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교회문헌ㅣ메시지

2006년 제25회 인권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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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6-12-01 ㅣ No.211

제25회 인권 주일을 맞이하며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는 사회를 소망하면서 이 땅에 인권주일을 설정한지 25주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국가발전과 민주화의 정착으로 많은 부문에서 인권이 신장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긴장과 갈등 그리고 불신이 팽배해 있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꾀하고, 북한 형제의 어려운 삶을 돕고자 인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6자 회담의 긴 교착 끝에, 최근 불거진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며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 사태를 평화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와 슬기를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드리며 대처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기도를 계속해야 하겠습니다.

 

무릇 차별과 불평등이 깊어지면 그 사회는 반드시 불안해지고 분열되고 서로 반목하게 마련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공동선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도 없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배려에 인색한 사회는 사회적 안정을 찾기 어렵습니다.

 

개발이라는 이름의 자연환경 훼손으로 일어나는 충돌,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과의 충돌, 미국과의 자유무역 협정에 맞선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 일부 노조원들의 극단적인 집단행동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본권과 사회권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사실 불완전한 인간들에 의해 이루어진 인간 사회에서 이해의 충돌과 이에 따른 갈등의 발생은 자연스러운 인간 삶의 한 부분이기에 그 당사자들을 탓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외적인 평화와 조화만을 강조하며 갈등의 요인을 보려 하지 않거나 그 해결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 사회는 참된 평화와 정의로부터 멀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발생하는 이러한 대립들은 그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서로의 요구가 너무 달라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가고 있기에 그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선의에서 우러나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양보하면서 본인만이 아니라 상대방도 동의할 수 있는 새로운 규칙과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만이 적절한 해법일 것입니다. 또한 모두의 의견이 국가와 국민 전체의 번영에 모아져야 합니다.

 

정부는 국가일방주의와 행정편의주의에 빠지면 안 됩니다. 공직자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고 그 어떤 국가적 결정도 주민들의 기본권과 생존권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역의 주민, 근로자 또는 농민들도 세계화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대적 환경을 내다보면서 극한적인 대립은 삼가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틀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합니다.

 

지난 세기말 우리가 겪었던 IMF 사태는 우리 사회를 급속도로 양극화시켜 놓았습니다. 잇따른 기업들의 도산으로 중산층의 일자리는 줄었음에도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에 빠져 노동시장의 유연성만을 강조하다가, 이미 10명 중 6, 7명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계속된 중산층의 몰락은 국민 10명 중 두 명을 빈곤의 나락으로 몰아넣었고 생계를 고민하다 목숨을 끊는 이가 하루 평균 세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최고를 기록하였습니다. 자살은 안 됩니다. 인간 생명의 주인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부합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고 높여’(「노동하는 인간」9항) 주어야 할 노동시장도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채 왜곡되고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목숨을 담보로 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자제하여야 마땅합니다. 또한 모든 노동 시장의 왜곡은 사회 구조적 모순임에 틀림없으므로 이 모순의 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느 사회에나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 그들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이 용기를 얻고 재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하겠으며, 남북의 정치인들이 회개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도록 촉구하는 한편, 인권의 파수꾼으로서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행동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스스로 노력하고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을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루카 10,27)는 사랑의 계명은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정의의 실천을 요구합니다.(「간추린 사회교리」583항 참조) 사랑의 계명을 깊이 묵상하면서 진리의 성령께서 우리를 이끄시어 하느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되살아나고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06년 12월 10일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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