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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해외원조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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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14

2004년 해외 원조 주일 담화문


사랑의 세계화에 적극적인 동참을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1.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끊임없는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수십억의 인구가 굶주리거나 만성적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무한경쟁과 최대이윤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은 경쟁력이 없거나 미약한 저개발국가의 사람들을 더욱 빈곤한 삶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다는 물질문명의 뒤안에는 수십억의 인구가 참혹한 기아와 영양실조로 신음하며 소중한 생명이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참상에 하느님은 동생 아벨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며 카인에게 하셨던 질책을 다시 하십니다.“네가 어찌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기 4,10). 

 

2.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르 12,31)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내 몸같이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밝혀 주셨습니다. 길에서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죽어 가던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이 특별히 돌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인의 형제도 아니었고 친척이나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의 따뜻한 간호를 받을 유일한 권리와 자격은 “인간”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율법학자는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가 10,29) 하고 질문을 했습니다. 율법학자의 견해는 자기를 중심으로 사람의 위치를 정해 가족, 동료, 동포 등의 원주개념(圓周槪念)으로 따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을 어디까지 확대해가면 좋을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이웃이 되었다고 생각합니까?”(루가 10,36)라고 반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관심의 출발점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호소하는 사람으로부터입니다. 철저히 타인 중심입니다. ‘어떻게 내가 다른 사람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예수님의 관심사입니다.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랑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랑해야 할 ‘이웃’은 혈연과 지연, 인종과 국경을 넘어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민족과 국경을 넘어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 특히 기아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사랑입니다.

 

3. 교회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가르쳐 왔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 계명을 실천하여 왔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다양한 길을 통하여 이웃사랑을 가난한 형제들에게 증언해 온 수많은 그리스도인 덕분에 교회 역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자선의 역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여러 교황님들의 사회적 가르침을 통하여 이웃 사랑의 실천을 세계적인 차원까지 확대하여 왔습니다. 교회는 국경과 인종, 피부색과 성별, 이념과 종교를 넘어서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나눔과 도움을 촉구하고 있고, 각 선진국 교회는 저개발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해외원조를 지속적으로 실행해 왔습니다. 한국교회도 지난 93년부터 공식적인 해외원조를 시작한 이래 사회복지주일 전국 헌금과 세계 기아민을 돕기 위한 개인 및 단체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전 세계 70여개 나라의 긴급구호 사업에 약 100억 원을 지원하여 왔습니다.

 

4.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 주지 않으면 그대가 죽이는 것이다.”한 교부의 말씀을 상기하며 각자의 능력대로 자기 재화를 나누어 주라고(사목헌장 69 참조) 호소하였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는 가뭄과 홍수, 지진과 태풍 등의 자연 재해와 전쟁과 분쟁, 동족간 내전 등의 인재로 수많은 사람들이 헐벗음과 굶주림 가운데 우리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초 미국의 테러 응징의 표적이 되어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에서 수많은 기아민이 우리에게 도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또한 얼마 전 대지진으로 가족과 재산을 잃은 수많은 이란 사람들이 추위와 기아 속에 처절히 도움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5. 이러한 호소에 대한 외면과 무관심은 이웃사랑을 거역하는 중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응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을 나를 중심으로 한 좁은 이웃 중심 차원에서 세계도처의 기아민들의 차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그라진 손을 펴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10년 동안 해외 기아민 돕기에 지원한 100억 원은 400만 신자 수로 나누어 볼 때 신자 한 사람이 일년에 250원을 봉헌한 셈입니다. 우리의 경제 규모와 소비 성향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루가 16,21) 했던 라자로를 방치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세계 기아민을 돕기 위한 사랑의 세계화에 신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네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10).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2004년 1월 25일

해외원조주일에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장봉훈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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