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3-1224.....성탄밤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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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12-24 ㅣ No.1428

성탄대축일 전야[1224] - 성탄전날 밤미사

이사야 9,1-6       티토 2,11-14      루카 2,1-14

2013. 12. 24. (). 21:00. 등촌3

주제 : 우리시대의 성탄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자고 권고하는 날, 예수님의 성탄대축일입니다. 성탄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이겠습니까? 성탄(聖誕)이라는 낱말은 거룩한 탄생이라는 뜻을 담은 한자표현입니다. 이러한 뜻을 담아,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는 때가 바로 오늘부터 시작되는 축제일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 세상에 왜 오셨을까, 왜 오려고 하셨을까 질문하면 어떤 대답이 가능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제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세상이 하느님나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0년이 넘는 세월 전에 예수님이 먼저 시작하신일입니다만, 예수님이 세상에 머무셨던 기간 33년 동안에 그 일이 완성된 것이 아니어서, 이제라도 완성해야 한다면, 예수님께서 남기신 그 일의 마무리를 누가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시작하셨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신앙인들의 몫일까요? 아니면 자기 목소리를 외쳐대는 정치가나 정치꾼들이 해야 하는 일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세상에 살고는 있지만 신앙인도 아니고 신앙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루어야 할 일이겠습니까?

 

오늘 이 미사에 함께하는 우리가 예수님은 아니기에, 각자가 신앙인에 속한다고 생각하든지, 정치하는 무리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세상에는 속해있으면서 신앙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을 세상 사람의 하나로 뭔가를 해야 할 것인지, 어떤 무리에 들어있는지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는 데에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겠습니까? 혹시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방관자는 아닐까요?

 

예수님은 하느님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대우를 권한이나 권리로 요구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분이라고 바오로사도는 필립서간에서 믿음과 신앙으로 고백했습니다. 바오로사도는 이렇게 예수님에 대하여 신앙을 고백했지만, 우리는 바오로사도의 신앙과 얼마나 같은 마음이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물을 때, 답답하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보잘것없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세상에 의미가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아주 약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 스스로 계란이라고 생각해서 주저앉아서는 곤란한 일입니다. 영화(=Promise Land)에서 들은 얘기입니다만, ‘거대한 힘으로 늘 그 자리에 있는 바위가 힘이 강할 것처럼 보여도, 계란에서 태어난 병아리는 바위를 넘을 수 있다(!)’는 소리에 신선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바위와 같은 세상, 아직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지 않았던 바위와 같은 세상에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러 오신 분인지를 묻고 대답한다면,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그분을 본보기로 기억하면서, 이 세상에 어떤 일을 할 사람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로 바뀌는 일이 쉽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꾸고 그 일을 하려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있는 힘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삶이 힘들어서 아우성치고, 누군가가 내 현실을 바꾸어주기를 바라는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아는 말에,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로 바뀌는 일에는 힘겨운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름대로 할 일이 있을 것이고, 힘이 있고 권력이 있고 갖출 것 다 갖춘 사람도 참여해서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201312월의 성탄을 기억하고, 성탄예절을 거행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성탄전례를 거행해야 예수님이 태어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입을 벌려 말을 하지 못하는 작은 인형으로 된 예수님을 상징하는 인형을 우리는 제단 앞의 한 가운데에 가져다놓았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인형이 우리 삶에 특별한 일, 우리가 놀라운 엄청난 일을 할까요? 이렇게 하는 행동으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언젠가 하느님 앞에 나설 때, 우리는 각자가 세상에 살던 때 삶의 결과를 가지고 가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내가 어떤 직책을 가졌고, 돈을 얼마나 많이 가졌으며, 내 목소리를 얼마나 크게 냈던 사람이냐 하는 업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모임에서 말할 수 있는 내용에 제한이 참으로 많은 것이 요즘 세상입니다. 우리가 그 옛날, 하느님의 뜻을 우선으로 하던 신정(神政)일치의 사회를 그리워할 이유는 없지만, 정치가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서 자기 혼자서도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우길 때, 그 세상은 끝을 향해서 가는 것이라고 알아들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신 다음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외치는 천사의 소리를 전하는 루카복음서말씀을 들었습니다. 정말로 하늘이 감동해서 울린 소리일까요? 이 소리에 맞춰, 세상에서 우리가 화답할 소리는 과연 어떤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모습으로 사람이 되어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을 기억하는 날, 그 어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을 세상선구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함께 기억하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내 편, 나와 생각을 똑같이 하는 사람들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삶에 걸림돌로 다가오더라도 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내 편이 아닌 사람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하느님의 나라로 바뀔 수 있는 기본적인 사회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편을 갈라 한쪽 편을 내치는 데서 시작하지 않고, 모두 하나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느님,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잔치에 모두 함께 하기를 기도할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날, 하느님의 육화인 강생을 기억하는 날, 내가 겪고 있는 것이 어려움이라면 이웃들과 함께 헤쳐 나갈 수 있어야하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기쁨이라면 이웃과도 나눌 수 있기를, 오늘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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