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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복시성] 시복시성 절차법 해설: 단일 안건에 대한 시성성 교령, 법정 구성과 개정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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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10-02 ㅣ No.843

[시복시성 절차법 해설] 단일 안건에 대한 시성성 교령, 법정 구성과 개정 준비

 

 

지난 호에서 1980년대와 1990년대의 한국 순교자 시복시성 추진 노력은 2000년대에 와서 한국 천주교회 차원, 곧 주교회의가 청구인이 되는 통합 추진 안건으로 구체화되었음을 언급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단일 안건에 대한 시성성 교령, 법정 구성과 개정 준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절차법적인 설명이 쉽고 부드럽도록 필자와 관계자들의 당시 상황과 진행 과정도 함께 기술하겠습니다.

 

 

청원인의 역할에 대한 단상과 하느님의 종들의 선정 작업

 

각 교구 차원에서 진행되어 오던 한국 순교자 시복시성 작업을 통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필자가 2000년 가을에 청원인으로 내정되었을 때, 사실 당황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 필자는 배티 순교성지 담임신부와 청주교구 양업 교회사연구소 관장으로 재임하고 있었지만, ‘시성 절차법’과 ‘시성성 시행령’에 문외한인 사람이 과연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절차법과 시행령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필자는 현행 법규범을 점차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청원인의 자격과 임무에 대한 준비가 본인에게 어느 정도 미리 마련되어 있었음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교의신학을 전공하였고, 성지에 있으면서 교회사를 연구하였습니다.

 

‘주교들이 행할 예비심사에서 지킬 규칙’(1983년 2월 7일, 시성성 시행령) 제3조 가항과 나항은 청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 “청원인의 임무는 사제들, 봉헌생활회의 회원들과 평신도들이 수행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가 신학과 교회법 및 교회사에 정통할 뿐 아니라 시성성의 관행에도 익숙한 자들이어야 한다.”

 

나) “청원인은 우선 하느님의 종의 성덕의 평판과 시성 안건의 교회적 중요성을 식별하기 위하여 그의 생애에 관하여 연구하고 이에 대하여 주교에게 보고하는 것이 소임이다.”

 

필자에게 부족한 것은 교회법과 시성성 관행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교회법 전문가와 시성성 실무자의 도움을 받아 안건의 준비를 한 단계 한 단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시성성 실무자 사르노(R. J. Sarno) 몬시뇰과의 연락과 자문은 로마 한인신학원장이었던 전달수 신부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잘 이루어졌습니다. 단일 안건 교령 신청과 ‘장애 없음’ 신청 공문 작성 등에 대한 자문은 안건 진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통합 추진 안건을 준비하면서 2000년 가을에 필자에게 떠오른 또 하나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통합 추진의 토대가 되는 문건이 마련되고 관련 교구장이 서명하여야 통합 추진이 가능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주교회의 사무처에서도 공유되었습니다.

 

그해 12월 주교회의는, 장익 주교님의 제의로, ‘단일 안건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문의 공문을 시성성에 발송하였고, 같은 달 시성성의 회신 공문으로 필자가 막연히 생각한 문건이 ‘관할권 이양 선언과 관련 교구장의 서명’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2001년 3월 22일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의장이며 마산교구장이던 박정일 주교님이 통합 추진 담당주교로 선출되었으며 관할권을 이양받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주교회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김종수 신부님과 사무차장 이창영 신부님의 신속하고 정성스런 노력으로 그 문건의 작성과 서명, 시성성 공문 송부가 2001년 6월 9일에 완결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얼마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2001년 9월에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 선정위원회’ 제1차 회의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선정위원으로 구본식 신부, 김성태 신부, 김진소 신부, 장동하 신부, 정종득 신부가 위촉되었습니다.

 

이후 2001년 11월에 2차 회의, 2002년 1월에 3차 회의를 마치고 선정 결과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 보고할 수 있었습니다. 선정위원회에서 마련한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교황령과 시성성의 규정에 따라 하느님의 종을 선정한다.

나) 교구에서 제출한 명단 가운데 사료(교회, 관찬) 로써 순교 사실이 분명하게 증명되는 순교자,

다) 순교 사실뿐만 아니라 신자로서의 모범적 행적에 대한 기록이 조금이라도 있는 순교자,

라) 과거에 배교한 사실이 있었더라도 분명히 회개한 사실이 증명되는 순교자,

마) 세례명이 없다 하더라도 ‘나’항에 의거한 순교자,

바) 순교 사실에 대한 사료가 상치될 경우에는 역사위원회와 신학위원회의 견해를 참조한다.

 

 

단일 안건에 대한 시성성 교령과 ‘장애 없음(nulla osta)’ 준비 과정

 

2001년 10월 18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박정일 주교님의 사회로 제1차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박정일 주교님이 위원장 직책을 맡았고, 정진석 대주교님, 이문희 대주교님, 이병호 주교님, 최덕기 주교님, 장봉훈 주교님이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위원회의 발족으로 예산 확보의 길이 열렸고 여러 가지 통합 추진 문제들을 상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련 교구 담당신부들의 모임은 시복시성통합추진위원회가 되었고 그 사무실은 임시로 필자가 근무하던 배티 순교성지에 두게 되었습니다.

