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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시복시성운동: 순교의 영원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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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0-02 ㅣ No.844

[경향 돋보기 - 한국 교회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시성운동] 순교의 영원한 가치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죽음에 당면했다. 한국전쟁 중 ‘죽음의 행진’ 등에서 비롯한 신앙인들의 죽음은 종교와 이념의 경계선에서 외적인 신앙의 고백으로 발생한 순교라기보다 민족과 이념,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의 다양한 동인들이 작용한 결과이다.

 

필자는 최근 전개되는 한국 교회 근현대 신앙의 증인 시복시성 운동을 바라보며 ‘고통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실천한 신앙인’들을 본다. 동시에 근현대 한국의 신앙의 증인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현대의 ‘순교’ 개념에 대한 신학적, 영성적 개념 정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I. 순교 개념의 변천

 

1. ‘순교’ 또는 ‘순교자’의 어원은 희랍어 ‘μαρτυs(마르튀스, 증언)’에서 기원한다. 희랍어 μαρτυs는 본래 희랍문명 안에서 공적인, 법적인, 역사적인, 종교적인 증언을 의미하였다. 이러한 본래의 의미가 그리스도교적 의미에서 신앙을 위한 죽음으로 사용된 것은 2세기에 이르러서이며, 소아시아 교회에서 155년경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폴리카르포 순교록(Martirium Policarpi)”에서 처음으로 오늘날과 같은 맥락의 ‘순교’의 의미가 사용되었음이 많은 교부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1)

 

2. 구약에서는 순교의 개념이 정착된 형태로 발견되지는 않지만 ‘예언자들의 형상’(모세, 호세아, 예레미야 등)과 ‘주님의 종’(이사 42,1-9; 49,1-6; 52,13-53,12), ‘고통 받는 의인’(시편 18,22; 59,4; 욥기 14,4)의 모습을 통해 순교와 연결되는 개념 사용이 포착된다.

 

부세는 “유다 종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임을 역설하며 마카베오 시대의 신앙인들의 열정에서 순교가 태동했음을 말한다.2) 캄펜하우젠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다인들, 특히 구약에서의 순교와 그리스도인들의 순교의 차별성을 언급하는데, 구약에서의 순교가 ‘율법’과 ‘하느님 계명의 준수’ 안에서의 순교였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순교는 ‘그리스도의 이름’의 실현 안에서(그가 행한 사랑의 실천, 투신, 생명의 양도)의 순교임을 덧붙인다.3)

 

3.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추종(따름)’, 곧 예수님의 삶과 운명에 참여하여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도들과 추종자들의 순교(스테파노의 순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로 ‘순교’라는 표현이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행위’로까지는 사용되지 않았음이 확실하다. ‘순교하다’라는 동사는 신약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후대의 창작이다. 하지만 ‘증언(μαρτυ?)’이라는 어원은 존재한다. ‘충실한 증인’, ‘미쁘고 참된 증인’(묵시 1,5; 3,14) 그리고 티모테오 전서의 ‘많은 증인들 앞에서 그것을 훌륭하게 고백’, ‘훌륭한 고백을 수행하신 그리스도 예수’(1티모 6,12-13)라는 표현들이 존재할 뿐이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은 ‘제자들의 수난’과 ‘초대 공동체 삶에서의 고난’을 해석학적으로 조명하는 중요한 열쇠이다. 스테파노의 죽음(사도 22,20)에서의 ‘주님의 증인’이라는 표현과 ‘예수를 증언한 이들의 피’(묵시 17,6)에서 ‘증언’과 ‘피’(죽음으로 상징되는)의 연결이 시도되며, 이는 요한 묵시록의 저자가 ‘증언’과 ‘죽음’을 연결지었음에 틀림없는 증거이다. 현대 (성서)신학자들은 ‘증언’이라는 어휘에 ‘죽음’의 의미가 결부된 과정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면서 신약에서의 ‘증언’이라는 어휘의 쓰임(연설과 성찰에서)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에 있음을 제시한다. 곧 ‘고통의 인간’(1베드 2,21-25; 로마 15,3; 히브 12,2) 예수(마태 25,31; 사도 9,4; 2코린 1,5; 콜로 1,24)는 순교의 전형임을 이야기한다.4)

