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이순이 루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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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3-06-03 ㅣ No.1115

[순교자의 숨결] 이순이 루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 (상)


두 분 언니께

붓을 드니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할지 막막하네요.

불쌍하신 오라버니는 돌아가셨는가, 살아 계신가? 9월 15일에 소문으로 들은 뒤 저도 붙잡혀 옥에 갇힌 몸이라 바깥 소식에 감감한 채, 오라버니 소식을 들을 길이 전혀 없어 늘 답답하게 여기고 있어요. 사형 판결을 받았으면 그 사이에 죽임을 당하셨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돌아가신 분이야 복을 누리고 계실 것이니 걱정할 것은 없겠습니다만, 집안 형편은 어떠하며, 어머니와 올케 언니는 차마 어떻게 견디고 계시나요? 지금 두 분은 몸져 누워 계시지나 않는지요?

이 옥에 갇혀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는 제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하겠어요?

오라버니 장례는 어떻게 제대로 치를 수나 있었나요? 혹시 아직까지 죽임을 당하지 않으셨다면, 차가운 감옥에서 어찌 견디고 계실까요.

오라버니가 죽임을 당하셨거나 감옥에 계시거나 어머니 애간장은 다 녹아 버리셨겠지요.

희야 형제(이경중, 이경언)와 동아(이경도 아들)는 몸 성히 있나요?

매동(올케 언니 친정) 안부 소식을 드문드문이나마 듣고 계신지요?

안사돈 어른의 오랜 병환은 어떠신가요?

이동(친언니 시댁)에서도 언니 시어른께서 우리 집안(루갈다 시댁)의 참담한 소식을 들으시고 너무 마음 아파하시다가 병환이나 나시지 않았는지요?

형부께서도 몸 평안하시고, 출아(루갈다 언니 자식)도 몸 건강한가요?

모든 분들을 두루두루 다 뵙고 싶은 마음이 문득문득 솟구칩니다.

이 아우는 주님께 지은 죄악이 너무 커 갖가지 험한 일을 골고루 당하는 것이오니, 글로 언니들에게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기는 하지만, 제가 결혼하고 나서 헤어져 살았던 4년 동안 가슴 속에 쌓인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어 말씀드리면서 이 세상 하직 인사를 드립니다.

올해 들어 애간장을 태우다가 끝내 이 일이 우리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해져 시아버님을 여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지경에 이르자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좋은 기회가 오면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칠 뜻을 마음 속 깊이 정하고, 이 뜻을 가슴에 새기고 새기며 그 준비에 힘썼어요.

어느 날 느닷없이 들이닥친 여러 포졸과 사령들이 저를 붙잡았어요.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기회가 없어 염려했는데, 마침내 제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었어요. 주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기쁘기 한량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닥친 일이라 아주 당황하고 있는데, 포졸과 사령들이 급하게 몰아치니, 주위 사람들의 애절한 통곡소리가 천지에 진동하였어요.

친정 홀어머니와 형제, 친구와 이웃, 고향과 기약 없는 영원한 이별을 해야 하니, 정을 미처 떨쳐 버리지 못해 한 줄금 눈물로 서둘러 이별하며 아뜩한 심정으로 돌아서면서. 제가 바란 것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잡아가 수급청에 가두었다가 반나절이 지나서 장관청이란 곳으로 옮기니, 시어머님과 시숙모님, 시동생 형제가 계셨어요. 서로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만 흘리는데, 그럭저럭 밤이 되었어요. 9월 보름이라 가을 밤하늘이 환하고, 창 밖의 보름달은 밝아 달빛이 창 안을 환히 비추니, 옥에 갇힌 사람들의 가슴속 생각을 충분히 알 만했지요. 누우나 앉으나 구하고 바라는 것은 순교의 은혜였습니다.

이 소망이 가슴속에 가득하여 각자 하는 말은 한결같았습니다. 시어머님, 시숙모님, 시동생, 시사촌동생(유중성)과 더불어 다섯 사람이 서로 약속하기를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자 하였고, 각자 결심한 뜻은 쇠와 돌처럼 아주 굳었어요. 서로 마음이 통하고 뜻이 같으니, 가득한 믿음과 사랑이 다섯 사람 사이에 조금도 다름이 없었기에 가슴에 가득 찼던 설움이 자연히 잊혀지고, 갈수록 주님 은총을 입어 영혼의 기쁨이 넘쳐나 아무 근심 걱정이 없게 되고 마음에 걸리는 잡념이 사라졌어요.

