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3-1220.....성탄9일전의 넷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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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12-19 ㅣ No.1426

  1220: 성탄 전 9 일 기간-<4일째>

 

이사야 7,10-14               루카 1,26-38

2013. 12. 20. ()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자에게......

사람은 세상 삶에서 정의(正義)를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정의라는 말은 아주 상대적입니다. 내가 하는 일은 정의이기도 하고 정의에 가까운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일은 정의에서 아주 먼 길을 돌아서가고 있기도 하고 정의와는 상관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 봤던 영화 <‘변호인’-12/18>에서 특별히 더 그렇게 느꼈습니다. 여러분이 저와 똑같은 느낌과 감정을 가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저마다 생각하는 정의와 하느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정의와는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오늘 독서는 하느님을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아주 기특하게(?) 말하면서, 하느님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먼 길을 돌아가고, 자신이 하는 일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올바른 길을 간다고 생각한 아하즈라는 임금의 이야기입니다. 아하즈임금의 태도에,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인간이 드러내는 감정을 넘어서서 세상에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그 본보기를 말하고 있습니다만, 사람이 과연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게 헤아릴까요? 이 역시 늘 하는 이야기의 하나처럼,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사람 축에 들어가느냐는 것입니다.

 

아하즈임금이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은 이사야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의 구원계획을 밝힙니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기 전, 700년이 넘는 세워 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이해하면 하느님이 만족하실까요? 흔히 사람이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하느님이 내게 호의를 베풀어주실 차례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헌데 하느님은 내 정성을 이해하지 않으신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가 할 만큼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원하시는 만큼이라는 것을 우리가 자주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교해서, 복음에 등장한 마리아는 속으로는 어떤 마음의 갈등을 겪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씀을 아주 쉽게 받아들입니다. 세상에 있는 신앙인들의 모습과 비교해서 고집 센 남성과 마음이 여린 여성의 대조를 보는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여성이 다 마음이 여리고, 남성이 다 고집이 센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인들이 드러내야 할 마음의 자세는 남성과 여성의 대조가 아니라, 세상살이에서 하느님의 뜻을 얼마나 많이 생각하느냐 하는 문제이고,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고 얼마나 빨리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기 생각을 고집피우는 사람에게 더 빨리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실현된다고 말하면 옳은 소리가 될까요?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을 내용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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