 

4. 박해가 진행되던 초대교회(1-3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에 대한 과정과 이론을 정립할 필요를 강하게 가지게 된다. 끊임없이 체포되고 순교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신앙과 희망과 용기를 주고자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더욱 강력한 영적 주제로 설정한다. 벗을 위해,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행위의 원천을 예수에게 방향 지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세속의 권력인 국가와 충돌하였고 이러한 정치권력과의 대립은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운명이었음에 틀림없다. 결국 그들은 앞서 언급한 ‘μαρτυs(증언)’ 개념을 채색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지키고자 피를 흘리기까지(생명을 내어놓기까지) 신앙을 증언하는 행위’를 ‘순교’라 지칭하기 시작하였다.5)

 

5. 반면 현대의 신학자들은 ‘순교’ 개념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설명을 시도한다. 이는 ‘증언’과 ‘순교’ 개념의 내적 연관을 찾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곧, 순교자들은 죽음을 선고받는 심문의 상황 아래서 그들의 신앙을 특화하여 증언하며, 믿음의 고백으로서의 ‘그리스도 증거’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과 죽음을 통한 증거’로서 좀 더 실천적인 의미들을 내포한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증언은 결코 인간적인 증언이 아니라 성령의 감도에 따른 증언으로 이해되고 해석된다.

 

 

II. ‘순교’ 개념에 대한 몇 가지 문제의 지점들

 

1. 세계화, 세속화와 더불어 다원주의적 사고의 확대는 한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권위들과 절대적인 체계들을 해체한다. 국가의 권위, 종교의 권위가 무너지고, 절대에 대한 의문은 모든 것을 회의로 몰아붙이고 있다. 노동, 성, 환경, 인권, 가정 등 인간 존재를 둘러싼 모든 영역의 상품화의 진전과 본래적 가치의 상실은 인류와 자연, 사회를 죽음으로 몰고간다. 이러한 다변화, 다원화, 다양화의 시대, 모든 절대 가치가 의문에 부쳐지는 시대에 ‘순교’라는 말은 얼마나 의미 있는 언어로서 이해될 수 있을까?

 

위기와 박해의 시대에 순교자 영성이 빛을 발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지만 외면적 박해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신앙의 환경 안에서 ‘순교’를 돌이키자는 구호는 자칫 ‘신앙의 근본주의자’로 내몰릴 위험이 다분하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순교’라는 개념은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2. 그리스도교의 순교는 인간 존재의 모든 것, 생명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에게 내어놓는 숭고한 신앙의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삶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순교는 ‘진리의 성사’이며, ‘교회의 진리를 위한 효과적인 성사’임에 이견이 없다. 하지만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오늘날 발생하는 순교는 단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매우 정치적인 색체가 짙은 순교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수단,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과 중동, 아시아의 여러 지역(인도, 파키스탄, 중국, 베트남 등)에서는 여전히 다른 종교와의 갈등뿐만 아니라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가톨릭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이미 칼 라너는 고전적 순교 개념을 뛰어넘어 순교 개념의 확장을 모색하였다.6) 그 까닭은 오늘날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사람들은 이전처럼 폭력적이고 종교적인 이유를 명확히 하여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자 집단의 대의와 실리를 최대한 고려하여 교묘한 방법으로 박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에 라너는 (사회) 정의를 위하여 또 그리스도의 다양한 가치에 근거한 삶을 위하여 싸우는 행위를 통한 죽음을 순교로 정의하기에 이른다.

