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3-1216.....대림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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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3-12-18 ㅣ No.1423

대림 3 주간 월요일

민수기 24,2-7.15-17           마태오 21,23-27

2013. 12. 16. . 등촌3

주제 : 우리 앞에 펼쳐진 축복

복을 누리고 싶은 것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신중하게 묻지 않아도, 누구나 가질 법한 바람입니다. 이런 소리를 할 때, 신앙인들에게 말하는 복은 이 세상의 생명이 끝나고 난 다음, 언젠가 하느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알아듣기 쉽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에 복에 가깝지 않고 복에서 멀리 있다면, 미래의 어느 순간, 세상의 생명을 다 마치고 난 다음에 축복이 우리를 찾아올 거라고 누가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제가 말은 이렇게 해도 이 세상에서부터 시작해서 미래로 이어질 축복도 있고, 이 세상에서 끝날 축복을 달리 구별해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는 바람과 현실은 다른 것이 되기 십상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생각으로 먼저 내 삶에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좋은 일이 내 삶에 일어날 가능성은 아주 적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현실에서부터 축복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각자에게 물어본다면 그 대답을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개인적으로 아는 대답이 정말로 내 삶에 실현될 올바른 방법을 찾는 일입니다.

 

하느님이 사람들 사이에 머무신다는 상징이었던 성전정화사건 후에, 예수님은 소위 백성의 지도자들에게서 공격을 받습니다. ‘네가 믿는 하느님을 빙자해서, 그렇게 해도 좋다는 세상의 증거를 우리에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사람이 인정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얘기였으니, 예수님은 그들의 바라는 것과 다른 얘기를 통해서 그 상황을 이겨내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고, 요한의 세례는 누구 보증을 서는 것이냐는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를 바라셨지만, 지도자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권위를 유지하려는 생각에서 대답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렇게 산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닥치겠습니까?

 

민수기에 나오는 오늘 독서의 내용처럼, 히브리민족이라서 자동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히브리민족이 왜 축복을 받게 되었는지, 우리가 그 자세한 사정을 알지는 못하지만, 발라암에게서 이런 축복을 들었던 히브리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할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상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줍니다. 축복은 무조건 빌어준다고 우리에게 와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항상 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면서, 그에 걸맞은 믿음을 갖지 않았거나 합당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축복은 나의 곁에, 나와 함께 마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축복을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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