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101.....평화가 있기를 기도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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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1-01 ㅣ No.1434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 [0101]

민수기 6,22-27           갈라디아서 4,4-7         루카 2,16-21

2014. 1. 1. (). (새해 첫날 11:00). 등촌3

 

주제 : 새해 첫날에

주 하느님(!), 올 한 해에도,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신앙인들에게, 당신의 사랑과 평화를 내리시어, 당신과 함께 살아가며, 내 삶을 통하여 당신께 기쁨의 선물을 봉헌하게 하소서.” 아멘.

 

기도를 담은 인사로 시작했습니다만, 그래도 전통적인 인사는 해야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말은 이렇게 했습니다만, 이런 말을 하고 나면, 질문하고 싶어집니다. 내가 받고 싶은 복은 누가 주는 걸까요? 세상의 순리에 따르면, 누군가 주는 대상이 있어야 받을 수 있는 법인데, 뜬금없이 이렇게 질문하면, 대답이 어떻게 나오겠습니까?

 

그래서 새해에는 복을 많이 드리겠습니다’(!) 하고 인사하자고 지난해에 말씀드렸는데, 아무래도 귀에 익숙한 말이 아니라서, 갑작스레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하고 망설일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귀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서 대답할 말에 궁색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내가 남들이 주는 복은 많이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면서, 나는 남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돌아봐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2014년은 말띠 해 중에서도 청말 띠 해라고 하며, 그 첫째 날입니다. 청말띠 해를 찾아보니, 갑오년의 갑은 나무를 뜻하고, 색깔은 파랗거나 청색에 해당되며, 십이지(十二支)의 일곱 번째인 오()는 말에 해당하기 때문에, 두 말을 합쳐서, ‘청말띠라고 한답니다. 갑오년, 청말띠는 보통 때보다 더 활기찬 해라는 의미도 있지만, 말이 갖는 급한 성격에 조심할 것도 있다고 합니다. 이 시간이 십간/십이지를 설명하는 시간은 아니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러한 새해의 첫날은 성탄대축일로부터 8번째날, 성탄과 같은 기쁨을 노래하는 축제일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 자리에서는 신앙의 내용들을 먼저 말하기 때문에, 전례에서는 새해를 강조하는 의미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성탄전례의 여덟 번째 날인 오늘은,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기도 하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평화는 무엇이겠습니까?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은 참되고 진정한 평화(平和)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진 것을 지키고 내가 가진 것을 내 맘대로 사용하는 자유라는 의미의 아주 소극적인 의미를 평화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을 지켜야하니, 무기도 필요하고, 힘도 필요하고, 때로는 나를 공격하려는 싹수{=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가 보이면, 그 싹이 자라기도 전에 아예 없애거나 그 존재를 지워야한다는 무시무시한 생각도 합니다. 이런 태도는 길가는 나그네의 겉옷을 벗기는 내기에서 태양과 바람이 하는 선택 중에 어떤 것을 따르는 것이겠습니까? 내가 태양의 입장에 서든, 바람의 입장에 서든 누구나 할 말은 있습니다. 바람의 입장에서 애초에 내기에서 질 것 같으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를 할 것이 아니라, 앞자락을 더 여미게 만드는 내기를 해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대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하느님이시면서도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분, 그리고 공생활과 수난과 부활을 통하여 세상의 힘든 일들을 극복할 가능성을 보여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평화의 방법은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예수님의 삶을 현실 삶에 보인 최근의 세상 사람이 비폭력을 행동강령으로 선포한 사람, 간디라고 합니다만, 이 간디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는 존경하지만, 그를 뒤따른다는 그리스도교신자는 존중하지 않는다는 애석한 말이 그것입니다. 영국의 압제를 경험하면 한 말입니다.

 

세상에 신앙인으로 산다는 우리가 어떤 자세를 드러내야 하는지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머리로 알아듣는 지식이 아니라, 가슴으로 실천하는 행동이어야 한다는데 있습니다. 머리로 알아듣는 것은 세상에 사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실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또 한 사람에 대한 판단을 힘겹게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태어나셔서 처음 몸을 내려놓은 장소로 동물들의 거주지, 구유를 선택하셨습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서 그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가 선택한 장소였지만, 하느님은 그 선택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바로 그러한 모습에서 진정한 평화는 시작되는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설명합니다만, 우리들 중에 그 모습대로 실천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은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지도자가 하느님의 복을 사람들에게 빌어주고, 사람들이 그 말씀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에게 하느님은 복을 내리시겠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이 현실로 드러나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실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하고나 나는 그런 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소심하게 생각해서 멀리도망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어떤 방식대로 사느냐는 차이뿐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한 해, 2014년에는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원하시는 평화가 참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가 특별히 기도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어떤 정성으로 참여하는지 다른 사람은 모른다고 해도, 하느님은 아실 것이고, 우리가 드러내는 정성에 따라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은 우리에게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참된 정성은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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