 

3. 아시아 선교의 역사 안에서 선교와 순교의 불가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 중국, 베트남 그리고 일본에서는 선교의 역사와 순교의 역사는 맥락을 같이한다. 19세기 베트남에서는 12만 5천여 명이 순교하였으며, 중국에서는 1900년 초에만 3만여 명이 종교적인 이유로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에 대한 시복시성이 세기 말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왜 아시아 선교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러한 대대적인 박해와 순교가 일어난 것일까? 박해의 동기에 대하여 많은 역사학자들의 논의와 논란이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아시아 4개국에서의 박해는 ‘조상제사 문제’에 단호한 거부 입장을 고수한 보편교회의 입장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 교회에서도 같은 맥락에서 1791년 조상제사를 거부했던 윤지충과 권상연이 전주에서 순교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1년 마태오 리치 상륙 400주년 기념 대화에서 “선교사들이 선교지역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항상 존중하지는 않았다.”라고 인정하며 선교의 역사에서 선교사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유감과 사과를 표명하였다.7) 이것은 교회 내외적으로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 발언임에 틀림없다. 그는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화두 ‘쇄신’과 ‘대화’는 성령의 감도에 따른 교회의 길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동시에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한 수용과 이해는 ‘현대 다원주의 사회와 교회의 대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지점임을 일깨운다.

 

오늘날은 이전 세기와 다르게 종교적인 이유로 폭력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현격하게 줄어들었음에 틀림없다. 순교라는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고려된 가운데 조심스럽게 전개되어야 할 부분이다. 덧붙여 이러한 제반의 변화되는 교회 내적, 외적 환경에 근거하여 신학과 영성의 주제들(순교뿐만 아니라, 강생, 부활, 연옥, 심판, 마리아 등)을 현대인들의 지적수준과 인식방법에 근거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작업이 현대 신학과 영성의 과제이다.

 

4. 물론 오늘날도 여전히 순교는 진행형이다. 교황청의 통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신앙을 이유로 생명을 잃은 사제, 순교자, 선교사들의 숫자가 300여 명에 달하며, 파악되지 않은 통계까지 포함한다면 800여 명이 전교지역에서 (신앙의) 박해자들에 의해 살해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부터 2002년까지 1,299위를 시복하였고, 464위를 시성하였다. 놀라운 것은 복자 1,299위 가운데 988위가 순교자이고, 성인 464위 가운데 401위가 순교자라는 점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게 20세기 순교자들에 대한 재발견은 새로운 세기로 진입하는 교회의 사명과 정체성을 이해하는 기초로 작용한다. 이러한 보편교회의 순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많은 그리스도인 특히 이념, 전체주의 또는 종교적인 탄압으로 신앙의 자유가 가로막혀 있는 나라들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곧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싸우는 사람들, 그리스도인의 소명인 사랑의 실천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큰 힘고 용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2년 10월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시성 연설에서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에 비추어 ‘교회헌장’ 42항을 정리하였다. 그는 열한 번에 걸쳐 사랑이라는 표현을 사랑의 징표로서, 여섯 번에 걸쳐 콜베를 지칭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는 나치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한 사제 콜베를 교회가 ‘순교자’로 인정하게 하는 중요한 복음으로 작용한다.

 

이제 순교의 기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에서 증언의 뿌리로 강조되고, 순교는 복음의 증언, 곧 ‘사랑을 위한 삶의 증여’로 확대된다. ‘신앙을 위한 순교’의 개념이 ‘형제를 위한 순교’, ‘사랑을 위한 순교’에서 ‘정의와 공동선에 대한 신념에 따른 순교’로까지 확장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미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증거자’로 시복되었던 콜베 신부를 시성하는 과정에서 그를 ‘순교자’로 명명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시성이 공포되었던 1982년 6월 5일 몇몇 폴란드 주교들과 독일의 주교들은 교황에게 편지를 써서 신학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다.8)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주교단의 강력한 신학적 문제제기를 일축하며 신학적 견해에 대해서는 신학자들이 그 정당성을 다룰 것이며, 끊임없이 발생하는 현대의 순교 문제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을 준비해야 함과 순교의 실재적 차원에서의 논의는 양심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원천으로 작용해야 함을 피력하였다. 그리하여 1982년 10월 10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시성식에서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는 순교자로 시성되었고, 교황은 ‘신앙의 순교’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사랑의 순교’, ‘형제를 위한 순교’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존의 개념9)을 뛰어넘는 더욱 포괄적인 ‘순교’ 개념을 채택하였다.

