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216.....연중6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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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2-15 ㅣ No.1465

 

연중 제 6 주일 (가해)

집회서 15,15-20              1코린토 2,6-10            마태오 5,17-37

2014. 2. 16. 등촌3

주제 : 계명과 원칙에 대한 나의 자세

세상의 삶에는 우리가 따르고 살아야 할 여러 가지 원칙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쉽사리 생각할 수 있는 이런 원칙들에는 내 마음이나 생각에 꼭 맞아서 대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도 있고, 왠지 모르게 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것도 있습니다. 원칙을 기억하여 실천하는 것으로 내 삶이 좀 더 편리해지거나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많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즐거운 일이라고 여길 것이고, 이런 원칙들이 실천하는 것들의 결과가 내 삶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결실을 가져오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부담스럽게 여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원칙을 대하는 일들에는 즐거운 일이 많을까요, 아니면 부담스러운 일이 많을까요? 질문은 아주 쉽습니다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는 아주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똑같은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사는 사람, 누구에게나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질문과 대답은 아니가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말씀에서,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원칙을 들었습니다. 몇 가지 원칙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습니다만, 사실은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 가지가 전부는 아닙니다. 세상에 사는 우리의 삶에 내 뜻이 담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담긴 원칙이나 법이 필요한 것일까요?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서 실천하는 사람의 자세와, 세상의 삶이 마지못한 것이라고 여겨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고 여길 사람이 드러내는 자세와 모습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마태오복음서, 예수님께서 하신 산상설교내용의 앞부분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나타나시는 장소였습니다. 그런 의미를 갖는 의 적당한 곳에 예수님께서 자리를 잡고 앉으시자, 사람들이 모여왔고, 그렇게 모여온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삶에 대한 원칙을 말하시는 복음말씀을 대하면서, 내가 실천해야할 계명이나 원칙들이 몇 가지나 되는지 손가락으로 꼽아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세가 부담스럽다면, 우리 스스로가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고, 잘못하면 하느님을 우리 뜻대로 그 모양을 바꾸고 우리가 만든 하느님이 진짜모습이라고 우기면서 하느님을 옹졸한 분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해서 하느님을 내 맘대로 재단(裁斷)하는 것도 아주 큰 잘못이지만, 사람이 몇 가지 율법의 내용만 실천하고 나서 나는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천했다(!)’고 말해도 문제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함부로 말하기에 앞서서, 세상에 사람을 내시고 그 사람들이 하느님나라를 이루는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는 분의 넓으신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우리의 생활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위에서 가르쳐주신 십계명을 해석하는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내가 하느님의 가르침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나름대로 완벽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무늬만 하느님의 자녀이냐고 불릴 수 있느냐 하는 차이점과도 비슷한 일입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생명과 죽음이 내가 삶에서 하는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얼굴로 내게 온다는 것은 참으로 심오한 말씀이고 깊은 뜻이 담긴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생명을 택한다고 말하고, 이왕이면 생명을 누리고 싶다고 하겠지만, 내게 생명이 와서 그에 맞는 열매를 맺을 것인지, 내게 죽음이 다가와서 그 열매를 맺게 할 것인지는 내가 가진 바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실천이 함께 갈 때, 그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죄는 하느님의 친구가 될 수 없고, 죄와 더불어 사는 사람도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축복에 참여할 수는 없다는 것은 남이 알려주지 않아도 잘 아는 내용일 것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일들을 다 이해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말은 하겠지만, 그것이 막연한 바람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로 드러나게 하려면 우리가 갖거나 드러내야 할 자세는 지금 퍼뜩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힘겨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앞당겨서 포기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머리로는 하느님께서 세상에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 전부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당신의 뜻을 겸손하게 대하는 저희의 삶에 축복을 내려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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