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2년 서울대교구장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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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43

2002년 부활 메시지


부활은 진실과 사랑의 승리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온 누리의 생명이 움터 나오는 봄날에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우리 민족과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힘차게 솟아 나오는 새싹들을 보면서 우리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는 생명의 힘을 떠올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하느님을 극진히 섬기셨고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분을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마침내 죽게 되리라는 것을 감지하셨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 죽음은 끝이 아니며 하느님의 생명 속에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부활신앙은 가장 중요한 기반입니다. 우리는 부활신앙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으며, 그분의  고통과 죽음, 우리들이 겪는 일상의 고통에 담긴 구원적 의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1고린 15,14). 부활이 없다면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우리는 불의와 쉽게 타협하고 죽음 앞에 절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생명 안에 영원히 살리라는 믿음을 간직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현실이 어둡고 고통스럽더라도 구원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고 악의 세력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부활은 죽음의 어두운 세력을 이긴 영원한 생명 그 자체입니다. 부활은 거짓과 미움을 이긴 진실과 사랑의 승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삶의 끝이 결코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알렐루야'를 부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부활 대축일에 우리는 세상의 어둠을 그리스도의 광명으로 밝히는 빛의 예식을 거행합니다. 사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세상에는 금력과 권력, 그리고 무력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이웃을 희생시키는가 하면,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 때문에 공동체의 고귀한 가치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인간의 생명도 경시 당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할 지도층에게서 부정부패가 자주 발견되는 것은 국가 전체의 이익과 국민 정서를 위해서도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또한 세계 도처에는 테러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죄 없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이 세상의 폭력과 불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대한 절망이 우리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부활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사는 우리들이 희망의 징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부활의 증인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신앙을 이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느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골로 2,12). 이 세상을 전부로 생각하여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 눈에 보이는 물질보다도 더 소중한 가치인 사랑과 믿음이 있다는 것을 올바른 삶을 통해서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돌이켜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행동은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부활을 앞당겨 가져올 만큼 성실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과 정의가 충만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염원하는 우리의 기도는 부족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죽음과 절망이 그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 위세와 맞서서 얼마나 용감한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혼탁한 시대에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활은 결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죽음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희생 속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다짐 속에서, 평화에 대한 무한한 갈망 속에서,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 속에서 어렵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 꽃이 피면 어떤 악의 세력도 넘볼 수 없는 힘찬 기운을 주변에 펼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사실을 유감 없이 보여 줍니다. 그분의 부활 앞에서 절망과 죽음은 사라지고 맙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먼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요즈음 한국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똑바로 운동'에 동참하면서 우리 자신과 사회 공동체가 똑바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 우리를 감싸고 있는 죽음과 절망을 땅 끝까지 물리쳐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 데 도구가 되어 줄 것을 당부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들이 모두 한 형제 자매로서 서로간에 사랑을 나누며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과 정성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다시 한 번 여러분과 우리 민족, 그리고 온 누리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복되신 성모 마리아와 천상에 있는 모든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며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02년 3월31일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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