 

“콜베의 죽음을 즉흥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의 특별하고도 충만한 실현입니다. 막시밀리아노 콜베는 특별하게도 그리스도와 닮았고, 모든 순교자의 모범이며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들의 시대 어디에서 이러한 숭고한 죽음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 시대 이렇게 특별하고 확증적인 교회에 대한 증언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나의 사도적 권위 안에서 이미 ‘증거자’로 시복된 콜베를 이제는 ‘순교자’로 공경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10)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42항에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를 인용하며 가장 필요한 첫 번째 은혜는 ‘사랑’이며, 이 사랑으로써 우리는 만유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언급한다. 곧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생명을 바치심으로써 당신 사랑을 드러내셨듯이, 주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생명을 버리는 사람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을 박해자들에게 증언하도록 교회와 그 공동체는 부르심을 받았고, 세상 구원을 위하여 죽임을 당하신 스승 예수님을 닮아 피를 흘리는 제자의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요 사랑의 최고 증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공의회에서는 실재적인 차원에서의 순교를 논한다.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교의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또 특별한 사람들이 이러한 순교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은혜가 소수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모든 제자는 그 준비를 갖추어,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교회가 늘 겪고 있는 박해 가운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그리스도를 따라가야 한다”(교회헌장, 42항).

 

고전적인 순교 개념은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를 순교의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시복시성한 모든 사례에서는 ‘사랑’의 실천, 증거, 곧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삶)을 기여하는 자들을 순교자의 반열에 올리며, 또 그러한 삶, 자신을 포기하고 다른 생명을 살리는 삶 전체로 그리스도인들이 부르심 받았음을 상기시키며 순교자들의 삶을 따르기를 촉구한다.

 

여기에 신학자 게라르디니는 중요한 신학적 입장을 표명한다. 곧, 순교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판단의 기준은 ‘박해자 편에서의 행위’가 아니라 ‘희생자(순교자) 측에서의 행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곧, 교회가 순교를 규정할 때 ‘신앙에 대한 증오’가 있었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희생자(순교자)가 어떠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언하였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11)

 

 

글을 맺으며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순교자들은 자기 피를 흘림으로써 믿음과 사랑의 최고의 증거를 보였으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더욱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교회는 언제나 항구하게 믿어왔다. 그들을 바라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찾으려는 새로운 동기들을 끊임없이 발견하며 무상한 현세의 변화 속에서도 각자에게 고유한 신분과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인 성덕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을 배워왔던 것이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인간성을 가지고도 그리스도를 더욱 완전히 닮아가려 했던 순교자들은 생활 속에서(2코린 3,18)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과 하느님의 모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신앙의 모범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자기희생은 형제적 사랑의 실천을 통한 ‘교회의 일치’를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오늘날 순교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 ‘사랑의 증언’, ‘벗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용기(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순교를 ‘피 흘림’이라는 극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두려움 없는 사랑’(1요한 4,18)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순교’의 개념을 더욱 현재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곧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는 말씀처럼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인간 존재의 초월을 이야기해야 한다. 곧 ‘순교’를 ‘빛나는 신앙의 증거’(사목헌장, 21항)로 이해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인 성소인 ‘사랑의 실천’, ‘완덕’에로의 정진에 순교 개념의 방점을 찍어야 한다.

 

그리스도교 ‘순교’의 역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영원할 것이다. ‘피 흘림’이 아닐지언정 우리가 사는 삶의 모든 부분과 영역에서 사랑 자체이신 그분을 증거하는 삶! 그것이 바로 순교의 삶을 사는 것이고, 그 가치는 영원할 것이다. 곧 순교의 본질은 ‘죽음’이 아니라 ‘증거’이며,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순교는 ‘사랑의 증거’임을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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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 Strathmann, μαρτυs, in GLNT VI, 1282-1289; K. Rahner, Martyrium, in LThK VII, 136-138 참조.

 

2) W. Bousset, Manichaisches in den Thomasakten, in ZNW 18 (1917/1918) 23 ss.

 

3) H. F. Von Campenhausen, Die idee des Martyriums in der alten Kirche, Gottingen 1964, 1-4: Th. Baumeister, La teologia del martirio nella Chiesa antica, in Traditio Cristiana VII, SEI, Torino 1995, 9-28.

