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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22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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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24 ㅣ No.104

2003년 제22회 인권주일 담화문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1. 인간의 존엄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한국 교회가 정한 스물두 번째 인권주일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창세 1,26-27)의 존엄성이 유린당하고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가 짓밟히는 현실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그 희생자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는 가운데, 인권 침해의 모든 현장에서 하느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실천하기 위해 교회는 1982년부터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제2주일에 인권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인간은 사랑의 행위를 통해서 태어나며, 우리는 모두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통하여 인격적으로 존재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700-1709항 참조). 그럼에도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개인이나 공동체가 인격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2. 가정과 인권

 

오늘날 인권을 증진함에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측면은 ‘가정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권’의 틀 안에서 혼인을 보호하고 가정 생활을 모든 법체계의 목적으로서 보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교황청 가정평의회, “가정과 인권”, 9항). 교황청이 반포한 ‘가정 권리 헌장’,에서 가정은 모든 가족 구성원을 포함하는 주체로 이해되며, 국가뿐 아니라 온 사회가 가정과 혼인을 수호하고 증진해야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낙태를 허용한 모자보건법 제정 30주년을 기해 2003년 2월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시작한 ‘생명 31 운동’을 적극 지지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반생명적인 문화를 배격하고 새로운 생명 문화를 가꾸어 나가는 일에 온 국민과 우리 모든 신자들이 나서줄 것을 호소하며, 정부와 입법 기관에 대해 잘못된 법의 시정을 촉구합니다.

 

 

3. 이라크 전투병 파병과 인권 손상

 

정부의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에 대해서 우리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를 기원하면서 발표한 2003년 2월 14일자 “우리는 전쟁이 아닌 평화를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입장 표명과 10월 13일자 사회주교위원회 성명 “이 땅의 평화를 위하여”에서 밝힌 주장을 거듭 확인하고 지지합니다.

 

지난 번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은 전투 병력이 아니라 평화 정착과 국토 재건 과 인명 보호를 위한 공병과 의무 병력이었습니다. 전투 병력의 파견은 항상 현지 주민뿐만 아니라 주둔 병력에 대해서도 심각한 인권 손상을 가져올 수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위도 핵폐기물 적치장 문제

 

예로부터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용하고 평온하며 살기 좋은 고장으로 알려진 인구 6만8천 명의 전라북도 부안이 4개월에 이르도록 원자력발전센터 반대 시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지난 11월 19일에는 1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격렬 시위가 벌어졌고, 이후 경찰력이 대거 진입하면서 부안은 오늘날까지 걷잡을 수 없는 비상 사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단순한 집단 이기주의의 결과인지, 진실의 은폐로 인한 소요인지 진상을 공정하게 규명할 수 있는 주민들의 솔직한 의견 개진을 위한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고, 공식 경로를 통한 공개가 보장되어야 하며, 모든 문제가 정부와 주민들 사이에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안 주민들이 공권력과의 충돌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평화로운 해결책을 선택해야 할 것이며, 정부는 과도한 경찰력 행사를 자제하고 주민들의 의사가 평화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5. 북한의 인권

 

국제 기구와 단체들이 연례 행사처럼 거론하는 북한 지역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는 동포의 입장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목숨은 존중받아야 하며, 그 어떤 공권력으로서도 이를 훼손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선택한다는 것은 온갖 형태의 폭력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빈곤과 기아의 폭력, 무력 충돌의 폭력, 범죄적인 마약과 무기 거래의 폭력, 자연 환경에 대한 몰지각한 훼손과 같은 폭력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9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인권 존중은 참 평화의 비결”, 4항).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 자유야말로 인권의 핵심”이라면서 “세계 인권선언은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에는 단독으로든 집단으로든,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개인의 신념을 표명할 권리가 포함된다는 것을 인정한다.”(위의 글, 5항)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6. 북한 이탈 주민과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

 

아울러 북한 이탈 주민과 난민 상태에 놓여 갖은 고생을 다 겪고 있는 동포들  의 인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살아 온 환경과 모든 조건이 다른 그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더구나 언어와 종족이 다른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한국인 근로자들이 들어가서 일하지 않는 3D 업종, 곧 위험하고 더럽고 어려운 일자리에 뛰어들어 소처럼 일을 해서 한국 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데도, 1회성 소모품처럼 취급해서 우리를 내보내려 하고 있다.”고 이주 노동자들은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 9월 초 ‘외국인 고용에 관한 법’ 시행을 발표하면서 11월 17일부터 불법 체류 이주 노동자에 대한 강제 단속을 펼치겠다고 했고, 자진 출국을 거부한 외국인 12만 명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다고 밝히면서 외국인들을 더욱 고통스런 벼랑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교회는 올해 세계 이민의 날(2003. 1. 19.)에 “취약점이 많은 외국인들, 곧 불법 이민들, 난민, 망명 요청자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폭력 분쟁으로 추방된 사람들,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들로 인신 매매라는 끔찍한 범죄의 희생자들에 대한 가톨릭 신자들의 의무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제89차 세계 이민의 날 담화, 1항)고 주의를 환기시킨 바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낳아 주시려는 그 순간, 거절을 당하신 경험이 있는 우리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교회를 모든 문화와 민족을 하나의 단일한 인류 가족 안에 일치시키시는 표지이며 도구가 되게 해주십사”(위의 글, 5항)고 청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방인을 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축복을 듬뿍 내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2003년 12월 7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영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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