그런데 제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른 옥에 갇혀 있는 한 사람 요한이었어요.

그를 못 잊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집에서 지낼 때 품은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어 ‘한날 한시에 함께 죽자’는 제 속뜻을 전하고 싶어서였지요. 하지만, 편지를 전해줄 사람이 마땅하지 않아 머뭇거리다가 미처 전하지 못하였는데, 죄수들끼리 연락을 전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제 편지를 전할 길이 없어졌어요.

마음속으로 구하고 원하며 바라는 것은 주님을 위해 목숨 바쳐 요한과 한날 한시에 함께 죽는 것인데, 주님은 은총이 저러하실 줄이야 알기나 했겠어요?

제 시동생은 요한입니다. 10월 9일 요한을 데리고 나가는데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어요.

“어디로 데려갑니까?’

“관장의 명령인데, 큰 감옥으로 데려가서 형제를 한곳에 두라 하신다.”

칼로 잘라내듯이 단박에 데려가려고 하니, “오냐, 저를 어찌하리.” 하고 생각하면서 “가서 형님과 함께 계셔요. 서로 잊지 말아요” 하고는, “저와 한날 한시에 같이 죽자 하더라고 요한에게 전해 주세요.”라고 신신당부했지요. 거듭거듭 부탁하고서는 손을 놓고 헤어졌어요.

남은 네 사람은 서로 의지하여 주님의 도우심만 바라고 있었는데, 얼마 안 되어 남편과 시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은 오히려 둘째치고, 제 남편 요한이 주님께 복 받을 것을 생각하니 정말 기쁘고 기뻤어요. 그러나 ‘아! 요한이 어떠한 마음으로 죽음에 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억만 개의 칼이 제 가슴을 도려내는 듯하고, 마음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어요.

반나절이 지나서 주님의 은총을 입었는지 마음이 가라 앉았고, ‘살아서 쌓은 공로가 없지 않으니 설마 주님께서 그이를 아주 저버리시겠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하지만, 그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오히려 그 걱정뿐이었어요. 시사촌동생에게 물어보니 그이는 미리부터 순교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노라 했습니다.

집에서 기별이 왔어요. 그이의 주검을 거두어 와서 그이가 입고 있던 옷 속을 살펴보니 저에게 보낸 편지가 있었답니다. 그 편지에 신앙을 잘 지켜 나갈 것을 당부하고 위로하며 “누이여, 하늘나라에 가서 다시 만납시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했어요. 그이와 우리의 뜻을 지키며 살아온 지 4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해서 제가 괜히 요한을 걱정했던 것이지요. 그이가 평생 살아온 모습을 돌아보면, 구태여 동정 받을 일을 한 적이 없고, 여느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어른스러웠으며, 신심을 부지런히 닦았고, 주님을 열렬하게 사랑하며 성실하였으니 그는 영원한 복을 누릴 만하지요.

제가 여러 해 동안 바라던 소망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제 속마음을 말했더니 그이 역시 어릴 적부터 바라고 있던 것이라 했어요. 우리의 만남은 우리 두 사람 소원을 주님께서 허락하신 특별한 은총이기에, 저희 둘이 주님께 감사드리는 길은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켜 주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었지요.

저희 두 사람은 약속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재산과 가업을 물려주시면, 재산을 서너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또 한 몫으로 시동생에게 넉넉하게 주어 시부모님을 모시도록 하고, 세상이 좋아져서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면 각각 헤어져 살자고 약속하고, 서로 이 약속을 저버리지 말자고 다짐했지요. [쌍백합, 제19호, 2007년 겨울호 ;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편지’(김진소 편저 / 양희찬 ? 변주승 옮김) 중에서]


[순교자의 숨결] 이순이 루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 (중)


