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순교자] 이도기 바오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06-14 ㅣ No.1280

[124위 시복 특집] 이도기 바오로(1743~1798년)


“이보게, 천당을 헐값으로야 살 수 있나. 고통은 영원한 행복을 사는 돈일세. 용기를 내서 얼마 동안만 더 고통을 참아 받게”



충청도 청양에서 태어난 이도기 바오로는 본디 글을 알지 못하였지만,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만은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모두 비신자들을 입교시키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천주교 신앙 때문에 위협을 받게 되자 그는 가족과 함께 청양을 떠나 산 너머의 정산으로 이주한 뒤 그곳 옹기점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1797년, 이도기의 나이 54세가 되었을 때에 정사박해가 일어났습니다. 그때 이 소식을 들은 인근의 김씨라는 비신자가 이도기를 ‘천주교 신자들의 두목’으로 고발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이에 겁을 먹은 이도기의 아내는 도망칠 것을 권하였지만, 이도기는 신입교우들이 자신의 행동에 걸려 넘어질 것을 염려하여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결국 체포된 이도기는 정산 관아로 끌려가 잦은 문초와 형벌,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관장이 벼슬을 주겠다며 회유하자 그는 “정산 고을을 전부 주신다 해도 천주를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모진 문초에 시달리면서도 이도기는 자신을 염려하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람이, 내가 아직도 이 세상 것을 누릴 수 있기 위해 그렇게 한다면, 그들의 기도를 그만두어야 하오. 그러나 내 영혼과 내 영생을 위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공로를 잊지 않도록 기도한다면 그들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드리도록 부탁해 주시오. 나는 내 가족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해 주기를 바라오. 내 음식은 당신 힘닿는 대로 하루나 이틀에 한 사발씩만 가져다주고, 그렇게 못하더라도 결코 걱정은 하지 마오. 앞으로는 누가 당신더러 내게 무슨 말을 전해 달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교우들이라 할지라도, 만약에 그 말이 내 마음을 흔들리게 할 성질의 것이라면 내게 전하지 마시오. 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오.”

그리고 마침내 사형 집행일이 되자 이도기는 기쁨에 넘쳐 하늘을 우러러보며 “성모 마리아님, 하례하나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도기는 1798년 7월 24일, 55세를 일기로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시신은 관장의 명에 따라 묻혔는데, 7~8일 뒤에 정산에서 조금 떨어져 사는 교우들이 그 시신을 비밀리에 찾아다가 그들의 마을에 안장하였습니다.

서울대교구 홍보국 엮음 | 그림 박지훈, 124위 약전 ⓒ CBCK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순교영성연구소

[2014년 5월 11일 부활 제4주일(성소주일) 서울주보 6면]



파일첨부

1,332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