 

4)「폴리카르포 순교록」VI, 2, in AAR. Bastiaensen A. Hilhorst G.A.A. Kortekaas?A.P. Orban-M.M. Van Assendelft(edd.), Atti e passioni dei martiri, Mondadori, Milano, 1987, 12-13 참조.

 

5) Th. Baumeister, Martire e perseguitato nel primo cristianesimo, in Concilium 3(1983) 18; A. Cappelletti-M. Caprioli, Martire, in DES, 1521: H. Strathmann, μαρτυs, in GLNT VI, 1282-1289; K. Rahner, 앞의 책 참조.

 

6) 순교의 고전 개념의 핵심은 ‘신앙의 동기’로 죽임에 놓여지는 것이다. 그것은 순교자가 능동적으로 또는 인위적으로 추구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명시한다. R. Hedde, Martyre, in Dictionnaire de Theologie Catholique X,1, Paris 1928, 220-223; K. Rahner, Dimensione  del martirio. Societa umana  e Chiesa di domani in Nuovi Saggi X, Paoline, Roma 1986, 388-389 참조.

 

7) 요한 바오로 2세, P. Matteo Ricci e la Cina, in EV 20(2001.10.24.), 1298-1304 참조.

 

8)「로세르바토레 로마노」(1982년 10월 7일). 편지의 주요 골자는 “왜 콜베 신부가 가톨릭 신앙의 순교자로 시복되어야 하는가? 그의 순교의 동기를 감안했을 때 이는 교회법적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이며 기존의 전통적 순교개념을 간과하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 있던 콜베는 수감 기간 동안 어떠한 박해자들을 향해서도 신앙의 증언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누구도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를 품고 콜베를 죽이지는 않았다. 그의 증언은 한 가족의 아버지, 곧 콜베를 통해 생명을 구했던 한 사람에게 ‘나는 가톨릭교회의 사제입니다!’라는 (단순한) 증언을 했을 뿐”이라며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순교에 대한 정의에 위배되는 교회법적 판결임을 교황에게 건의하였다.

 

9) 순교에 대한 기존 개념의 세 개의 축은 토마스 아퀴나스, 베네딕토 14세 교황, 이어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안에서의 ‘순교’의 개념이다. 「신학대전」 II-II의 제124항의 물음은 모든 신학자가 주요하게 인용하는 고전 개념이다. 곧, 순교는 ‘덕’스런 행동이며, ‘용기의 덕’이며 ‘사랑으로부터 명령된 것’이며 ‘인내’를 동반하며 다른 여타의 덕과 신앙을 지키고자 죽음을 감수하는 더욱 높은 완덕을 향한 행위임을 제시한다. 동시에 박해의 상황 아래서 ‘정의’와 ‘진실’ 안에 머물러 있으려는 강력한 원의가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는다. 순교로 확정하는 네 가지 요소는 ‘1) 폭력에 따른 죽음, 2) 희생자 편에서의 신앙의 증언, 3) 박해자 편에서의 신앙에 대한 증오, 4)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공적으로 선언했는가?’라는 점이 고려된다. 반면 베네딕토 14세는 역사-교회법적 요소, 인간적 요소, 원인적 요소를 꼽으며, 참된 순교자는 신앙을 동기로, 하느님을 증언하는 윤리적 덕의 소유, (순교) 죽음의 원인은 교회가 가르치는 신성한 진리와 계시된 교의에 대한 충실함을 언급한다.

 

10) 요한 바오로 2세, In foro Sancti Petri abita ob decretos Beato Maximiliano Kolbe Santorum coelitum honores in AAS, LXXIV, 1982, 1219-1224.

 

11) B. Gherardini, Il martirio nella moderna prospettiva teologica, in Divinita 26(1982), 30-31.

 

* 지성용 가브리엘 - 교황청 우르바노 대학에서 교의신학 석사, 영성 전공으로 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천교구 성소국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천주교 인천교구 영성생활연구소 사무국장, 연구소 부설 종합상담센터장, 논현1동 주임이며, 인천 가톨릭 대학교 신학과 교수이다.

 

[경향잡지, 2010년 9월호, 지성용 가브리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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