지난해 12월이었는데, 저희는 육체적인 유혹이 아주 심해서 마음이 두렵기가 얇은 얼음 위를 걸어가는 듯, 깊은 물가에 서 있는 듯했어요. 주님을 우러러 그 유혹을 이겨 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요. 주님의 은혜로운 도우심으로 정말 간신히 그 유혹을 떨쳐 동정을 온전하게 지켜내었습니다. 저희 서로 믿음이 쇠와 돌과 같이 단단해졌고, 믿고 사랑하는 마음은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친남매같이 지내기로 언약하고서 4년을 지냈는데, 올 봄에 그이가 잡혀갔어요. 네 계절이 지나도록 잡혀갈 때 입은 옷을 한 번도 갈아입지 못했고, 여덟 달 동안 목에 칼을 찬 채 갇혀 있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칼을 벗게 되었어요.

혹시 그이가 주님을 배반하게 될까봐 밤낮으로 근심하면서 그이와 함께 죽기를 눈물로써 빌었는데, 어찌 제가 바라던 것이며, 그이가 앞서 갈 줄 알았겠어요? 그이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죽게 된 것은 더할 수 없는 주님 은총이에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돌아보아도 마음 둘 데가 없어 생각하는 것은 오직 주님이며, 제 마음이 향하는 곳은 하늘나라뿐입니다.

10월 13일, 저를 관청 노비로 삼아 벽동으로 멀리 귀양 보낸다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저는 관장 앞에 나가서 사실대로 말하고, “우리들은 주님을 공경하니 국법에 죽이도록 되어 있는 대로 주님을 위하여 죽겠습니다.” 하였더니, 관장은 빨리 귀양지로 떠나라고 호통을 쳤어요. 저는 다시 관장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 앉아 관장에게 목청을 높여 “나라의 봉급을 먹으면서 임금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신다”는 등 여러 가지 말을 했지만, 관장은 들은 체도 않고 우리들을 끌어내게 했습니다.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떠났고, 길을 가면서 주님께 우리들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더욱 간절히 기도했어요. 겨우 백여 리쯤 갔다가 다시 잡혀왔습니다. 이야말로 다시 더할 나위 없이 극진한 주님 은총이니, 주님께 어떻게 감사드려야 마땅할까요? 제가 죽은 후라도 언니들은 이 은혜를 주님께 감사드려 주셔요.

감영(監營)에서 있었던 첫 심문에서 저는 주님을 공경하며 죽겠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즉시 상부에 보고를 올려 지시를 받고는 다시 감영에서 불러내어 사형판결을 재심하며 제 뜻을 확인하고 나서 한 차례 고문을 가한 다음, 목에 칼을 씌워 다시 감옥에 가두었어요.

매 맞은 정강이에서는 살이 터지고 피가 흐르다가 얼마 안 되어 아픔이 그쳤으니, 은총 위에 또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4, 5일이 지나면서 상처가 다 나았어요. 정말 뜻밖이었어요.

고문을 받은 지 이십 일이 지나도록 아주 작은 고통도 없었으니,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하는 말이 저에게는 분에 넘칠 뿐 아니라 실제로는 정반대였어요. 남들이 저더러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하면, 저는 평안하다고 말하곤 했지요. 어느 누가 집에 앉았어도 이같이 마음이 평안할까요? 돌이켜 생각하면, 불안하고 두려워요. 혹시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엄청난 형벌이 곧 닥치려나 하는 생각에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상부에 보고를 올린 지 이십여 일이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고, 오히려 살아서 나갈 가능성이 많다는 부질없는 뜬소문만 언뜻언뜻 들립니다. 주님의 도우심만 바라고 설마 주님께서 나를 버리시랴 생각하며, 어서 빨리 조정에서 지시를 내려 죽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감옥에 들어앉아 겨우 겨우 틈을 타서 몇 자 적는 이 편지를 제 얼굴처럼 보시게 하여, 영원한 이별을 슬퍼할 언니들을 위로해 드리려고 합니다.

자연히 말이 많아 횡설수설하면서 짤막하게 써 보내니, 제가 그리울 때면 저를 보듯이 펴 보셔요.

우리 형제가 이듬해에 만나자 약속하고 이별한 지 4년이나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로 보면 세상일은 미리 말할 수 없나 봅니다.

