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2003년 서울대교구장 부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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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2-22 ㅣ No.144

2003년 부활 메시지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루가 24,36)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사회와 온 세상 곳곳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1. 약속의 실현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선포하셨지만,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이방인에게 넘겨 주어 조롱하고 채찍질하며 십자가형에 처하게 했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로마 5,8). 그리스도의 죽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통해서 인류의 결정적인 구속을 완성하는 파스카의 희생제사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일치시키는 새로운 계약의 희생제사입니다.

 

안식일 다음 날 새벽,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처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다음으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발견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인정하는 첫걸음이었습니다. 빈 무덤과 흩어진 수의는 그리스도의 육신이 하느님의 권능으로 죽음과 부패의 사슬을 벗어났음을 뜻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약의 예언과 예수께서 공생활 중에 하신 약속의 실현입니다. 무엇보다도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행하고 가르치신 모든 것이 참되다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2. 생명의 길

 

주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사랑과 생명이 죄와 죽음을 이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부활은 인간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새롭게 변화되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 다시 용기를 얻었습니다. 제자들은 과거에 그들과 함께 계셨던 예수님을 회상하면서, 이제는 부활하여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모여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놀라운 일들을 용감하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인생의 의미나 목적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1고린 15,14). 그러나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사람들을 죄에서 구해 주셨고, 부활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3.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부활을 찬미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세상은 여전히 암울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라크에서는 전쟁으로 인하여 무고한 어린이와 민간인 등 수많은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쟁의 희생자들을 위해서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아울러 세계 도처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니다.

 

이라크의 전쟁은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국내의 다양한 문제들과 북한의 핵문제로 인해 또 다른 두려움에 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남북한에 하루빨리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바쳐야 하겠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전쟁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파괴하는 가장 큰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여러분에게 평화가 있기를!"(루가 24,36)하고 인사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염원하는 평화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먼저 평화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각자가 평화의 도구로서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정의의 실현인 평화는 결코 한 번에 영구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모든 사람이 언제나 꾸준히 이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사목헌장 78항). 다양한 민족과 가치관 그리고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이 모두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사람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4. 새로운 희망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악과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을 얻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처럼 부활 신앙을 간직한 우리도 새롭게 변화되어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공동선을 추구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이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자주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마음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될 때까지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신비 안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분과 동화되어 그분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마침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교회헌장 7항).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다시 한 번 여러분과 온 누리에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와 천상의 모든 성인이 우리나라와 세상에 평화가 충만하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2003년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여

천주교 서울대교구 교구장

대주교 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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