라면 이유도 없이 무조건 좋아하는 신()’이라고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그렇게 하는 생각은 세상의 구조와도 맞지 않으며 우리가 가난에 대해서 잘못된 생각을 갖게 할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신앙인의 길을 떠나게 하거나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멀리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복음말씀을 듣고, 우리는 우리에게 생긴 재산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야 한다고 권고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아모스예언자를 통해서 들은 말씀도 같은 뜻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자기 민족이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걱정하지 않고, 풍성한 음식만을 먹으려고 하고, 술과 향유로 자기 몸을 망가뜨리는 자들의 행복이 이제 끝에 다가왔음을 선포합니다. 서글픈 소리입니다. 누군가가 자기 목숨을 내걸고 우리에게 힘겨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그 말을 듣는 우리가 따로 반박할 수 없다면, 정말로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 반박하는 말 표현이나 그 태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의 내용에 비춰, 내 삶을 보고 내가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대하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삶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고 내가 사용하도록 해주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구원이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하여, 빌라도에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신 예수님을 살펴보고, 우리도 그분과 함께 할 수 있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오로사도께서 당신의 제자, 티모테오에게 하신 말씀을 조금 바꾼 것이기는 하지만, 그때로부터 2000년 쯤 지난 세상에 사는 우리도 알아들을 말씀은 있는 법입니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장소에 가서야, 세상의 삶을 돌아보고 뒤늦게 세상에 두고 온 형제들을 생각하며,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들어줄 수도 없는 부탁을 했던 부자와 같은 행동을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내일로 끝나는 순교자성월에 우리는 신앙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지내왔는지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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