4년밖에 안되는 이별의 아픔도 견디기 어렵다 했지만,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은 더욱 어떻겠어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동생 때문에 괴로울 정도로 마음 상하실 것입니다. 언니들은 마음이 넓어 슬기롭고 어지시니 설마 못 참으시겠어요?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히시리라 믿고 염려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언니들을 생각하게 되면 오히려 마음이 쓰이니, 제발 쓸데없이 잡생각은 하지 마셔요.

부모 자식간, 형제간의 정은 무엇이라 말하기도 어렵고, 죽기 전에는 끊을 수도 없지요. 언니들이 조금이나마 주님을 따르는 데에 열심이면 인간의 정 같은 쓸데없는 것에 마음을 쓰겠는가 생각하면서도, 정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염려하는 제 자신을 탓합니다.

언니들 마음이야 오죽하겠습니까마는, 만일 제가 순교하는 은혜를 받으면 서러워할 것이 없으니, 서러워하지들 마시고 축하해 주셔요.

어머니와 언니들이 애통해하실 것을 염려하고, 이 감옥에 갇혀서도 차마 그 모습을 잊지 못하여 유언을 말씀드리니, 죽음을 앞둔 이 마지막 말을 저버리지 마셔요. 정말 간절히 바라오니, 제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으셔도 너무 슬퍼하지 마셔요.

하찮은 자식이요 미련하고 못난 동생으로서 감히 주님의 자녀가 되고, 의로운 사람의 자리에 들며, 하늘나라 모든 성인들의 벗이 되고, 초라한 옷차림으로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하면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요? 이 영광은 얻으려고 하여도 얻기 어려운 것입니다. 자식과 동생이 임금의 은총만 입어도 축하할 일인데, 하느님께서 총애하시는 자식을 두게 되면 이 얼마나 축하할 일인가요? 임금님께 은총을 받으려고 서로 다투기까지 하는데, 구하지도 않은 은총을 받으면 뜻밖의 은혜가 아니겠어요?

저는 하늘 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큰 죄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벽동에 귀양간 죄인으로서 관청의 종이라는 이름을 평생 벗어날 길이 없게 되고, 주님께는 배은망덕한 죄인이 되었다가, 만일 이처럼 이 세상에서의 삶을 잘 끝마쳐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친다면, 한꺼번에 모든 죄를 말끔히 씻고 만복을 누리는 하늘나라로 갈 것이니 어찌 서러워할 일이겠습니까?

관청 종의 언니라고 부르는 말과 순교자의 언니라고 부르는 말이 서로 어떠합니까? 어머니께서도 사람들이 순교자의 어머니라고 부르면, 이 이름이 얼마나 좋을까 싶사옵니다.

제가 감히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하게 된다면, 그 특별함은 어느 누구의 순교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성인들은 마땅히 할 일이겠지만, 감히 그런 고귀한 일을 하찮은 저에게도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런 황송한 일이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제가 죽은 것을 살아 있는 것으로 여기시고, 살아 있는 것을 죽은 것으로 여기셔요. 저를 잃음을 서러워하시면서 다시 주님을 잃을까 염려하셔요. 언니들의 온갖 설움보다는 도리어 지난날의 잘못을 눈물로 뉘우치며 힘껏 지난날의 잘못을 기워 갚으시고, 성모님께 의지하고 마음을 기쁘고 편안하게 하여 주님 영광을 드러내는 증인이 되도록 힘쓰셔요.

모든 일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주님 분부를 따르시면, 이런 설움을 주셔서 믿음을 단련시키려고 하셨던 주님의 본뜻에 맞아, 주님께서는 반드시 언니들을 사랑하시며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은총을 얻고 공을 세울 기회에 쓸데없이 슬픔에 빠져 주님께 죄를 짓게 된다면, 주님 은총을 얻을 수 있을까요? 모든 행동거지를 살피고 또 살펴 모든 일마다 주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미 지은 죄를 기워 갚으시고, 선행으로 공로를 쌓으셔요. 비록 작은 허물이라도 큰 허물처럼 살펴서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깊이 뉘우치시며,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라면 작은 선행이라도 소홀히 하지 마시고, 오로지 주님의 도우심에 의지하며, 착하게 살아 복되게 죽기로 마음먹도록 하셔요.