 

통합 추진 위원으로 서울대교구 김성태신부, 대구대교구 구본식 신부, 수원교구 김학렬 신부, 부산교구 전수홍 신부, 전주교구 김진화 신부, 마산교구 신은근 신부, 청주교구 류한영 신부, 원주교구 여진천 신부, 안동교구 안상기 신부, 제주교구 허승조 신부가 위촉되었습니다.

 

2002년 3월 7일 제2차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120명의 순교자 시복 추진대상자가 선정되었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와 김범우 토마스는 각각 증거자 안건으로 추진하기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또한 한국 천주교회 창설 주역을 중심으로 한 2차 시복 추진 안건은 신학 · 역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추진하기로 하였습니다.

 

신학위원회 위원으로 곽승룡 신부, 김정수 신부, 서경돈 신부, 심상태 신부, 조규만 신부가 내정되었고, 역사위원회 위원으로 김기만 신부, 김희중 신부, 이석재 신부, 조광 교수, 차기진 박사가 내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통합 추진 위원들이 ‘부청원인’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필자는 3월 8일자로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직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선정 작업의 최종 정리 과정에서 4명의 순교자가 추가되어 총 124명의 순교자(기존 하느님의 종 13명 포함)가 선정되었으며, 안건의 제목은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시복 추진 순교자가 확정됨에 따라 실무자들은 한글 약전과 영문 약전 정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인 2002년 7월 19일에 박정일 주교님은 ‘신학 · 역사 및 통합 추진 위원 연석회의’를 소집하여 통합 추진의 제반문제를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임명장을 수여하였습니다.

 

또한 회의 참석자들은 약전 작성의 원칙과 방향에 대하여 논의하였고, 전국 차원의 ‘순교자 시복시성 기도문’ 제작과 보급을 건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순교 사실에 이견이 있는 대상자에 대해 신학위원과 역사위원의 자문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9월 2일 열린 제3차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그동안의 경과 보고와 건의를 받아들였고, 기도문을 작성 · 인준하였습니다. 이로써 기도문 40만 부를 인쇄하여 각 교구로 발송하였고, 순교자 현양과 기도 운동이 활발해졌습니다.

 

2002년 6월, 박정일 주교님은, ‘단일안건의 관할권자가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가 되는데 대한 주교회의 의장단의 확인서명 공문’(6월 11일자), ‘청구인과 관할권자를 겸할 수 있는 관면 요청 공문’(6월 25일자)을 시성성에 보내 ‘교회법정의 권한에 관한 교령’을 신청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공문에서 로마에 상주하는 총청원인(Postulatore  generale)에 한인신학원 원장 전달수 신부를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 공문에 대한 시성성의 답신은 9월 4일에 왔습니다. 그 내용은 “마산교구 예비심사 관할을 허가하며(Prot. N. 1664-2/01), ‘장애 없음’을 받으려면 124명에 대한 약전을 송부하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성성 장관은 같은 해 10월 25일자 공문을 통해 전달수 신부를 총청원인으로 임명하기는 무리가 있으므로 시성성 연락관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고 답신하였습니다. 이후 전달수 신부님에 대한 시성성 실무자의 협조가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정일 주교님이 11월 11일 마산교구장직에서 물러나 은퇴하게 되어 그 관할권은 후임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님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시성성 실무자에게 문의한 결과,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장인 박정일 주교님이 마산교구장에게 그 권한을 위임받아 안건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박정일 주교님은 12월 17일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님으로부터 그 관할권을 위임받아 통합추진 업무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시성성 시행령, 제5조 가항, 제6조 가항 참조).

 

 

법정 구성과 개정 준비 과정

 

2003년 3월 24일에 열린 제4차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는 시복 예비 심사 사무실과 전담사제의 필요성에 공감하였으며 주교 대리인(delegatus episcopi)에 이찬우 신부를 내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위원장 주교가 재판의 다른 직책자를 선임하기로 하였고, 청원인 류한영 신부에 대한 법적 임명을 승인하였습니다.

 

필자가 200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청원인(postulator)으로 내정되었지만, 아직 법적인 임명장은 받지 못했습니다. 박정일 주교님이 단일 안건의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청구인(actor)인 주교회의를 대표하는 의장단이 법규범에 따라 청원인 임명장을 작성하고 관할권자가 이에 대해 동의하는 절차를 밟았습니다(시성성 시행령, 제2조 가항).

 

청원인 법적 임명 일자는 2003년 4월 22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청원인인 필자는, 몇 개월 준비 과정을 거친 뒤, 8월 1일 청원서(supplex libellus)와 증인 명단과 그동안 모은 자료들을 박정일 주교님에게 제출하고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의 안건을 착수해 주도록 요청하였습니다(시성성 시행령, 제8조, 제10조).

