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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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수원교구 은이성지-미리내성지: 주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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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0-09 ㅣ No.850

[즐거운 여가 건강한 신앙] 수원교구 은이성지 ~ 미리내성지


주님께 대한 믿음ㆍ희망ㆍ사랑 있었기에

 

 

김대건 성인.

 

 

은이(隱里) 마을은 이름 그대로 '숨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 살던 교우촌이자 한국교회 첫 번째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이곳 공소에서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신앙의 요람이다.

 

김대건 신부가 사목활동을 위해 넘어 다녔고, 순교 후에는 그의 유해가 지나간 길인 신덕(信德)ㆍ망덕(望德)ㆍ애덕(愛德) 고개를 순례하기 위해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은이성지를 찾았다.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준 성지담당 사제와 사무장의 격려에 힘을 얻어 김대건 신부가 잠든 미리내성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피는 들꽃을 보면서 걷는 게 얼마만인가? 어린 시절 가을소풍 가는 기분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러길 잠시, 김대건 신부가 목숨을 걸고 사목했던 길을 마냥 즐겁게만 걷는다는 사실이 송구스럽게 느껴졌다.

 

와우정사 전경. 머리만 있는 부처상이 이색적이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까지 가는 길은 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0~14㎞ 정도다. 두 성지 사이에 있는 신덕(은이)ㆍ망덕(해실이)ㆍ애덕(오두재) 세 고개를 지나야 김 신부 묘소가 있는 미리내성지에 도착할 수 있다. 삼덕고개라는 이름은 김 신부가 순교한 후 신자들이 붙인 것으로, 성인의 순교정신을 기리는 비가 고개마다 세워져 있다.

 

은이성지를 떠난 지 20여 분, 신덕고개의 시작을 알리듯 가파른 돌길이 펼쳐진다. 김 신부가 전교하러 다닐 때 복사로 따라다녔고, 순교한 후에는 그의 시신을 수습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눈물과 땀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큰 어려움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지만 신덕고개를 향해 오르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조금은 서늘한 날씨에도 등줄기에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흐르고 호흡마저 가빠질 무렵, 저 멀리 신덕고개가 보인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진리의 근원이시며 그르침이 없으시므로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굳게 믿나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순례객이 남긴 성경구절이 삼덕고개 순례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

 

 

삼덕고개의 시작인 신덕고개 비에 새겨진 신덕송처럼 순교자들은 믿음 하나만으로 박해의 매서운 칼날 앞에서도 하나뿐인 목숨을 내줬을 것이다. 문뜩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니 '내 믿음의 무게는 저 낙엽 정도겠구나'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나온다.

 

신덕고개를 내려오자 순례길 옆으로 와우정사가 보이다. 누워있는 커다란 불상과 크고 작은 각종 불상이 이색적이다. 길을 따라 작은 마을을 지나 2차선 도로에 접어들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잠시 망설여진다. 산길을 지나 고개를 넘고 도로를 따라가야 하는 조금은 복잡한 코스지만 기점 기점마다 '삼덕고개'임을 알리는 표지와,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순례자들의 표식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순례를 계속할 수 있었다.

 

국도를 따라 펼쳐진 황금색 논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은색 인형 모양의 반사판이 허수아비를 대신해 벼를 지키는 모습이 조금은 아쉽다. 그래서일까, "훠이~훠이" 멀리서 참새를 쫓는 농부 목소리가 더욱 정겹게 들린다.

 

국도를 따라 걷기를 40여 분. 인삼밭을 따라 마을로 들어가는 샛길 끝에 '망덕고개 564m'라는 표지가 나온다. '이게 길인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좁고 가파른 길을 걷자니 다리가 점점 무거워진다.

 

160여 년 전, 새남터에서 김 신부 시신을 수습한 뒤 천신만고 끝에 이곳에 당도했을 이민식 빈첸시오는 이 고개를 지날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낮에는 사람 눈을 피해 숨고 밤에만 산길을 걸어 김 신부와의 추억이 서린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민식은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떨궜을 것이다.

 

삼덕고개의 두 번째인 망덕고개를 향하는 좁은 돌길.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바라나이다."

 

망덕고개 비에 새겨진 '망덕송'을 보자, 순교자들이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바라며 모든 고난을 이겨냈다는 믿음이 마음에 전해지는 듯하다. 마지막 고개인 애덕고개 비에 새겨진 애덕송을 빨리 보고픈 마음에 쉬지 않고 언덕을 내려간다.

 

망덕고개를 지나면 나오는 평화의 쉼터.

 

 

고개를 내려와 보이는 마을에는 장만수(프란치스코) 형제가 순례객을 위해 운영하는 '평화로운 쉼터'가 있다. 순례객에게 약수터와 화장실,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멋진 하모니카 연주도 들려준다는 소문에 쉼터를 찾았지만 부재중이라 직접 만나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마을을 지나 장촌교를 건너자 다시 국도를 따라 걷는 길이다. 문수터널을 향해 걷지만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들 때문에 몸이 움츠러든다. 터널을 향해 난 도로를 따라 400m 가량 조심스럽게 걷자 오른편으로 애덕고개로 가는 작은 산길이 나온다. 자동차 굉음에서 벗어나 듣는 개울물 소리와 이름 모를 산새 소리가 더욱 반갑다.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마지막 고개가 나온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애덕은… 천주를 위하여 남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덕이니라."

 

애덕고개 비.

 

 

'얼마나 믿음이 깊으면 모진 고초 속에서도 목숨을 버렸을까'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내 가진 의문이었다. 은이성지를 출발한 후 3시간에 걸쳐 세 개의 고개를 지나는 동안 오랜 시간 고민한 문제의 답은 저절로 나왔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사랑이 있었기에 순교자들은 결코 죽음에 굴하지 않고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망덕고개 비에 새겨진 김대건 신부의 약력을 읽고 언덕을 내려오자 저 멀리 미리내성지에서 아이들 조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양떼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내준 성인의 묘소 앞에서 이제는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고사리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리고 있다. '기적 한 번 보여주시면 신앙생활 열심히 할 텐데'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에 고개가 숙여진다. 순교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또 있을까. 하느님은 이미 이 땅에서 숱한 기적을 베푸셨다.

 

취재를 위해 의무감으로 시작한 순례가 끝났다. 그동안 취재하느라 수도 없이 봐왔던 김 신부와 그 어머니 고 우술라,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새롭게 보인다. 몇 시간이라는 짧은 순례로나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은 이들이 가졌으면 좋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 함께하는 성지순례

 

혼자 길을 찾기 어려운 이들은 매달 넷째 주 토요일 오전 11시 은이성지 미사 후 은이성지 사제와 함께 떠나는 순례길에 동참하는 것도 좋다.

 

순례는 은이성지를 출발해 신ㆍ망ㆍ애 삼덕고개를 지나 미리내성지에 도착한 뒤 버스로 다시 은이성지로 오는 코스다. 참가비 5000원. 문의 : 031-338-1702, 은이성지

 

 

 

 

김대건 성인의 묘소를 찾은 유치원생들이 고사리 손을 모아 기도를 바치고 있다.

 

[평화신문, 2010년 10월 10일, 백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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