항상 언제나 힘껏 뜨거운 사랑을 실천하시고, 깊이 뉘우치는 뜨거운 사랑이 아주 없을지라도 힘써 사랑을 실천하면서 주님께 간절히 구하면, 주님께서 착하게 살아 복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한때나마 방심하였거든 깊이 뉘우치고 깨우쳐서 열심히 주님께 뜨거운 사랑을 드리면 점점 주님께 가까워지실 것이에요.

주님께서 우리들 소원을 허락해 주셔서 주님도 뵙고, 그렇게 지내시다가 형제 모녀가 곧 만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남을 용서하며 자신의 죄를 잘 살피고 화목에 힘써, 어머니께서는 주님 뜻에 맞는 노인이 되시고, 언니들은 주님께 사랑받는 딸이 되시면 좋지 않겠나요?

올케 언니, 오라버니가 돌아가셨어도 너무 서러워 마셔요. 마음을 가라앉히셔서 쓸데없이 마음 상하지 마시고, 주님 은혜를 감사드리셔요. 양쪽 집안 어른들을 보살피시고 어려운 집안을 돌보시며, 힘껏 깊이 뉘우치시고 부지런하고 열심히 본분을 다하시며, 용감하게 슬픔을 떨치고 일어나 오라버니의 뒤를 좇아 따르기를 힘쓰셔요.

감옥에 함께 계신 제 시숙모님께서는 딸도 없이 외아들만 두셨는데, 이제 우리와 마찬가지로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치기로 결심하고, 같이 형벌을 받으며 함께 갇혀 있지만, 극진한 마음으로 주님의 분부에 순종하며 태연한 자세를 보이고 계십니다. 저러하신 분들로 본보기를 삼으시고, 우리 인자하신 성모님과 이미 성인이 되신 분들을 모범으로 본받아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두지 마셔요. [쌍백합, 제20호, 2008년 봄호 ;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편지’(김진소 편저 / 양희찬 ? 변주승 옮김) 중에서]


[순교자의 숨결] 이순이 루갈다가 두 언니에게 보낸 편지 (하)


큰언니 내외가 당하신 처지도 견디기 어려우시겠지만, 선행으로 공로를 세우기는 그런 처지가 더 좋아요. 참기도 많이 참으셨겠지만, 시작도 좋아야 하거니와 끝이 더욱 좋아야 해요. 앞으로 조심하여 이미 세운 공로를 잃지 마시고, 극심한 고난이 닥쳐와도 마음을 넓게 가지시고, 주님의 분부를 생각하여 주님께서 갚아 주시리라 믿으시고, 조급한 생각을 아예 떨쳐버리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힘들지 않을 것이에요. 이처럼 마음을 쓰시면 좋을 듯합니다. 다른 덕도 구하는 것이 좋으나, 믿음 · 소망 · 사랑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덕이에요. 믿음 · 소망 · 사랑 이 세 덕을 진실되게 실천하면, 다른 덕들은 자연히 따르게 됩니다.

형부께서는 요사이 어떠하신가요?

언니 신세를 생각하면 제 마음이 아파요. 비록 언니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형부 말이 죄 되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마음으로 형부 뜻을 받아들여 부부의 화목을 잃지 마셔요.

저는 5년 전에 결혼하여 4년 동안 살면서 우리 내외는 한 번도 서로의 뜻을 바꾸어 본 일이 없고, 집안 사람들과 서로 싫어해 본 적이 없었어요.

드릴 말씀은 많고 많은데, 저를 불러들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바깥이 소란스러워서 마음을 졸이며 겨우겨우 편지를 쓰는 형편이라 어머니께 따로 편지를 올리지 못하옵니다.

어머니 곁을 떠난 지 4년 동안의 심정과 그 사이 많은 이야기들을 만에 하나나 쓰지만, 옥중 죄인들을 열 번을 불러대면 그때마다 저를 부르는 것만 같아 편지를 쓰다가 깜짝깜짝 놀라 몇 번을 중단하면서 썼으니, 말이 제대로 되는지 마는지 하더라도 저의 친필을 보시면 언니들이 반가워하시리라 여겨 어렵사리 틈을 타 쓰고 있었어요.

