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지] 청주교구 배티성지-진천성당: 신앙선조 혼 깃든 한국의 카타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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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0-05 ㅣ No.848

[즐거운 여가 건강한 신앙] 청주교구 배티성지 ~ 진천성당


신앙선조 혼 깃든 '한국의 카타콤바'

 

 

최양업 신부.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충북 진천군 진천종합버스터미널.

 

백곡면 양백리에 있는 배티순교성지로 가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날렸다. 버스는 오전 9시 30분ㆍ낮 12시 10분ㆍ오후 2시 50분ㆍ오후 5시, 하루 네 대 뿐이다.

 

터미널에서 성지까지는 차로 30분이 걸린다. 청주교구가 지정한 3박 4일 도보성지순례 코스(배티~진천~괴산~연풍 84㎞) 중 하루 코스인 1ㆍ2구간, 배티성지~진천성당(16.7㎞)을 걸을 계획이다.

 

순례 안내책자를 챙겨들고 성지를 빠져나와 새로 조성된 옛 신학교 터로 향했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 사목 중심지

 

10분쯤 가다 103위 성인 계단을 오르니 십자가의 길에 둘러싸인 마당이 나온다.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나무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재촉하는 도포 차림의 최양업 신부 동상이 그 끝에 서 있다. 동상 옆에 옛 신학교가 있다. 혹시나 해서 창호지 발린 문을 살짝 당겨보니,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성체 거양을 하고 있는 최 신부가 떡하니 앉아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들어가 비치돼 있는 참배기도문을 바치고 길을 나섰다.

 

- 옛 신학교 겸 성당을 향해 오르는 103위 성인 계단. 순교자들이 박해의 칼을 받고 쓰러지는 순간, 곧 맞이하게 될 천상 행복에 엷은 미소를 지었을 것을 생각하니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기분이 된다.

 

 

"저는 너무 약한 어깨에 힘에 겨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 제가 담당하는 조선 5도에는 매우 험준한 조선의 알프스 산맥이 도처에 있습니다. 저의 관할 신자들은 깎아지른 듯이 놓은 산들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마다 조금씩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땀의 순교자' 최 신부가 1851년 10월 15일 절골에서 쓴 서한이 피부로 와 닿기 시작한 것은 성지에서 2~3㎞쯤 떨어진 옛 삼박골 교우촌을 향해 산비탈을 오르면서부터다. 도보순례에 나선 지 두 시간여 만에 도보가 등산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절골은 현 백곡면 용덕리로 추정된다. 윤의병 신부의 유명한 순교소설 「은화(隱花)」의 주무대가 된 이곳은 소설에 등장하는 이 진사와 그의 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우촌이자 성 다블뤼 안 주교와 칼래 강 신부가 들러 성사를 주고 쉬던 곳이다.

 

옛 교우촌으로 향하는 소로에 접어들자 길가 외딴 집에서 강아지 다섯 마리가 요란스레 짖어댄다. 지도상에는 700m라고 쓰여 있는데, 오르막이라 그런지, 처음 가는 길이라 그런지 더 멀게 느껴진다. 중턱쯤 오르자 멀리 잘 가꿔놓은 묘소가 보여 한달음에 달려가니, 으리으리한 묘는 어느 문중의 일반 무덤이다. 그 뒤로 작은 십자가 두 개가 위아래로 서 있는 소박한 묘가 순교자의 것이다.

 

재현해 놓은 옛 신학교 겸 성당 안 성체 거양을 하고 있는 최양업 신부 동상.

 

 

병인박해가 한창일 때 실제 인물 이 진사는 피신했지만 그의 아내와 딸은 현장에서 순교한다. 지금도 순교자 모녀는 이곳에 남아 옛 교우촌을 지키고 있다.

 

다시 길가로 나왔다. 백곡공소까지는 5~6㎞가 남았다. 잘 포장된 아스팔트길에서 얼굴을 익힐 듯한 열기가 올라온다. 모처럼 비가 오지 않아 기분 좋게 나섰건만 30℃가 넘는 늦더위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바지가 들러붙어 차라리 비가 오는 게 나을 성 싶다.

 

물을 살 곳도 없고, 그늘도, 화장실도, 안내 표지판도,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만 제 세상 만난 양 쌩쌩 달린다. 일부 구간에는 걸을만한 곳이 없어 차도로 걸어야 하는데 단체가 아닌 개인이 걸을 때는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김영구 선교사가 백곡공소 앞에 있는 순교자 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흘이나 나흘씩 기를 쓰고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 봐야 고작 40명이나 50명쯤 되는 신자들을 만날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담당하는 그러한 공소 즉 교우촌이 자그마치 127개나 되고, 그러한 촌락에서 세례명을 가진 이들을 다 합하면 5936명이나 됩니다."(최양업 신부의 여덟 번째 서한 중)

 

16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길에는 인적이 드물다. 멀리 도로공사 중인 인부들이 보인다. 아마도 석 달 전 청주교구 청소년대회 참가자들이 이 길을 걸었을 때가 제일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순교자들의 본향, 영원한 안식처

 

이대로 가다가 일사병에 쓰러질 것 같을 때쯤 저 멀리 백곡공소가 보인다. 이 공소를 지키는 김영구(유스티노, 67) 선교사가 순례객을 반갑게 맞는다. 그는 항상 경당과 교육관 문을 열어놓고 순례객을 기다린다. 공소 앞에 순교자 박바르바라와 윤바르바라 묘가 있다.

 

- 29위의 유명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진천성당 전경.

 

 

올케와 시누이 사이였던 둘은 병인박해 때 함께 체포돼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했다. 본래 배티 뒷산 무명순교자 묘역에 안치돼 있던 것을 1977년 후손들이 선산으로 이장하려고 하자 공소 신자들이 "공소에 모셔두고 잘 돌보겠다"고 설득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조선 귀국 후 12년 동안 5개 도를 9만 리 이상 걸으며 복음을 전하고 마침내 과로로 병을 얻어 선종한 최양업 신부를 생각하면 진천성당까지 남은 길도 걸어야 마땅하지만, 찌는 듯한 더위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신자 승용차에 올라탔다. 박해시대에 태어났다면 난 분명 배교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길가에서 차를 얻어 타려고 손을 흔드는 청년을 보니 남 일 같지 않다. 시내를 향해 15분 정도 굽이굽이 달리자 진천성당이 나왔다.

 

청주교구 신앙선조들과 함께하는 도보성지순례.

 

 

29위의 유명 순교자와 수많은 무명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여서일까. 성당 앞 거목만큼이나 뿌리 깊고 두터운 신앙이 깃들어 보이는 성당에 앉아 하느님의 종 최양업 토마스 사제 시복시성를 기원하는 기도를 바친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토마스 사제는 굳건한 믿음과 불타는 열정으로 구만 리 고달픈 길을 마다하지 않고 방방곡곡 교우촌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신자들을 돌보는 데 온 정성을 바쳤나이다.

 

자비로우신 주님, 간절히 청하오니 최양업 토마스 사제를 성인 반열에 들게 하시고 저희 모두가 그의 선교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아 이 땅의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하여 몸바치게 하소서."

 

[평화신문, 2010년 10월 3일,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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