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112.....주님세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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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1-11 ㅣ No.1442

주님세례 축일 (가해)

이사야 42,1-4.6-7               사도행전 10,34-38             마태오 3,13-17

2014. 1. 12. 등촌3

주제 :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배운 뜻대로 세상에서 살겠다는 사람을 선택하는 하느님의 표징입니다. 이 세례는 어린 나이에 받는 유아세례도 있고, 어른이 돼서 공부를 하고 받는 성인세례도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어린이는 부모님의 인도로 첫영성체교육을 거쳐서 본격적인 신앙인의 생활을 시작하고, 성인세례는 세례와 동시에 그 삶을 시작합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부모님이 신앙에 대해서 신경을 써주지 않거나 신앙은 네가 알아서 키워가야 하는 일이라는 태도를 갖게 되면, 어렸을 때 세례를 받은 사람은 성장할 수 없고 하느님의 축복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세례의 은총은 개인이 힘으로 시작하고 완성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는 달리, 어른들의 세례는 그 나이까지 살았던 세상기준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기준을 받아들이겠다는 선택과 약속이기 때문에, 신앙인의 참모습을 드러내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우리 삶에 먼저 자리를 잡은 세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기준이, 신앙에게 웬만해서는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른으로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신앙인으로서 제대로 살거나, 겉으로만 빙빙 돌면서 배회하는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도 개인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신앙에 대한 판단일 경우 그 판단은 신중해야 합니다. 세상의 경우는 내가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일에 따라서 그 삶의 결과를 미리 예상할 수 있지만, 신앙은 내가 열심히 산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드러내는 것이 내 삶을 판단하는 분의 뜻에 얼마나 일치하는지 모른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 내 맘대로 살겠다고 할 때 생길 결과는 남이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물론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아니요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세례성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어떤 정성과 마음으로 그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아니요라는 정답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의 속마음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은 사람이 드러내야 하는 올바른 삶의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삶이 한결같지 않은 이유는 같은 신앙을 가졌다고 말은 하면서도 드러내는 삶의 자세나 욕심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대로 말하면, 최소한의 비용을 들이고, 최대한의 결실을 얻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세상의 사정에는 통용되는 이런 논리나 원칙이 신앙에서는 그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사람들이 흔히 이해하지 못하는 원칙의 한 가지입니다. 세상과 신앙에는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고 제가 말씀드리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대로 신앙이 자기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항의하다가 제풀에 지치고 맙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들이고, 하느님이 준비해주시는 축복에 참여할 기대를 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만,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에서 올바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을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은 쉽지만, 대답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요한세례자에게서 세례를 받은 예수님이 강물위에서 올라오자,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하늘에서 소리가 울렸다고 했습니다만, 그 내용은 우리들의 삶에도 그대로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하신 그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없고, 지금까지 그 귀중한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차이나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실천할 사람들이 드러내야 할 삶의 모습을 오늘 이사야예언서는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만민에게 공정을 펴고, 다른 사람을 향하여 외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이 실행해야 할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과연 이렇게 살고 있을까요? 세상에 하느님의 뜻이 실현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고 살아야 할 원칙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산다고 말할 때, 하느님께서 내게 어떤 축복을 주실 것인지 질문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말이 바뀌면, 사람이 드러낼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인은 신앙의 본질을 따라 먼저 살아야하는 사람이지, 세상의 기준을 먼저 들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하느님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부로 생각하는 잘못에 따라 그 축복에서 멀어지고, 잔치에서 멀어지는 선택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무한히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우리가 그 하느님을 피하여 도망칠 때에, 우리의 의지와는 달리 하느님이 우리를 붙잡아 잔치에 억지로 참여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잔치를 기대하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모습을 기억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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