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대전교구 서천본당,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 성지로 새롭게 가꿔 나가기 첫 걸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1-23 ㅣ No.858

대전교구 서천본당,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 현양미사


성지로 새롭게 가꿔 나가기 첫 걸음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와 사제들이 교회사적지로 밝혀진 서천 천방산 줄기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에서 현양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충남 서천군 천방산 줄기 옛 교우촌 '산막골' 일대가 다블뤼 주교의 사목중심지이며 황석두(루카) 성인이 10여 년간 참회와 보속의 삶을 산 뜻깊은 교회사적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79의 1 천방산 기슭은 문산 수암리 독뫼공소 터와 판교 금덕리 작은재공소 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이름 없이 살다간 숱한 신앙선조들의 무덤이 있던 자리였다. 하지만 1994년 산림도로 개설과 함께 줄무덤 터는 콘크리트에 묻히고 말았으며, 당시 공사현장에서 숱한 유골과 함께 발굴된 십자가와 묵주 등 성물도 연고자가 없어 인근에 다시 묻혔으나 그 위치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13일 출간된 연구자료집 「박해시대 서천지역 천주교회사와 그 자료」(서종태 전주대 교수 지음)를 통해 공개됐다.

 

대전교구 서천본당(주임 정성용 신부)은 이날 천방산 기슭 광장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 현양미사'를 봉헌하고, 독뫼공소 터에 세워진 성모동산과 공소 터에서 작은재를 오르는 길에 세워진 십자가의 길 14처에 대한 축복식도 가졌다.

 

이날 미사와 축복식에는 유 주교를 비롯해 보령지구장 이범배 신부, 솔뫼성지 전담 이용호 신부, 신리성지 전담 김성태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정환 신부, 전주교구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 신부 등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1000여 명이 참석, 서천 지역 교회사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교회사적지이자 성지로서 새롭게 가꿔 나가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번에 출간된 자료집에는 조선조 말 박해시기에 서천지역에서 처형된 신자가 57명이나 기록돼 있어 서천지역이 단순히 교회사적지에 그치지 않고 성지로서 의미도 겸하고 있다. 또 교우촌 '산막골'은 지금까지 경북 상주군 모동면 신흥1리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에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로 최종 확인됐다.

 

유 주교는 미사강론에서 "수많은 성직자와 신앙선조들이 살았던 거룩한 땅에 이제서야 오게 돼 죄송스런 마음이 앞선다"며 "그간 방치돼 있던 산막골 작은재 줄무덤 터를 찾기 위해 수고한 정성용 신부님과 서천본당 신자 여러분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치하했다. [평화신문, 2010년 11월 21일, 박희춘 명예기자]

 

 

잊혀진 신앙촌 ‘천방산 산막골’ 발굴


호남교회사연구소 서종태 박사 … 인근에 줄무덤도 발견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힌 줄무덤 터. 독뫼공소 신자들과 작은재 공소 신자들이 활동하던 장소로 많은 신자들이 묻혔다.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박해시대 충남 서천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이자 성스러운 피를 흘렸던 성지,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힌 무덤 터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사실은 호남교회사연구소 서종태 박사(전주대학교 교수)가 최근 발간한 「박해기 서천지역 천주교회사에 대한 연구」 자료집을 통해 밝혀졌다.

 

자료집에 따르면 서천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의 터전들 가운데 천방산 산막골(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리)은 신앙 선조들이 1839년 기해박해 이후 군란을 피해 인적 없는 산간벽지에 숨어 신앙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곳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곳은 순교자들이 심한 형벌을 받고 피를 흘렸던 점으로 보아 성지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종태 박사는 “페롱 신부는 1858년 9월 24일과 25일, 1859년 9월 27일 등 총 6통의 편지를 산막골에서 작성했는데 이 산막골에 대해 그동안 경북 상주시에 있는 산막골로 이해해 왔다”며, “페롱 신부의 집 주인이자 복사로 활동했던 황기원, 황천일 등이 거주했던 곳이 서천 산막동이었던 점 등으로 보아 페롱 신부가 사목 중심지로 삼아 여러 차례 서한을 작성한 곳은 서천 산막골이 확실하며 신앙 선조들이 공동체를 이뤄 산 곳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서종태 박사는 “또한 이곳은 황석두 루카 성인 일가가 충북 연풍에서 이주해 병인박해가 있기 전 10여 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순교자들의 유해가 묻힌 줄무덤 터가 천방산 기슭 광장(고갯마루,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산 79-1)에 있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곳은 독뫼공소 터와 판교 금덕리 작은재 공소 터를 이어주는 고갯마루로 이름 없이 묻힌 많은 신앙 선조들의 무덤이 있던 곳이었다.

 

서종태 박사는 “충남 서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서천지역은 일찍부터 천주교가 널리 전파되고 있었고 특히 페롱 신부의 사목 중심지였던 산막골은 서천 일대의 사목 중심지로서의 주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그동안 돌보는 이 없이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밝혀진 것이 거의 없었다”며 “정성용 신부님께서 서천본당에 부임해오시면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박해시대 서천지역 신앙선조들의 숭고한 터전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됐다”고 말했다.

 

산막골 교우촌이 있던 자리.

 

[가톨릭신문, 2010년 11월 21일, 권선형 기자]



1,43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