주님 은혜가 무한하여 저를 버리지 않으시면 순교하는 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라버니도 그렇게 되면, 어머니보다 먼저 두 자식이 하늘나라에 오르게 되니, 설마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모셔 가도록 애쓰지 않겠사옵니까?

제가 비록 죽은들 어머니와 언니들을 어찌 잊겠습니까. 제가 만일 바라던 대로 된다면 어머니와 언니들을 뵙게 되련만, 그럴 수 있는 공로가 없으니 복된 죽음을 맞기 전에는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올케 언니도 오라버님이 돌아가셨거든 이 세상의 정에 치우쳐 서러워만 마셔요. 부부는 한 몸이라 남편이 하늘나라에 올랐으니 어련히 아내를 인도하실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선행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쓸데없이 슬픔에만 젖어 허송세월하여 하느님과 오라버니께 근심을 끼치지 않도록 하셔요.

동아는 우리 오라버니의 하나뿐인 피붙이여서 남의 아들보다도 귀중하니 육신과 영혼을 잘 돌보고 키워서 장가들여 훌륭한 아녀자의 어진 지아비가 되도록 해주셔요.

희아는 어떻게 사나요? 이 동생 형제들이라도 어떻게든 글자를 가르쳐 선량한 사람으로 만들어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해주셔요.

충주 올케를 데려다가 서로 의지하며 화목하며 친애하여 마음을 붙이고 홀어머니를 위로하며 지내시면 죽은 후라도 제 마음이 즐거울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이십 년 동안 병 없는 날이 없었고, 일마다 어머니께 불효만 끼치다가 끝내 자식 도리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납니다. 언니가 제 몫까지 대신 하셔서 착실히 어머니를 효성으로 모셔 주셔요. 육신을 정성껏 모시는 것도 좋지만, 마음을 편히 모시는 것이 더욱 좋아요. 그래서 증자(曾子)의 효가 증원(曾元)의 효보다 낫다고들 하지요. 제가 시부모를 모시고 살아보니, 어른들은 뜻을 받들어 드리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어요. 집안이 궁핍하여 뜻대로 봉양하지는 못하더라도, 어머니 마음을 잘 받드시고 위로하며 보살펴 드리면, 흐려진 정신도 곧잘 맑아지실 것입니다. 혹 정신이 맑지 못하여 그르치는 일이 있더라도 사리를 따져서 말씀드리지 말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간곡하게 말씀드려 보셔요. 아무리 서러울지라도 어머니를 생각해서 설움을 감추시고 어떤 때는 어리광도 부리고, 어떤 때는 억지로라도 우스운 말도 하여 어머니를 잘 보살펴 주셔요.

어린 동생들은 오라버니께서 돌아가신 다음에는 언니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으니, 오라버니께 하셔야 할 일까지 언니가 맡아 너그럽고 슬기롭게 가르쳐서 아무쪼록 결혼하여 집안을 잇고, 열심히 살며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의젓한 사람이 되게 잘 보살펴 주셔요.

어머니와 두 동생은 올케 언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라버니께서 순교하시고, 저도 다행히 주님의 은혜로 복된 죽음을 맞게 되면, 우리 남매는 하늘나라에서 만날 것입니다. 어머니를 착하게 사시도록 도우셔서 여생을 잘 지내시고 복된 죽음을 맞는 은혜를 받아 우리 어머니와 자식들과 형제들이 하늘나라에서 즐겁게 만날 수 있도록 애써 주셔요.

올케 언니, 간절히 부탁드려요.

언니가 어련히 잘 하시겠지만, 제 부탁을 염두에 두시고 두 배로 더욱 잘해주셔요.

부모를 모시는 사람은 섧다고 설움을 그대로 다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오니 이것을 마음에 새겨 두셔요. 이 말은 언니를 예사로이 여겨서 드리는 말이 아니라, 언니가 설움이 많은 사람이시기에 걱정이 되어 하는 말이에요.

매동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견디고 계신지요? 그 어르신의 처지도 말 못할 딱한 처지이십니다.

요한 오라버니도 어떻게 겨우겨우 견디시겠지요. 요한 오라버니에게 향하는 저의 정은 죽음을 앞둔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겠어요. 제가 이 세상에서 누구에게 복종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제가 가장 마음으로 복종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요한 오라버니이고, 여자로는 아가다 성녀입니다.

