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114.....연중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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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1-14 ㅣ No.1443

연중 1 주간 화요일 - 짝수 해

1사무엘 1,9-20               마르코 1,21-28

2014. 1. 14. 등촌3

주제 : 우리가 가진 힘을 발휘하는 방법

연중시기에 들어선 두 번째 날입니다. 올해는 사순절시기가 지금부터 2달쯤 후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 앞 시기에는 연중시기로 지냅니다. 연중시기가 됐든, 사순시기가 됐든 우리 삶에 무엇이 달라질까요? 하느님 앞에 올바른 모습으로 서야한다는 기본사항을 얘기하자면, 신앙의 절기에 대한 중요성은 한걸음 뒤로 처질 것입니다. 시기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연중1주간의 둘째날 화요일에 들은 말씀에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봐야 주제는 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기도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도 들었거나 한번쯤은 대답했을 질문과 대답이겠지만, 오늘 또 한 번 묻습니다. 특별히 오늘 사무엘역사서에서, 사무엘예언자의 어머니 한나의 모습을 보면서 하는 질문이요, 궁금증입니다. 물론 질문하지 않고,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밥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에 대한 얘기를 하기 전에, 어떤 소개에서 본 짤막한 격언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영국의 소설가, G.K. 체스터턴(1874-1936)라는 사람의 말인데, “무신론자에게 가장 끔찍한 상황은 진정으로 감사를 느끼는데, 정작 감사할 대상이 없는 순간이다. 믿지 않는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기쁨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가진 엄청난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의 기본이 되는 감사와 찬미, 그리고 기도는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또 누구나 하는 것이라고 해도, 똑같은 삶의 결실을 맺는 것도 아니라는데 차이가 있는 법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온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기도한 모습을 다른 사람이 제대로 알아본 것은 아닙니다. 술을 먹고 주정하는 모습, 그저 입술만 움직이는 모습만 보였을 뿐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어느 누가 알아줄 것인지 그게 중요한 요건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내가 하는 기도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만 알아주면 충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현실의 삶을 바꾸는 가장 큰 힘입니다. 그저 조용한 골방에 앉아서 빌고, 빌고 또 비는 소리만 하는 것이 기도일까요?

 

예수님께서 악령을 내쫓는 기적의 힘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기도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올바르게 알아야,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법입니다.

 

우물거리는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사제의 선언, 악령을 제압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과연 무엇을 바탕으로 했는지 잠시 묵상하고, 우리는 그에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살필 시간입니다.

연중 1 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사무엘 3,1-10.19-20 마르코 1,29-39

1996. 1. 10. 잠원동

하느님을 찾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두 가지 이야기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야기한다. 시몬의 장모의 병을 고쳐 준 다음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일치함을 확인하고 그 분의 뜻을 더 잘 실천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기도하러 자리를 바꾸신다.

 

이런 기도와는 다르게 인간은 기적에 놀라서 하느님을 찾는다. 이것이 기도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복음에서는 기도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찾는 표현이 나오고 독서에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하느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무엘은 세 번씩이나 부르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결국 찾기는 합니다만, 인간이 미처 알아듣지 못하는 사이에 하느님은 우리를 얼마나 부르실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부르실까 신앙인들은 얼마나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을까 비교해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독서에 나올 법한 변명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저를 부르셨다고요? 저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는데요!!!”라는 소리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소리를 알아듣는 중개자로서 사제 엘리가 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방법까지도 알려줍니다. 이러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인간적인 지혜도 청해 봄직한 것이 오늘 말씀이기도 합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에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까? 복음서의 말씀을 빌려 생각해보면 인간의 욕심이 앞을 가리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고서야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모두들 선생님을 찾고 있다고 그들은 예수님께 전합니다. 왜 찾고 있는지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지만, 기적에 놀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마음 비슷한 것이 특히 복음서의 말씀 전체 속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말씀을 식별해주는 지혜가 아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자세로서 어떻게 갖추고 사는지를 돌아보고 하느님께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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