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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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해설: 부와 가난을 넘어 하느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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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1-11 ㅣ No.3658

[이주형 신부의 사회교리 해설] 부와 가난을 넘어 하느님 찾기

 

 

알아보기 – 부자와 라자로

 

“예수님께서는 빵을 주시기 위해, 혹은 복지와 번영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다!” (베네딕토 16세, ‘나자렛 예수’) 여러분들은 이 말씀에 얼마나 공감하십니까? 분명 신앙생활의 목적은 현세적인 풍요로움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버리고(마르 10,21) 오히려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고(마태 16,24), 사랑의 실천과 나눔을 통해 하늘에 보화를 쌓으라고 하셨지요.(마태 6,20) 그것은 분명 현세의 재물과 나 자신만의 안위함을 추구하라는 것은 아닐 겁니다.

 

루카 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는 저승에 가서야 비로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지상에 남겨진 가족들이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나아가 재물에 무분별하게 애착해서 하느님을 잊고 살았던 지난날을 후회했는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가난한 거지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심화하기 – 부와 가난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생각보다 많고, 그런 것들이 없다면 불편과 불행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힘겨운 빈곤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고, 이웃과 세상을 증오하며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앞선 부자도 부유함 때문에 하느님을 잊고 말았는데, 가난한 상황도 하느님을 잊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가난한지만 경건하게 신앙을 지켜가는 사람도 있고 게다가 성직자나 수도자들처럼 청빈을 추구하며 오히려 가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또한 물리적인 박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도 일종의 가난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신앙을 지킨 이들도 있습니다. 요컨대 부와 가난은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는 상황이며 양자 모두 인간에게 어떤 유혹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찾는 것이지요.

 


사회교리의 가르침 – 축복과 책임

 

그러나 사회교리는 물리적 궁핍의 어려움과 재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며(171항) ‘선용과 나눔’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부자와 빈자의 상황을 동일하게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책임과 의무의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성경의 관점은 이것입니다. 부와 재물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며, 태어나면서 유복한 이들처럼 누군가에게는 선물처럼 주어질 수 있습니다. 다만 많이 받은 이에게는 많이 요구하신다는 말씀처럼(루카 12,48) 더 큰 책임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더 많은 것을 하느님 앞에서 보여드려야 합니다. 요컨대 부유함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한 책임입니다.

 

반대로 궁핍과 가난한 이는 피폐하고 어려울 것입니다. 병고나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와 도움입니다. 가난하지만 하느님을 찬미하며 경건하게 살았던 신앙의 선조들처럼 그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또 다른 책임을 맡았습니다. 물론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위령성월이지만 죽음을 통해 신앙을 증거했던 선조들을 기억해봅니다. 하느님을 사랑했기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신 그분들은 세속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진정한 가난을 선택했습니다. 오늘날 너무나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24위 한국 순교 복자> 정진영 레지나

 

 

레지오의 가르침 – 올바른 이해와 덕행의 증진

 

레지오 교본에서도 활동의 중요한 요소로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실천을 꼽습니다. 이를 위해서 재물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33장 레지오 단원의 의무 중, ‘13 레지오 단원들의 내적 생활’을 보면 그 핵심은 하느님을 사랑함, 그리고 극기와 절제 등 수덕의 함양도 언급됩니다.

 

본당 소임 시절 레지오 회합하시는 단원들에게 훈화와 강복을 드리러 다니곤 했습니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성모송을 바치는 단원분들을 보며 저 역시 마음과 영혼이 맑아짐을 체험했습니다. 또 레지오 단원분들의 기도가 신앙공동체를 위한 큰 힘이 된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 정성스런 기도는 재화를 올바로 다루고 세상과 이웃을 향한 나눔으로 더 큰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재화의 보편적 목적은 모든 사람이 더욱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모든 개인과 모든 민족의 완전한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건들을 얻기 위한 공동 노력을 요구한다. (중략) 이 원칙은, 언제나 소유욕의 유혹을 받는 모든 시대의 인간과 사회에 복음이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요구와 일치한다. 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으로 유혹을 이겨내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기꺼이 유혹을 받으셨다.” <간추린사회교리 175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1월호, 이주형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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