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105.....공현대축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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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1-04 ㅣ No.1437

 

주님의 공현 대축일(가나다해)

이사야 60,1-6        에페소 3,2-3.5-6      마태오 2,1-12

2013. 1. 5. (주일). 등촌3

주제 : 공현에 내가 참여한다는 것

오늘은 예수님께서 공현이라는 방법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음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공현이란, 가족이나 친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드러내며, 그가 세상에 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는 의미가 있는 낱말이기도 하고, 다른 입장에 처한 사람이 그 놀라운 일을 알아본다는 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동방박사들의 등장과 함께 하는 예수님에게서 공현의 모습을 보는 날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다 공현이라는 높임말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상을 구별해서 사용하는 언어라고 알아들으면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공현이라는 표현을 예수님에게 적용하고 있습니다만,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분명히 이렇게 대우받아야 할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어제날짜, 어느(=한겨레)신문에 나온 채현국이라는 어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현(空弦)이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그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자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사람들의 삶에 설명하고 싶은 내용이 갇히게 될 것 같아서, 아무래도 오늘 복음으로 들은 말씀에 대한 것만으로 범위를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공현이라는 말을 예수님에게 적용합니다. 어린아이로 등장하신 예수님이 공현이라는 말을 사용할 만큼 특별한 예우를 바라시지는 않으셨겠지만, 마태오복음서는 동방이라고 기록하는 곳에서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박사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고 그들이 3가지 선물을 드렸다는 이야기와 그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의 시작에 관한 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늘에 나타난 징조를 보고, 세상에 특별한 일이 생긴 거라고 느낀 것은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먼 곳에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을 걸려 베들레헴까지 찾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유대지역을 다스리던 헤로데임금에게 가서 자기들이 하늘의 징조에서 놀라운 것을 보았음을 알립니다. 오늘 복음에는 들은 내용 외에, 또 다른 어떤 말이 오고갔을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땅을 맡아 다스리는 임금이시여! 저희는 동방에서 온 사람인데, 임금님께서 다스리시는 이 땅에 놀라운 일이 생긴 것을 알아보고 그 놀라운 일의 대상이 된 새로 태어난 아기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혹시 임금님께서도 그 일이 일어난 장소가 어디인지 아신다면 알려주시고, 임금님께서도 저희와 같이 가시어 경배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먼 곳에서부터 별을 보고 길을 떠났다고 말하는 동방박사들에게, 세상의 자기가 차지한 세상의 권위만 생각했던 헤로데임금은 적당한 핑계를 대면서 몸을 뒤로 사립니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헤로데의 이 말은 세상의 지혜를 한껏 담아서 본질을 피해간 표현입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가 많이 사용할법한 놀라운 지혜입니다. <<내가 지금 당신들과 함께 정확하지도 않은 정보를 따라, 고생하기는 싫고, 당신들이 먼저 수고해서 그 놀라운 일이 일어난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면, 그를 찾아 경배하겠다고 내가 약속하겠소(!)>>라고 말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대답은 헤로데임금의 생각이 담긴 아주 현명한(?)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후에 벌어진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1228,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기념일에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누구나 똑같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지금부터 2000년이 조금 더 넘는 세월의 모습을 전하는 오늘 마태오복음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겠느냐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위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을 헤로데임금의 모습과 먼 길을 와서 힘들기는 했지만 세상에 놀라운 징조로 다가온 모습을 확인하고 그 일을 일으키신 또 다른 분을 경배하겠다면서 동방박사들이 보여주었던 삶이 섞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느 쪽을 선택해서 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헤로데임금과 같은 자세가 아니라, 동방박사들과 같거나 비슷한 마음을 갖고 살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은 많은 법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고 한다면, 그들이 세상에서 맺을 삶의 결실이 어떠할지도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세상에서 드러내려는 자세와 삶의 지향이 올바른 길로 가려고 한다면, 그만큼 더 나은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가 올바른 길을 가려고 할 때, 그리고 실제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을 때,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느님의 축복은 찾아오는 것이고 선물이 될 것입니다. 동방에서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박사들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로 바쳤다고 합니다. 하느님 앞에 쉽게 나아갈 수 있는 우리는 과연 어떤 선물을 준비하겠습니까?

 

내가 봉헌하는 선물이 어떤 모양인지 알려면 지금의 내 마음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선물을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그에 합당한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인지 잠시 묵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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