여기서 요한 오라버니를 남들은 제 남편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저의 참된 벗이라고 여기니, 만일 요한 오라버니가 하늘나라에 올라갔다면 저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 분명해요. 요한 오라버니는 이 세상에서 함께 살 때 저를 위한 마음이 지극하였으니,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으면 만복을 누리는 중에도 제가 고통에 못 이겨 남몰래 오라버니를 부르는 제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에요. 제가 평소 다짐했던 우리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이번에는 우리가 서로 떨어져 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쯤 이 감옥에서 나가서 대군 대부이신 하느님과 천상모후이신 성모님, 사랑하던 시아버님, 시동생, 참된 벗 요한을 만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을까요 ? 그렇지만 엄청나게 큰 죄악을 저지른 죄인이 바라고 바란다 해서 뜻같이 쉽게 될리 있겠습니까.

서러운 일도 많고 많아 글로 쓰려고 하면 소나무 대나무도 말라 버릴 정도입니다.

우리 시누이는 호화롭게 지내던 몸이 부모 동생 다 잃고 집안 재산까지 나라에 빼앗겨 그 넓고 큰 집을 떠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불쌍하신 숙모님과 연세 높아 정신마저 흐린 할머니를 의지하고 있어요. 혼인하고서도 아직 시댁으로 못가고 있는데, 시댁에서는 데려가지 못 하고 있으니, 정말 가련하고 불쌍한 신세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어요.

세 시동생 9세(섬이), 6세(일석), 3세(일문)인 어린아이를 흑산도, 신지도, 거제도로 각각 멀리 귀양보냈으니, 이런 안타깝고 애절한 처지를 차마 어찌 볼 수 있겠어요.

시어머님, 시숙모님, 서울에 가 계셨던 시사촌 동생은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기에 서로 도와 이 고난을 이겨내고 있어요. 함께 진술하고, 함께 심문받고, 함께 형벌을 받고, 함께 옥에 갇혔으니 끝까지 함께하게 될 것 같아요.

큰언니가 우리 어린 남매 중에 저에게 주신 정은 아주 남달랐으니, 언니가 저를 품에 안아 기르신 까닭이라고 하셨지요. 저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니, 그럴수록 제가 죽는 것을 서러워하지 마셔요. 요행히 주님 은혜로 하늘나라에 오르게 되면, 언니가 부지런히 착한 공을 쌓으셔서 복된 죽음을 맞으실 때 제가 손을 마주 잡고 하늘나라로 모셔가렵니다.

이 세상 하직 인사를 드리려고 붓을 드니 온갖 하고 싶은 말은 그칠 길 없지만, 하고픈 많은 말은 한번에 다 쓰기 어려워 다만 그칠 따름입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착한 일로 공을 쌓으시고, 몸 건강하시고 영혼과 육신을 정결하게 하시어 다 함께 하늘나라에 가서 대부모이신 하느님과 부모님을 즐겁게 모시고, 형제가 영원히 함께 살면서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라고 바라며, 죽어서도 끊임없이 주님께 간절히 청하겠습니다.

‘행여나 내 소원대로 순교하지 못하고 살게 되면 어지할꼬’ 하는 이 두려움을 떨쳐 버릴 수 없으나, 언니들은 제가 죽어도 서러워들 마셔요.

제가 감옥에 잡혀왔을 때는 제가 바라는 대로 곧 주님을 위해 순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사정이 급박해 겨를이 없는 중에 어머니께 하직인사로 몇 자 적어 올리는 것이옵니다. 이 편지를 보신 후에 이동 큰언니에게도 보여주셔서 저를 보듯이 읽으라고 하셔요.

편지에 잔뜩 장황하게 늘어 놓은 많은 말로 자신은 착하지도 못하면서 남들에게는 착하라고 권했습니다. 참으로 저야말로 길가 장승처럼 사람들에게는 길을 가르쳐주면서 자기는 자신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은 참되다 하지요. 곧 죽게 될 제가 드리는 이 말이 그르지 않을 것이니 꼭 명심해 주셔요. [쌍백합, 제21호, 2008년 여름호 ;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편지’(김진소 편저 / 양희찬 ? 변주승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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