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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일본 고토 열도를 가다 (상) 순교자의 피로 물든 신앙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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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1-14 ㅣ No.855

순교자의 피로 물든 신앙의 섬 - 일본 고토 열도를 가다 (상)


259년 박해기간에 입에서 입으로 신앙유산 물려줘

 

 

미이라쿠본당 신자들이 방문을 마치고 떠나는 일행에게 태극기를 흔들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크기는 제주도 3분의 1, 인구는 10분의 1가량밖에 되지 않는 일본 남서부 작은 열도에 무려 50개의 성당이 있다. 복음화율은 25% 가까이 된다. 0.4%에 불과한 일본교회 복음화율을 생각하면 선뜻 믿기 힘든 수치다.

 

1566년 선교사 루이스 데 알메이다(Luis de Al meida) 신부가 후쿠에지마섬을 찾으며 처음으로 천주교가 전파된 고토(五島)열도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가쿠레 키리시탄(잠복 그리스도인)이 숨어 살며 모진 박해를 견디고 신앙을 꿋꿋하게 지켜온, 순교자의 피로 물든 신앙의 섬이다. '키리시탄'은 포르투갈어 크리스타오(christao)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인을 뜻한다.

 

나가사키관광연맹 초청으로 10월 22~25일 기도의 땅 고토열도를 찾았다. 고토열도는 시모고토(下五島)와 가미고토(上五島) 지역으로 나눠져 있으며 시모고토에 20개, 가미고토에 30개의 성당이 있다.

 

도자키성당은 1880년 고토열도에 처음 세워진 성당이다. 현 건물은 1908년에 지은 것이다.

 

 

오랜 박해의 후유증

 

고토열도에서 슈퍼마켓보다 더 많은 게 성당이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적어도 5분에 한 번씩은 눈에 성당이 들어올 정도다. 하지만 성당 수만큼 겉으로 보이는 신앙열기가 뜨겁지는 않다.

 

고토열도 신자 대부분은 좀처럼 신앙을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1614년 에도막부(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에도에 수립한 무가(武家) 정권)에 의해 일본전역에 금교령이 내려진 후 1873년 신앙의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25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키리시탄들은 철저하게 신앙을 숨겨야만 했다.

 

신앙을 함부로 드러냈다간 자신뿐 아니라 다른 키리시탄까지 죽임을 당하기에 이들은 신앙을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됐다. 훗날 신앙의 자유를 얻었지만 몸에 밴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듯 하다.

 

시모고토 미이라쿠본당 카와카라 타구야 주임신부는 "이곳의 신자들은 자신이 천주교 신자인 것을 남에게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고 신앙생활을 조용하게 한다"며 "고토 열도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오랜 박해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자들이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누는 경우도 거의 없다. 가미고토 아오사가우라본당 오야마 시게시 주임신부에게 소공동체 모임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고토에는 소공동체 모임은 물론 레지오 마리애 등 신자들이 교류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고토열도의 성당에서는 동백꽃 무늬 유리화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오야마 신부는 "오랫동안 숨어 지내왔던 조상의 영향을 받아 이곳 신자들은 신앙의 기쁨을 표현하지 못한다"면서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전교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야마 신부는 한국의 신앙 열기, 소공동체 모임 등에 관심을 나타내며 하느님을 주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며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한국 신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가미고토에서 기자를 비롯한 방문단을 하루 종일 안내해 준 오다 히로미(마리아, 39)씨는 신앙 유산을 물려받은 모태 신앙인이다. 하지만 선교를 해본 적이 있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종교는 스스로 원해서 갖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권해서는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오다씨는 신앙은 자랑스러운 것이고 열심히 지켜나갈 것이라며 다른 신자들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묵묵히 신앙을 지킨 키리시탄들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지 7년 만인 1880년 시모고토에 고토열도 첫 성당인 도자키성당이 세워졌다.

 

도자키성당을 비롯한 고토열도의 성당 유리창에는 동백꽃을 형상화한 유리화가 유난히 눈에 띈다.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꽃이 로사리오를 의미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장미를 본 적이 없었던 신자들은 고토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동백꽃으로 장미를 대신한 것이다.

 

동백꽃 잎은 다섯 장이지만 유리화의 동백꽃은 십자가 모양으로 잎이 네 장만 있다. 일본에서 동백꽃은 그리 사랑받는 꽃은 아니지만 좀처럼 잎이 지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그 모습이 순교자들과 꼭 닮았다.

 

박해시대 영주들은 예수님, 성모님이 새겨져 있는 후미에를 밟고 지나가게 함으로서 신자 여부를 가려냈다.

 

 

도자키성당에는 키리시탄들이 사용했던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 바닥, 물병 등에 마치 장식처럼 새겨놓은 십자가 무늬가 이채롭다. 키리시탄들은 사제를 본적도, 미사를 봉헌한 적도 없는 자식들에게 구전으로 신앙 유산을 물려줬고 그들은 또 후손들에게 신앙을 전했다. 키리시탄들의 이 같은 노력은 먼 훗날 고토열도에 다시 하느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든든한 터전이 됐다.

 

전시물 중에 사람들 눈길을 끄는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등을 새긴 목판, 동판이 있다. 이것은 후미에(繪踏)라고 불린다. 고토에서는 키리시탄을 색출하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모든 마을 사람을 모아 놓고 후미에를 밟고 지나가게 하는 의식을 열었다.

 

차마 후미에를 밟지 못한 키리시탄은 관청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끝까지 배교하지 않으면 처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 어쩔 수 없이 후미에를 밟고 지나간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눈물을 흘리며 참회의 기도를 바쳤다. 순교자들에 대한 박해는 끔찍했다. 키리시탄의 목을 잘라 소금에 절여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내걸고, 길에다 널어놓았다.

 

결코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긴 박해가 끝나자 곳곳에 숨어있던 키리시탄들은 신앙의 기쁨을 만끽하며 섬 곳곳에 성당을 세웠다. 배를 타지 않고서는 성당을 가기 힘들었던 신자들은 자신이 사는 마을에 성당을 지었다. 이렇게 작은 섬 고토 열도에 50개의 성당이 들어서게 됐다.

 

 

고토열도는?

 

키리시탄들은 박해 기간 동안 신앙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들은 음식을 담는 그릇에 십자가 그림을 몰래 그려넣고 그것을 보고 기도를 바쳤다.

 

일본 남서부 나카사키현에 있는 고토 열도는 후쿠에지마섬, 나카도리지마섬 등 5개 큰 섬을 비롯해 14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뤄져있다. 고토(五島)는 다섯 개의 섬이라는 뜻이다. 면적 634.79㎢에 주민 6만3000여 명이 살고 있다. 나가사키대교구에 133개 성당이 있는데 40% 가까이 되는 50개 성당이 고토 열도에 있다. 시모고토(下五島)에 7명, 가미고토(上五島)에서 11명 사제가 사목하고 있다.

 

아름다운 성당뿐 아니라 일본 한 일간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힌 다카하마 해수욕장을 비롯해 온천, 우동 마을 등 볼거리,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고토 우동, 고토 소고기, 고래요리, 고구마ㆍ보리소주 등 전국적으로 맛을 인정받은 먹을거리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순례ㆍ관광 문의 : 02-730-2192

 

[평화신문, 2010년 11월 7일, 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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