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126.....연중3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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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1-25 ㅣ No.1453

연중3주일 (가해)

이사야 8,23-9,3            1코린 1,10-13.17            마태 4,12-23

2014. 1. 26.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선택

세상에서 이름을 남기고 싶다거나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그것을 드러낼 방법을 찾아서 실천하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렇지만, 한번 결정한 대답에서 더 나은 방법으로 바꾸고 생각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제라는 것이 그 개인에게서나 그가 속한 공동체나 집단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모양으로 바뀌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정치하는 일이나 회사의 운영을 통해서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고, 연구실에 앉아서 남들이 알아주든지 말든지 영광과 명예와는 상관없이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세상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높은 직책에 올라가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게 있든지 없든지 무관심하거나 삶의 목표를 다른 사람들이 세운 것에 두지 않고 또 다른 것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상의 일들을 이렇게 다양한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면, 내가 세상을 대하는 기준은 무엇이냐는 것이 현실을 다르게 만드는 차이점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하느님나라에 관한 기쁜소식을 전하는 말씀과 그 기쁜소식을 세상에서 계속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부르는 얘기로 돼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가까이 왔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 것일까요? 우리가 세상의 인간으로만 사느냐, 하느님의 뜻도 새기는 신앙의 인간으로도 살 것이냐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라집니다. 대답이 달라지면,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를 대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소리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지면, 같은 소리를 들어도 행동방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서 듣느냐, 신앙을 먼저 생각한 신앙인간으로서 듣느냐에 따라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말씀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세상의 인간으로만 듣는다면, 귀에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는 그다지 신경을 써야할 영양가가 있는 소리로 들리지 않을 수도 있고, 신앙의 인간이라면 예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에 첫 번째 제자들이 했던 것처럼, 만사를 제쳐놓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이 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인 이방인들이 모여 살던 곳, 갈릴래아 지방의 호숫가로 가시어, 그곳에서부터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지명에 대한 상대적인 중요성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별 차이 없을 것입니다. 훗날까지 계속 이어진 예수님활동의 주된 무대가 이 갈릴래아지방이고, 갈릴래아 호수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뜻은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뭔가 이름을 남기고 남들의 주목을 끌고 싶다면, 청와대나 여의도, 혹은 종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부산이나 광주에서 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입니다. 공영방송이나 케이블텔레비젼의 방송들도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큰 신경을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변방이기는 했지만, 히브리민족의 중심지, 예루살렘도 아닌 갈릴래아지방을 복음선포의 출발지로 왜 선택하셨는지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무슨 의도가 있는 일이었을까요?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수많은 질문들을 하지만, 그렇게 질문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궁금하게 여기거나 우리가 알아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항상 대답을 해주시는 분이겠지만, 우리가 다른 대상이나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는데 사용하는 주파수와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닿는 주파수가 달라서 서로 뜻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면, 무엇이 문제점이고, 그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살이에는 하느님의 영역에 속한 것과 인간의 영역에 속한 것이 부딪힙니다. 이렇게 부딪히면서 내는 소리가 사람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내용이 달라서 부딪히는 문제는 올바른 의미의 역사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 인생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세상에 빛이 필요한 어두운 곳,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곳을 골라서 그곳에서부터 당신의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오늘은 연중3주일,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 당신의 말씀과 뜻을 선포할 것을 주문하시면서, 우리를 부르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로 되어 그 말씀을 한결같이(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다) 실천하는 사람들이 될 수는 없다고 해도, 우리들 각자가 응답할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입니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 예수님을 통하여 들을 수 있는 이 소리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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