 

한편, 관할 주교인 박정일 주교님은 2003년 8월 6일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 124위 영문 약전을 발송하여 성좌로부터 안건 진행에 장애가 없는지를 문의하였습니다(제15조 다항).

 

청원서를 접수한 주교가 그 안건 착수의 적절함에 대해서 주교회의에 자문하여야 하는 규정(시성성 시행령, 제11조 가항)은, 청구인이 주교회의이기 때문에, 이미 승인이 인지된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박 주교님은 9월 20일 청원인의 청원을 한국 천주교회에 공포하고 안건에 관련된 자료를 제출해 줄 것(시성성 시행령, 제11조 나항), 하느님의 종들에 대한 공적 경배를 초래할 전례 행위를 금하고 그에 준한 행위들을 삼갈 것을 당부하였습니다(제36조). 그 담화문은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시성 예비심사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시성성 실무자의 권고에 따라, 청원인은 2003년 9월 25일 ‘출판 저작물에 대한 청원인 선언’을 하였습니다. 이는 시성성 관행으로 124위 하느님의 종들 가운데 정약종만이 “주교요지”를 저술하여 출판하였다는 확인입니다.

 

2003년 10월 3일 박정일 주교님은 서적 검열 신학자(censor  theologus)로 김성태 신부와 조규만 신부를 임명하고 정약종의 “주교요지”에 대한 서적 검열을 지시하였습니다(시성성 시행령, 제13조). 서적 검열 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보고서를 10월 25일자로 제출하였습니다.

 

2003년 8월에 문의한 시성성의 ‘장애 없음’ 확인이 10월 6일자로 이루어짐에 따라(Prot. N. 1664-1/89) 재판 개정에 필요한 절차와 준비를 부지런히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1월 20일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주교들이 행할 예비 심사에서 지킬 규칙’, 곧 시성성 시행령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안건은 조선 왕조 치하(1791-1888년)의 순교자 시복 조사이므로 이미 목격 증인은 사라졌고, 순교 사실에 대한 증명은 오로지 기록된 문헌 자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시성성 시행령, 제7조).

 

‘옛날의 안건’이라 불리는 위의 안건은 역사와 고문서 감정 전문가의 자문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제14조 나항). 각 교구의 하느님의 종들에 대해서 교구 관련 역사 전문가들이 이미 연구하였고, 선정위원회의 역사 전문가들이 자체 검토를 하였지만, 시성성의 법규범에 따라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들이 임명되어 보고서를 제출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 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진소 신부가, 위원으로 여진천 신부와 유은희 수녀, 마백락 회장과 조광 교수, 차기진 박사가 위촉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일곱 번의 회의를 거치면서 124위에 대한 역사적 제반 문제를 검토하고 각자에게 할당된 하느님의 종들에 대한 개별보고서와 위원회 이름의 종합보고서를 2004년 5월 21일자로 제출하였습니다.

 

이 보고서에는 하느님의 종들과 관련된 고문서들과 저작물들의 목록, 그 진정성과 가치, 그들의 인간성에 대한 판단을 표명하였습니다(시성성 시행령, 제14조 다항). 그 밖에 하느님의 종 124위 순교자 약전이 2003년 9월에 출판되었으며 이 약전의 영문판은 2004년 2월에 간행되었습니다. 이로써 시복 대상자에 대한 연구와 홍보, 기도 운동의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2004년 5월 21일 박정일 주교님은 ‘안건 착수와 법정 구성’ 교령을 반포하였습니다. 이 교령은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순교자 시복 안건의 착수를 선언하며, ‘시성 절차법’의 규범에 따라 하느님의 종들의 생애, 순교 사실과 순교 명성의 지속성 여부에 대한 소송을 시작하려고 법정을 구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송의 재판에서 위원장 주교를 대신해서 심리를 진행할 재판관 대리에 이찬우 신부가, 검찰관에 이상국 신부, 박동균 신부와 김길민 신부, 공증관에 이창영 신부, 공증관 보에 장후남 씨가 임명되었습니다. 이러한 법정 구성은 합의부 재판 형식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 차원으로 124위나 되는 하느님의 종들에 대해 조사하는 법정이므로 교회법 전문가들은 그러한 형식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입니다.

 

박정일 주교님은 교령의 말미에 “주교회의 사무처장은 이 재판부 구성원들에 대한 임명 사실을 알려 2004년 7월 5일 오전 11시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회의실에서 각자의 직무를 받아들이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서약하도록”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같은 날짜로 박정일 주교님은 검찰관에게 ‘질문 항목’ 작성을 지시하였고, ‘뒤늦게 제출된 안건의 사기성(詐欺性)과 범의(氾意)에 대한 선언’을 하였습니다(시성성 시행령, 제9조 나항). 이로써 법정 개정준비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 류한영 베드로 - 신부.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총무. 청주 연수동성당 주임.

 

[경향잡지, 2010년 9월호, 류한영 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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