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4년 서울대교구장 성탄 메시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40

2004년 성탄 메시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마태 1,23).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시 기쁜 성탄절을 맞이했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또한 올해 하느님의 놀라우신 은총으로 서울대교구에서 분가되어 첫출발을 한 의정부교구 형제 자매에게도 주님의 축복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에도 의정부교구가 하느님의 은혜로 복음 선포에 더욱 풍성한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특히 내년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루빨리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평화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이라는 작고 초라한 시골 마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인간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포대기에 싸여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누워 계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첫 증인이 된 이들은 밤새워 양 떼를 지키던 가난하고 순박한 목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성탄의 신비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목자들처럼 가난하고 순박한 마음을 지니고 일상에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순박한 마음은 인간적인 능력과 세속적인 힘이 아닌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믿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구세주의 탄생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인간은 주님의 희생과 속죄에 힘입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탄은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잘 드러내는 계시의 사건입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가 경축하며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춤추는(시편 96,11)”, 환희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축제의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떠합니까? 기쁨과 환희의 노래를 힘껏 부르기에는 너무나 어둡고 암담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 곳곳에는 여전히 전쟁과 테러의 위험이 끊이지 않고 우리 사회는 점점 물질 만능주의, 극도의 개인주의, 부조리에 물들어 가치관의 혼란과 사고방식의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민생경제의 회생입니다.

 

많은 국민이 민생경제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위해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하는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지 않고 국론 분열을 부채질하여 국민에게 큰 실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은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데 전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사회의 어느 분야에서도 내일에 대한 희망의 길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어두운 현실 가운데, 사람들이 좌절하고 방황하며 죄와 어둠 속에 빠져 있는 그 한가운데 구세주는 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국민은 교회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희망의 불씨를 살려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교회는 성탄의 기쁜 소식을 외쳐야 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에 탄생하신 구세주가 불행과 절망에 빠져 있던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사회의 희망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시대의 여건과 도전에 따라 늘 새롭게 변화하고 쇄신되어야 합니다. 쇄신과 변화는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쇄신과 변화를 하지 못하는 교회는 생명력을 잃게 되고 신자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끊임없이 자성하는 마음을 지니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어둡고 암담한 이 세상에 ‘주님은 빛이고 생명’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진실한 소명입니다. 우리 교구는 새해에도 시노드 정신의 실천이 사목 현장과 사회 안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할 것이고, 특히 가정과 청소년을 위한 사목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이 겪고 있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이혼의 증가, 무분별한 낙태, 청소년 탈선, 세대 간의 갈등과 가족의 해체 등 오늘날의 가정은 많은 문제와 위기를 안고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의 토대 위에서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건설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구도 새해의 사목교서에서 밝힌 대로 교회가 앞장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복음적인 가정 공동체 건설과 가정을 위한 사목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가정은 결코 어떤 가치로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삶의 보금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건강하고 복음적인 가정 공동체를 위한 교회의 사목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당연하고 필수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구 시노드 정신의 중심인 ‘세상과 교회의 쇄신’의 첫걸음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을 위한 사목은 무엇보다도 가정이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새롭게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도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모습이 우리 안에 형성될 때까지 그분을 닮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갈라 4,19 참조).

 

우리 신앙인은 세례 때 주님께 약속한 대로 새로운 마음과 몸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자 다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대로 서로 나누고 사랑하며 섬기고 용서하는 삶을 살 때 바로 그곳에서 아기 예수님이 사랑으로 탄생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탄생하신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명의 신비 안에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다시 한 번 기뻐하며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이 이 시대와 모든 사람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4년 예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307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