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6일 (수)
(녹)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너희는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강론자료

2014-0119.....연중2주일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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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4-01-18 ㅣ No.1447

연중 제 2 주일 (가해)

이사야 49,3.5-6           1코린토 1,1-3         요한 1,29-34

2014. 1. 19. 등촌3

주제 :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

사람이 드러내는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모습을 구분하면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찬미하고 공경하는 이 미사에, 미리 준비해서 정성을 갖춘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서둘러 뛰어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공동체로 봉헌하는 미사에 그냥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도 있고, 다른 이는 하지 않는 역할을 오늘 미사에서 담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 이 시간 공동체를 나누는 방법의 하나라면,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모습으로 나누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배운 하느님의 뜻이 인생을 바꿀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서 배운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하고 실천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저 남들이 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연중2주일입니다.

2014년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고, 이제 보름을 넘겨 이십일 가까이 흘렀습니다. 성탄시기를 지냈고 한동안 우리는 연중시기라고 구별하는 시간을 지낼 것입니다. 오늘 연중 둘째주일에 우리는 세례자요한이 세례를 받았거나 세례를 받으려고 요르단강변에 모여서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은, 우리가 지난 주일에 기억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던 것과 같은 시기이기는 합니다만, 오늘 복음에는 세례를 주고받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세례자요한이 자기 앞에 모습을 드러낸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신앙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세례자요한이 고백하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복음으로 들었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세례자요한이 예수님에게서 어떤 모습을 봤기에 그렇게 믿음을 고백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굳이 짐작한다면, 세례자요한은 하늘에서 오는 특별한 소리와 늘 가까운 사람으로 살았을 거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소리를 세례자요한은 들은 사람이라고 복음사가요한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례자요한은 이렇게 놀라운 소리를 어떤 방법으로 들었을까요? 그리고 세례자요한이 들었다는 그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하느님의 소리는 어떤 사람이 듣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대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 질문의 방향이나 이 질문에 대답을 줄 대상은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이시라는데, 답을 얻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어떤 사람이 들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느님께서 이사야예언자에게, 새로운 종의 임무를 주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완벽하게 준비했기에 하느님께서 그를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나 선택을 들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권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생략된 부분에 나오는, 인간의 푸념에 신경쓰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사명을 주시는 말씀에서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애씁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인위적(人爲的,=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거나 작위적(作爲的,=꾸몄다는 것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인 것입니다. 이렇게라도 하는 사람의 노력이 잘못된 것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우리 삶에 담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할 일은 매순간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누구나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은 저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고 태어났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낼 방법이 있을까요? 세례자요한이 자신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강가로 다가오는 한 사람을 보고서, 그가 예수님이고, 그분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라고 선언하며, 그분을 알아본 것과 같은 놀라운 일이 우리 삶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가 포기하면, 우리를 하느님 앞에 다가설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은 우리 삶에 다가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하느님의 시각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에서 올바른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뜻이나 말씀을 대하면서, 인간의 시각으로만 보거나 인간의 시선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하느님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하느님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분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내는 연중시기, 하느님의 뜻을 올바르게 대할 수 있고, 이 세상에도 그 뜻을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게 해주시라고 청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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